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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May 22. 2022

이 시대와 맞서 싸우기 위해, 우리의 영혼을 위해

2022년 5월 읽고 싶은 책|이 시대와 맞서 싸우기 위해 (롭 리멘)

책 속의 말

셸러는 이제 평등의 개념이 한 사람이 무언가를 가지면 다른 사람도 그것을 가져야 한다는 식의, 모든 이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한다, 결국에는 우리 모두가 평등하다! 엘리트는 일종의 욕설이 되었고, 다른 “평등한” 이들이 (자신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원한과 악의가 자라난다. (p.38)
슬로건과 공허한 수사를 계속 사용하는 데서 이러한 반문명을 식별할 수 있다. 그것은 예전에는 모든 것이 지금보다 나았고, 모든 것을 망치는 이질적 요소를 자신들이 모두 척결하기만 하면 다시 모든 것이 향상되리라고 주장하는 반동적 형태의 정치학이었다. 희한하게도, 하니만 명백하게, 이 운동은 한 명의 지도자를 굳게 신뢰했다. (p.41)
더 이상 그 어떤 절대적 가치도 존재하지 않기에 우리 행동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방도가 없고, 모든 것이 주관적이 되어버렸다. 이 특별한 나, 나의 에고가 만물의 척도가 되고, 오로지 나의 느낌과 나의 생각만이 중요해진다. 나는 내 취향, 내 의견, 그리고 내가 존중받아야 하는 방식을 고집한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나는 불쾌해진다. 만물의 척도인 이 민감한 에고는 비난을 참지 않으며 자기비판이라고는 모른다. 당신의 정체성은 더 이상 당신의 정신적 가치를 나타내는 표현(당신이 누구인가)이 아니라 물질성이다. 당신이 무엇을 소유했고 겉으로 어떻게 보이는지가 당신의 정체성이 되었다. 말 그대로, 당신은 정체성을 구매할 수 있고 개조하고 바꿀 수 있다. (p.62-63)
영혼의 돌봄, 자기 시대에 영원의 자리를 만드는 능력—이것이 바로 철학입니다. 철학은 우리 모두에게 자신을 넘어서고, 더 나은 자신이 되고, 자신을 바꾸고, 진리와 정의가 머물 곳을 이 세상에 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해줍니다. (p.152)

파시즘이라고 하면 너무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질까? 저자는 명백히 파시즘이 회귀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실 파시즘을 부인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파시즘이 부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1부에서 파시즘이 회귀하는 원인을 논하며, 지금 이 시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민주주의, 상상력과 공감,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 앞서 나열한 것이 중요한지 이해하고자 필요한 이야기가 2부인 ‘에우로페의 귀환’이다.

1부 ‘파시즘의 영원회귀’에서 저자는 우리가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 19~20세기, 자신의 안온과 욕망만 추구하고, 도덕적 니힐리즘과 피상성을 특징으로 하는 대중-인간이 대두한다. 인문주의 정신을 잃고, 절대적 가치가 아닌 ‘나’ 중심의 사고만을 중시하며, 한없는 자유를 추구하지만 동시에 자유에 대한 공포로 절대적 지도자에게 순종하고 싶다는 바람을 품는 사회. 파시즘의 원인은 경제적 위기도 있지만, 이런 사회에 기반하고 있기도 했다. 세계 2차대전 이후 대중은 파시즘을 빨리 망각하길 원했다. 그러나 언제나 위험은 도사리고 있고 파시즘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했다. 20세기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사회는 점점 더 니힐리즘과 키치로 가득해진다. 아마 파시즘은 그 양분을 토대로 다시 번성할 것이다.

2부 ‘에우로페의 귀환’은 파시즘의 영원회귀를 막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를 역설한다. 도입부에 상상으로서 등장하는 에우로페는 페니키아의 공주이며, 유럽 대륙의 이름은 그의 이름에서 온 것이다. 그런데 만약 에우로페 공주가 지금 이 시대의 유럽에 귀환한다면? 여권도, 돈도 없는 그녀는 호텔의 방 하나도 차지할 수 없다. 그가 머무를 수 없는 곳은 단순한 호텔만은 아니다. 유럽이라는 이름의 기원이자 유럽 정신을 상징하는 그는 유럽 사회에 더는 머무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가 유일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바로 실스마리아에 있는 한 호텔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에세이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글은 저자가 한 호텔의 콜로키움에 참여하며 듣게 된 강연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자가 듣게 된 첫 번째 강연자는 중세시대로의 회귀를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중세에는 오히려 인문주의가 없고, 그가 교회의 권위를 되찾기 위해 주장하는 것이라 비판한다. 종교를 신뢰하지 못하게 된 이유는 그게 아니라, 종교가 세상의 고통과 현실을 외면하고 신앙의 언어만 강조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두 번째 강연자는 과학과 기술을 옹호하며, 과학만이 이 사회의 진정한 해결책이라 주장한다. 저자는 과학이 정말 진보만을 가져오는지 의심한다. 정작 윤리적 질문이 제기되면, 과학을 옹호하던 사람들은 과학의 책임은 면제하려 든다고 비판한다. 세 번째 강연자는 저자 본인이었다.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설파한 그는 파시즘의 경향은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보인다며, 우리가 가치보다 수량에 집착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에 대한 대답은 네 번째 강연자였던 라딤이 이어받는다. 그는 유럽인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에 대한 대답으로 ‘영혼 돌봄’을 말했다. 과학은 진보를 보증할 수 없다. 인간만이 영혼을 가졌고, 이 영혼은 자신의 탁월성과 취약성을 느끼게 한다. 영혼을 돌본다는 것은 자기 시대에서 영원의 자리를 만드는 능력, 즉 나 자신을 넘어서고, 진리와 정의가 머물 곳을 세상에 내주는 것이다. 저자는 마침내 그 강연을 듣고 에우로페가 귀환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는다.

나는 이 책의 모든 이야기가 시기적절하다고 믿는다. 저자는 유럽의 상황을 우려하며 유럽 정신의 회복을 희망하지만, 사실 강연에서도 저자가 말했듯 이것은 유럽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 보편적 가치를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럽 정신이라 명명해야하는지는 의문이 들긴 하지만, 명백한 파시즘의 증거 앞에 다시금 나의 영혼을 돌아보게 된다. 일단 이 책이 그 영혼돌봄의 시작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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