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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Sep 13. 2022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혼란 앞에서

2022년 7월 여성작가의 책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책속의 말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진보로 나아가는 진정한 길은 확실성이 아니라 회의로, “수정 가능성이 열려 있는” 회의로 닦인다는 것.
그 “어류”라는 말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경멸적인 단어다. 우리가 그 복잡성을 감추기 위해, 계속 속 편히 살기 위해, 우리가 실제보다 그들과 훨씬 더 멀다고 느끼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다.




※ 이 감상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몇 주 전부터 이용자들이 이 도서를 집중적으로 상호대차 신청하는 것을 보았다. 문제라면 다른 도서관에도 전부 대출 중이라서 상호대차 신청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대체 이 책이 뭐길래 이렇게 다들 보려고 난리인가 싶었다. 그 비슷한 시기에 트위터에도 추천 글이 리트윗되어 내 타임라인에 들어왔다. 마침 독서모임에서도 공통책으로 제안이 들어와 별 고민 없이 이 책을 골랐다. 대체 얼마나 재밌길래 모든 도서관에서 대출 중이고 사람들이 극찬을 하는지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책의 저자는 과학자인 아버지의 딸이며,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독특한 가르침-지구에서 인간은 중요하지 않다-를 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그건 그녀가 삶에서 절망스러운 경험을 했을 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붕괴 앞에서 이도저도 못하고 있는 그녀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인물에게 푹 빠진다. 그는 물고기 표본을 수집하고 새로운 종을 발견하고 명명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 과정에서 절망도 많았지만, 그는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는 사람이었다. 저자의 상황에서는 그가 매력적으로 보였으리라.

그가 이 절망적인 삶에서 희망과 이정표를 줄지도 모른다는 그녀의 기대는 점차 의심으로 변한다. 알고 보니 데이비드 조던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우생학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인물이었다. 절망을 떨치고 일어날 수 있을 줄 알았던 그도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혼란과 혼돈 앞에서 지탱할 게 필요했던 것이다.

결정적으로 저자는 데이비드 조던이 집착한 ‘어류’라는 분류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은 그저 분류 사다리 최상에 존재하기 위한 조던의 발악이었을 뿐이다. 저자는 우생학의 피해자인 이들을 만나고 결국 중요한 것은 관점의 차이이며, 인간은 서로에게 소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자신의 상처도 어느정도 치유의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걸 느낀다.

높은 기대답게 이 책은 문장이 읽기 편하고, 저자가 겪는 고민이나 우울의 원인, 허무감과 절망에 초반부터 쉽게 빠져들 수 있게 한다. 이는 나도 어느정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다만 이 책에 한참 빠져 읽다 보면 저자가 갖는 데이비드 조던에 대한 집착이 점점 이해 가지 않기 시작한다. 왜 이 남자에게 저자가 집착해야 했을까? 나는 저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우울에 대한 해답을 찾던 사람이라서 여기서부터는 쉽게 집중할 수 없었다.

내게도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충격적이기는 했다. 대체 그게 어류가 아니라면 뭐라 부를 수 있을까? 하지만 동시에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이 인간 멋대로 명명하고 범주화한 게 얼마나 많은가. 하물며 동료 시민조차 우리는 멋대로 명명하고 이름 붙인다. 이전에-어쩌면 지금도- 서양인이 동양인을 그렇게 대상화했고, 많은 이들이 성소수자를, 시스젠더가 트랜스젠더를 그렇게 분류했다. 미국인은 인디언을, 한국 안의 외국인 노동자를...... 인간이 얼마나 많은 것에 멋대로 이름 붙이고 멋대로 생각하는지. 작년에 읽은 “젠더트러블”에서도 우리가 객관적이고 불변하는 진리라고 믿었던 과학도 모 아니면 도가 아니며, 이념적이라는 지적을 한다. 나도 그때 처음으로 과학이라는 게 만고불변의 법칙이 아니라는 걸 천천히 받아들였던 것 같다.

물고기는 우리가 진리라 굳게 믿던 체계에 대한 은유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그게 무너졌을 때 큰 충격을 받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체제에 고통받은 사람일수록 해방감 또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만큼 즐겁게 읽지 못한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일 큰 이유는 내가 저자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나의 우울과 허무감을 다룬 사람이라서였다. 이 책을 읽고 우리 독서모임에서도 완전히 의견이 갈렸는데, 아마 내가 힘들 때 에세이를 닥치는 대로 읽었고, 이와 비슷한 결론을 도출하는 다른 이들의 과정을 이미 목격한 탓에 이 책의 결론이 특별하지 않다고 느꼈던 이유가 아닐까. 하지만 거기까지 도달하는 과정이나 전개 자체는 이 책이 참 훌륭한 형식을 취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정상에 올라 보는 풍경이 내 생각만큼 아름답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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