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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Apr 17. 2022

능력주의의 함정, 엘리트 세습

2022년 3월 읽고 싶은 책 | 엘리트 세습 (대니얼 마코비츠)

책속의 말

그러나 능력의 매력은 환상이다. 능력주의 시대 엘리트의 기량은 이전의 경제 불평등, 가치나 능력에 근거한 불평등을 정당화하려는 시도, 순환 논리의 오류에서 자유롭지 못한 기량을 기반으로 할 때만 가치를 지닌다. 능력은 능력으로 대체된 귀족의 가치처럼 자연스럽거나 보편적인 덕목이 아니라 앞서 존재한 불평등의 결과물이다. 능력은 인적 자본의 착취를 정당화하고 부당한 분배를 눈가림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 구조물이다. (p. 157)
능력주의 교육은 자아가 저절로 생겨난다고 단정하기는커녕 엘리트 아동기를 능력에 따라 성공이 보장되는 자아를 구축하기 위해 의식적인 활동을 펼치는 시기로 규정한다. 엘리트 학교 교육은 자아를 구축하고 인적 자본으로 측정하는 방향으로 절묘하게 조율되며 학생들에게 자기 도구화와 자기 착취라는 능력주의 기법을 가르쳐 엘리트 근로자를 양성한다 (p. 278)




어느 때보다 ‘공정’을 향한 관심이 뜨거울 때다. 대선 키워드도 공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시대의 ‘공정’은 능력주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 세습이나 특권에 의한 보상이 아닌, 자신의 실력과 노력을 바탕으로 보상을 받는 능력주의는 이 시대가 부르짖는 공정에 걸맞은 원칙처럼 보인다. 그럼 대체 무엇이 문제이길래 예일대 교수인 저자는 능력주의를 보고 새로운 귀족주의라고 신랄하게 비판했을까?

이 책의 원제는 The meritocracy trap이다. 한국어로 번역해보자면 ‘능력주의의 함정’ 정도 될까. 능력주의의 처음부터 끝까지 헤집듯 분석하는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1부는 능력주의 현상을, 2부는 능력주의가 작동하는 방식, 3부에서는 저자가 능력주의를 왜 새로운 귀족주의라고 비판했는지, 능력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과 동시에 해결책을 제시한다.

1부에서 능력주의 현상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다루는 것이 엘리트 귀족의 탄생이다. 이전 엘리트는 세습한 토지를 기반으로 한가하며 놀며 타인을 착취했다면, 현재 엘리트는 능력주의 기반으로 최고의 교육을 받고, 무한 경쟁하며 누구보다 긴 시간 일하고 높은 소득을 받는다. 교육과 기술 기반의 고소득 엘리트 일자리가 증가하며 중산층 일자리는 감소하고, 불평등이 그 어느 때보다 심화한다. 이는 중산층의 몰락을 유발한다. 엘리트의 연봉이 꾸준히 오를 때 중산층은 아주 적은 연봉이 올랐을 뿐이다. 능력주의는 중산층의 소득뿐만 아니라 힘과 위신도 차단한다. 그만큼 게으르니 못 버는 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말하면, 중산층은 소외되면서도 인정하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엘리트가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그들도 어릴 때부터 무한 경쟁에 시달리며 스스로 도구화할 뿐이다. 문제는 엘리트와 중산층 간 차이가 벌어지며 향유하는 문화 자체가 달라지니 서로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엘리트는 막대한 돈을 기부하는 등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법률을 제정한다. 그들은 인종, 민족, 성적 지향 등에 대해서는 결벽적으로 불평등을 거부하면서도 능력으로 사람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것은 아무렇지 않게 드러낸다. 그런 말을 듣고 있는 중산층은 거부감을 느끼고 이는 계층 전쟁에까지 이른다. 이는 민주주의에도 위협이 된다.

그렇다면 이 능력주의는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 오늘날 엘리트는 자녀에게 재산을 직접 상속하지 않아도 자녀에게 방종을 방지하는 근면이라는 자산을 물려준다. 또한, 엘리트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건 어릴 때부터 최고의 교육을 받기 때문이다. 결혼마저 끼리끼리 하는 시대에 엘리트는 체계적이고 집중적으로 아이를 교육한다. 이러한 교육을 통한 고도화된 기술 기반의 유망한 직업은 보수도 높고, 높은 지위를 지니며 그 직업을 가진 이는 출세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중간 관리자는 점점 사라지고 단순한 작업에 보수가 낮으며 출세할 가능성도 적은 암울한 직업으로 노동시장이 양분화된다. 20세기 엘리트가 중산층과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던 것과는 다르게 21세기 능력주의 불평등이 심화하며 중산층과 엘리트 사이에는 노동시장에서처럼 명확해진 단층선이 생겨버렸다. 직업, 가정, 정치, 소비, 지리적인 것까지 서로 달라도 너무 다르다.

3부에 이르러 저자는 능력주의와 귀족주의는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능력주의도 과거 귀족처럼 토지를 계승하지는 않더라도, 인적 자본을 교육을 통해 계승시키며 엘리트 계층이 세대를 거쳐 특권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 귀족의 미덕처럼 능력주의의 능력도 허상이라는 것이다. 애초에 엘리트 자체가 엄청난 불평등으로 인해 사회가 엘리트의 기량을 우대하는 때만 큰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다. 설령 엘리트에게 그런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 해도 그 기량이 불평등을 낳는다면 이것을 그대로 둬야 할 것인가? 엘리트는 경영혁신, 기술혁신으로 자신의 기술이 없으면 다른 근로자가 최적의 방식으로 일할 수 없게끔 한다. 오히려 비엘리트 노동자의 생산성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한 혁신이 이루어져도 현대 금융에서 해결되지 못한 문제는 여전히 많으며 실제로 그들의 생산성이 높지 않다는 것을 입증한 연구결과도 있다. 능력주의에 따른 불평등은 사회의 연대를 저해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결론에서 저자는 부유층 자녀의 최고급 교육에 집중하는 방식을 변화해 학생을 평등하게 입학시키는 개방과 포용성이 필요하며, 엘리트 근로자에게 집중된 생산이 중산층에게 돌아가게끔 중간 숙련 노동자를 부활시키자고 주장한다. 엘리트와 중산층을 비롯한 모든 노동자가 단결하자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정말로 엘리트 계층은 능력주의의 쳇바퀴를 벗어나려고 할까? 책장을 덮기도 전에 든 의문이다. 엘리트 계층이 하루에 2/3 이상의 시간을 일에 쏟고, 주말도 없이 일하며 착취당하기 일쑤라고 하지만, 과연 그들은 지금처럼 큰 특권을 누리고 있는 상황을 기꺼이 바꾸려고 할까? 책에서도 경제 석학들에게 작금의 경제적 불평등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묻는다. 그들은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것처럼 인위적인 상황이 아닌 이상 해결이 어렵다고 답하기도 한다. 나 역시 이 구조가 쉽게 바뀌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저자의 통찰은 분명 값지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종류의 책을 읽으면 도통 해결방안에서 공감하기 어렵고 실현 불가능하지 않을지 의문이 먼저 들어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우리는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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