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난나 Jan 02. 2022

사람, 장소, 환대, 세 꼭지점을 연결한 삼각형

2020년 5월의 여성작가의 책 |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책속의 말

가부장제도 하에서 여성은 사회 안에 어떤 적법한 자리도 가지고 있지 않다. 여성은 단지 스스로를 비가시화한다는 조건으로, 물리적인 의미에서 사회 안에 머무르는 것을 허락받고 있을 뿐이다. 여성이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면서 동등한 사람으로서 사회 안에 현상하려는 순간, 이 허락은 철회된다.
오늘날에는 모든 노동자 즉 노동자로서 모든 사람이 모욕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아마도 그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비자로서만 의식하려 하며,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은 되도록 잊고 싶어 한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우리는 연대 의식을 느끼는 대신에 소비자로서 겪게 될 불편을 먼저 생각한다.
사회를 이루는 것은 사람들이며, 그들 각자는 타자를 사회적 죽음으로부터 끌어내는 힘을 미약하게나마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기를 위해 나서주는 제삼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는 한, 벌거벗은 생명은 아직 완전히 벌거벗은 게 아니다.




이제까지 굉장히 편하게 책을 읽어왔다. 점점 어려운 책은 손을 대지 않기 시작했고, 당장의 재미를 위해 책을 읽었다. 그런 독서에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갈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야가 편협해진다고 느꼈다. 트위터의 짧은 자극에만 익숙해지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간다는 것도 불안했다. 다 내가 초래한 일이니, 다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도 나의 책임인지라 트위터의 올라온 인용된 구절만 보고 읽기 시작한 책을 대뜸 덮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이해가 안 가는 문장은 두 번씩 읽었다. 아직도 이 책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렇게 끙끙거리며 읽다 불현듯 이해가 가는 구절을 읽을 때는 환희를 느끼기도 했다.

제목이 '사람, 장소, 환대'인 것은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한 최고의 제목이다. 말그대로 이 책은 사람, 장소, 환대에 대한 책이기 때문이다. 세 개념에 대해 깊게 고민하여, 어떻게 세 개념이 연결되는가에 대한 대답이며,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온 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책이다. 우리는 어떻게 사람이 되는가? 환대란 무엇인가? 사람에게 있어 장소란 어떤 의미인가? 끊임없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따라가는 심정으로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의 시작은 "그림자를 판 사나이"라는 소설을 통해 사람은 언제 사회에 받아들여지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는 저자가 이 책 내내 다룰 내용이기도 하다. 1장에서 3장은 환대에 대한 이야기라면, 4장에서 5장은 현대 사회의 상호작용(모욕과 우정), 6장에서 7장은 절대적 환대란 무엇이며 그것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한다.

이 책을 읽으며 좋았던 점은 '설명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었다. 어렴풋이 느낌만으로 알고 있던 개념을 정제된 언어로, 매우 논리적으로 설명한 것을 볼 때의 그 내 안에서 엉킨 실타래가 풀리는 느낌은 아주 명쾌하고도 강렬했다. 예를 들어 2장 성원권과 인정 투쟁에서 다룬 오염의 메타포가 그렇다. 여성은 어째서 더러운 여성과 깨끗한 여성으로 나누어지는가? 애초에 여성은 이 사회 안에서 비가시화하는 조건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여성이 사회 안에 현상하는 순간 여성은 장소를 더럽히는 존재가 된다. 즉 이 글에서 말하듯 깨끗한 여성은 보이지 않는 여성이다. 그러나 여성이 '더럽다'는 말은 여성의 사회적 성원권을 부정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부정하고 싶은 위협적인 존재이며, 그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에 들어가 사람이 된다. 이 간단한 문장을 기반으로 사회의 현상을 설명하는 이 책은 사회에 대한, 사람에 대한 이해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기회가 있다면 이 책을 여럿이서 오랜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한 챕터씩 읽고 함께 이야기하며 읽고 싶다. 그만큼 꼭꼭 씹어 먹고 싶은 책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 세상 끝에 있는 너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