2024년 12월 읽고 싶은 책 |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
농담이다. 책을 다 끝내도 우리는 여전히 계속해서 실패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이제 실패를 시작해보자. 아니면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Samuel Beckett의 말처럼 다시 시도하라. 그리고 다시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
망신 주기가 윤리적 성과를 내는 데 과연 생산성 있는 방법인가 하는 점이다. 일단 망신을 당하면 행동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그보다는 방어기제가 높아지고 고집을 부리며 저항한다. 망신을 주면서 기대하던 결과와 반대 효과가 나는 것이다.
스트레스와 고통, 불평등과 부당함, 윤리적 긴장과 피로감으로 분열된 나라 상황에서 설령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원정에 실패하더라도 자신을 좀 너그럽게 대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한 가지 단순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서로에게 의무를 진다. 사소하거나 간단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의무는 분명 존재한다. 이는 중요한 것으로 무시할 수 없다.
명확한 해답도 없고 경험으로도 알 수 없으며 실질적으로는 불가능한 이론상의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 하는 그 순간이 바로 실패의 진정한 가치를 볼 수 있는 때다. 언젠가 스스로 맞불을 놓을 수밖에 없는 그런 결정을 내릴 것이다. 문제를 더 많이 곱씹고 더 많이 생각할수록 그로부터 더 많은 의미를 끌어낼 수 있다.
당신은 좋은 사람인가요? 이렇게 물어봤을 때 선뜻 아니요, 저는 전혀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전혀 윤리적이지도 않죠. 라고 답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엄청 좋은 사람은 아니어도 나름 좋은 사람 축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싶다. 실제로 자신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자기 고양적 편향‘이나 여러 방면(도덕 등 측정하기 어려운 분야 역시)에서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우월감 환상‘ 등의 이론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당신은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인가요? 혹은 이전보다 더 나은 사람인가요? 라고 물으면 자신감 있게 예,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일단 나는 머뭇거리며 대답을 못 할 것 같다. 하루하루 바쁜 일상을 살다 보면 무언가 도덕적, 윤리적 선택을 해야 할 때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는 그냥 ’되는 대로‘, ’내가 편한 대로‘ 행동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먹고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도덕이고 윤리고 그게 다 무엇이냐, 답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책에서 저자도 말하지만 선하게 사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 책에서 하는 것도 그 얘기다. 선하게 사는 건 어렵다. 도덕적으로 완벽해지는 일? 절대 있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왜 선하게 살려고 노력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서 어떻게 하면 선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에 대해 고민해 온 철학자를 소개하고, 2부에서는 그 철학자들이 소개한 이론처럼 산다고 했을 때 그럼 어느 정도까지 선한 행동을 해야 하는지, 그 동기는 무엇이어야 하는지 이야기한다. 3부는 그렇다면 선하게 사는 걸 실패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내가 좋아하는 게 선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보다 실질적인 이야기를 하며 이 책의 목적을 다시금 새기고 마무리한다.
’철학‘이라고 하면 어려워 보이지만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일단 이 책의 저자는 철학자도, 철학 전공 교수도 아니다. 미국의 유명 프로듀서이자 각본가인 마이클 슈어가 쓴 책이다. 특히 그가 제작한 “굿 플레이스”는 이 책에 나온 것처럼 철학과 윤리적인 고민을 잘 녹여낸 코미디 시리즈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보니 책의 무게가 전혀 무겁지 않고 오히려 시종일관 ‘드립’을 쳐서 나는 엄청 웃기다고 생각했으나 이건 또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게 다른 모양이다.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은 책인데, 네 명 중 두 명은 개그 코드가 맞아서 즐겁게 읽었고 나머지 두 명은 개그 코드가 썩 맞지 않는다고 답했다. (참고로 개그 코드가 맞는 사람 중 하나가 나였다.) 묵직하고 논리가 정제되어 있는 책을 원한다면 이 책은 맞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볍게 철학을 접하면서 내 삶의 태도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면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미국식 유머에 익숙하다면 더 좋다. 어쩐지 배경음악으로 깔깔깔, 웃음소리가 깔릴 것 같은 유머들 말이다.) 무엇보다 현실에 적용하기 쉬운 예시나 실제 현실의 이야기를 끌고 와 설명하기 때문에 이해하기 더 쉽다.
저자는 결국 우리가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실패했을 때는 즉각 사과하며 계속 선하게 살고자 하는 태도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어찌 보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을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원래 기본적인 게 제일 어려운 법이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고, 좋은 것을 먹고, 이런 것을 알아도 지키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다.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선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실패하더라도 다음에 다시 선한 행동을 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지키기가 힘들다. 하지만 억지로 운동을 한 번이라도 하거나, 몸에 안 좋은 것을 먹으면 그다음 날은 한 끼라도 저속노화 식단을 먹는 것처럼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비슷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고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해 보는 것도 그 시작의 일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