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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Jan 05. 2023

'소녀 취향'에 관한 오해, 문학소녀

2022년 12월의 읽고 싶은 책 | 문학소녀 (김용언)

책속의 말

지금-내가 속한-현실에 대한 불만을 비로소 인지했고 문학에 심취하는 ‘나’를 좋아하게 되고 낯선 장소를 동경하게 되었다.
어디까지나 공인된 권장 도서를 읽되 지나치게 빠져들지 않고 교양으로서의 지식으로만 습득해야 했고, 그럼으로써 ‘소녀다운’ 순수성은 간직하며 남성-어른들의 귀여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 대단히 복잡한 과제가 제시된 것이다.


현실 세계에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했지만 문학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자리를 발견할 수 있었고, 본질적으로는 평범했지만 생의 어떤 특정한 순간의 상황과 우연의 힘을 빌려 잠시 동안 특별할 수 있었던, 그리고 그 시절을 두고두고 추억하며 자기위안을 동력으로 삼는 수많은 사람들의 대표 명사로서 전혜린의 힘은 강력하다.


새 학기 교과서를 받으면 국어책부터 펼쳐 그 안의 소설을 다 읽는 아이, 누가 가져다 놓은 건지 알 수 없는, 대중없는 학급문고의 책을 모조리 읽고 이제는 더 읽을 게 없어 학교 도서관에 가 빌릴 수 있는 만큼 책을 빌리는 아이, 책의 뒷이야기가 궁금해 고작 10분인 쉬는 시간에도 책을 붙잡고 있는 아이. 돌이켜 보면 나는 학창시절에 대부분 책과 함께했다. 하지만 나는 문학소녀라고 불린 적이 아마 없는 것으로 기억하고, 전혜린을 알지도 못했다. 그렇다 해도 나는 책의 서문을 펼친 순간, 전혜린과 읽고 쓰는 여성에 관한 이 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겠다고 직감했다.

이 책은 전혜린이라는 예외적 존재로 시작한다. 일제강점기 최상층 엘리트 집안에서 태어난 전혜린이 안 그래도 외국인 유학생이 적었던 시절, 여성으로서는 더욱 드물게 독일로 유학을 하였던 게 그의 작품 세계의 어떤 배경이 되는지 설명한다. 전혜린이 창작을 하지 못했다거나, ‘알아듣지 못할 외국어 단어’로 기행문을 썼다거나, ‘비범해야 한다.’라는 열망을 드러내는 그녀를 비웃는다거나 하는 당시의 전혜린에 대한 평가가 내려진 시대적 맥락을 짚고, 선행 연구자를 인용하기도 하며 정면으로 반박해 나간다.

길지 않은 책인데도 이 책은 전혜린에게서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 여성 작가와 전혜린을 동경하던 문학소녀에까지 다다른다. 전혜린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초기 여성 작가—당시에는 ‘여류 작가’로 불리고, 현재도 종종 그렇게 불리는—가 남성 중심 문단에서 받았던 비판과 당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한다. ‘소녀’라는 단어의 탄생과 전혜린을 동경하던 많은 문학소녀에 대한 폄훼로 이어지는 이 책을 읽다 보면 한국판 “다락방의 미친 여자” 체험판을 본 듯한 기분이 든다. 당시 소녀는 (주로 남성에 의해 엄선된) 권장도서를 읽고 교양을 쌓아야 하지만, 지나치게 독서에 탐닉하면 안 되고, 교양은 갖춰도 소녀다운 순수함도 간직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이 대목에서 미치지 않고서야 작품활동이 힘들 만큼 가부장적이었던 사회적 배경에 스스로 분열하거나 미친 여자라는 정체성으로 글을 썼던, 지구 반대편이나 다름없는 곳의 여성 작가들이 떠올랐다.

나는 전혜린을 읽었든 읽지 않았든, 어릴 적 책의 세계에 몰두했던 ‘소녀’라면 전혜린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로 평범해져서는 안 된다.” 이걸 과연 비웃을 일일까? 오히려 부끄럽게 느껴진다는 것은 어릴 적 모두 그런 생각을 한 번쯤을 해본 적이 있어서가 아닌가? 몇십 년 전 작가인 전혜린이 지금의 독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면 아직도 그의 힘이 유효하다는 뜻이다. 그런 그가 수많은 비난과 부정적 평가를 받아야 했던 인물이었을지 책을 읽으며 내내 되물었다. 이 책도 그 질문을 다시금 던지며 독자로도 하여금 우리가 가지고 있던, ‘전혜린’으로 대표되는 문학소녀의 이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최근 한국 문단에서 여성 작가가 강세라고 해도, 여전히 여성 작가와 그의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는 여성 혐오적인 면이 존재할 것이다. 문단뿐만이 아니다. 남성의 영역이라고 여겨지는 곳에 버티고 있는 여성은 평가절하를 당하곤 한다. 우리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서, “불란서 시집을 읽는 고운 손”이라는 시각에서 얼마나 변화한 시대를 사는 걸까. 은연중 학습했던 기존의 여성혐오적 시선이 아닌, 우리의 시선으로 또렷하게 바라보았을 때 펼쳐지는 세상은 이전과는 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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