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여성 작가의 책 |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한강)
어떤 종류의 슬픔은 물기 없이 단단해서, 어떤 칼로도 연마되지 않는 원석과 같다. (몇 개의 이야기 12)
하지만 곧 / 너도 알게 되겠지 /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 기억하는 일뿐이란 걸 / 저 번쩍이는 거대한 흐름과 / 시간과 / 成長, / 집요하게 사라지고 / 새로 태어나는 것들 앞에 /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걸 // 색색의 알 같은 순간들을 (효에게. 2002. 겨울 중)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 어떻게 해야 하는지 /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 괜찮아 // 왜 그래, 가 아니라 / 괜찮아. / 이제 괜찮아. (괜찮아 중)
그러니까, 인생에는 어떤 의미도 없어 / 남은 건 빛을 던지는 것뿐이야 // 나쁜 꿈에서 깨어나면 / 또 한 겹 나쁜 꿈이 기다리던 시절 // 어떤 꿈은 양심처럼 / 무슨 숙제처럼 / 명치 끝에 걸려 있었다 (겨울 저편의 겨울 2 중)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알려지고, 내 SNS 계정의 타임라인은 축제 분위기였다. 독서모임에서도 큰 화제여서, 멤버 중 하나가 재빠르게 한강 작가님의 시집을 구입해 멤버 모두에게 선물했다. 발빠른 독자와 그보다 더 발 빠른 출판사 덕에 책 날개 시인 소개에 ‘노벨문학상 등을 수상했다.’라고 적힌 ‘노벨문학상 에디션’ 시집을 갖게 되었다.
나는 시를 어려워하는 편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가 시를 어려워하리라 생각한다. 그냥 읽었을 때 단번에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웠고, 작가가 어떤 의도로 썼는지 알고 싶은데 도통 무슨 말인지 해석이 안 됐다. 그나마 맨 뒤 해설을 읽으며 그런 느낌이 든다고 고개를 주억거려보지만, 시를 읽을 때마다 그냥 내 허영심을 채우는 독서 같아 걱정됐다. 그렇다고 마냥 예쁜 말만 있는 시집은 거리를 두게 된다. 다 읽고 나서 그냥 예쁜 말밖에 남지 않는다. 구절 하나하나가 펀치 라인 같은 시는 문장은 아름다울지 몰라도 나중에는 오히려 공허해졌다.
그러다 보니 시집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어렵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나의 해석이 맞는 해석인지 하나하나 따져보고 싶은 건 학창시절에 시를 구절마다 단어마다 쪼개서 어떤 ‘의미’가 있음을, 그리고 그 의미의 해석에는 정답이 있음을 중요시했던 공부 방식 때문이 아닌가 싶다. 분명 시인이 의도한 바는 있겠으나 독자에게 와닿을 때 그것은 결국 독자의 것이 된다. 이를 함께 나누면 함께 나눈 이의 숫자만큼 시집을 읽은 것처럼 느껴진다. 이전에도 한 번 읽어본 시집이었으나 시집을 함께 읽는다는 경험은 혼자 읽기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넷이 모였는데 모두 좋아하는 부(部)가 달랐다. 나는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다른 멤버는 읽어냈다. 이로써 나는 또 하나의 시를 읽은 듯했다.
한강 작가님의 시는 섬세하게 아름답지만 동시에 뜻밖의 활력이 넘치기도 했다. 어떤 고통과 슬픔이 지속하는데, 화자는 그것을 계속 돌아보고 곱씹는다. 이는 작가님의 소설이 떠오르기도 한다. 오래도록 곱씹다 보니 고체의 형태로 단단해진 슬픔은 돌아볼 때마다 고통스러워 포기하고 싶지만, 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도 화자는 결코 그러지 못한다. 가끔은 너무 고통스러워 모든 걸 멈추고 싶더라도 결국은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한다.
얼마 전 나라가 혼란에 빠진 일이 있었다. 그 사이에 한강 작가님은 노벨상 수상 연설을 하셨다. 수상자로 결정될 때 그 누구도 알 수 없었겠지만, 그 어느 때보다 시기적절한 수상이 되고 말았다. 탄핵안 연설에서는 한강 작가님의 질문이 등장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하고 싶다. 1980년 5월이 2024년 12월을 구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타인의 고통에 민감하게 공명할 줄 아는 한강 작가님의 글은 광주가 그랬듯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었다.
나는 여전히 시를 잘 모른다. 다만 어떤 시 구절은 머리가 아니라 몸이 읽기라도 하는 것처럼 피부에 와닿아 박힌다. 작게 소리 내 읽어보면 쓸쓸하고 슬프고 외로운데, 동시에 그 시 구절은 내게 위로가 된다. 한강 작가님의 시를 읽으며 깨닫는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고, 그 사실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타인의 고통을 돌아볼 때 우리는 우리의 고통 역시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