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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Jan 04. 2023

고립의 시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2022년 1월의 읽고 싶은 책 | 고립의 시대 (노리나 허츠)

책속의 말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이 세계를 다시 하나로 모으려면 우리는 자본주의를 공동선과 다시 연결하고 자본주의의 심장부에 돌봄과 온정과 협력을 놓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이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뻗어나가게 해야 한다.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은 외롭고 버려진 느낌을 받는 사람을 모아 민족이나 인종에 기반한 공동체를 조성하면서 종족주의를 무기화하고 타자를 적으로 만든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깔린 도덕 원칙은 분열을 조장하고 분노에 찬 메시지를 퍼 나르는 행동에 보상을 주는 동시에 혐오 공동체를 쉽게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대다수 직원은 친절하고 다정한 분위기의 일터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만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친절과 다정은 굉장히 낮은 평가를 받는다.
국가나 정치인이 우리를 부당하게 대우하고 무력하게 만드는 것 같을 때 우리가 외로움을 느낀다면 ‘거대 기업’과 그들이 사용하는 신기술이 우리를 그렇게 대할 때도 우리는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




“고립의 시대”라는 제목은 코로나로 고립된 요즘 같은 시대에 딱 들어맞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마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각자 외로움을 느끼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인 노리나 허츠는 코로나로 외로움이 심화한 건 맞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우리는 ‘외로운 세기’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로 책을 시작한다.

그런데 요즘 뉴스를 보면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추세라는 기사가 종종 보인다. 혼밥, 혼술이라는 단어가 이제 그다지 낯설지 않다. 외롭다는 게 그렇게 나쁜 것일까? 나도 혼자인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으로서 저자의 문제제기에 의아하기도 했다.

저자가 정의하는 외로움은 단순히 혼자 있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라, 내면적 상태이며 동시에 실존적 상태를 뜻한다. 즉, 사회, 가족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적으로 배제된 느낌도 포함한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코로나는 외로움을 가속화한 원인 중 하나일 뿐이지 근본적인 원인이 되지 못한다.

광의적인 외로움의 정의로는 무엇이든 설명할 수 있다. 저자는 외로움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부터 간략하게 보여준다. 외로운 사람들이 포퓰리즘에 매혹당하기 쉽고, 정신적인 문제가 신체까지 이르는 상황을 제시하고 대체 이 외로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여러 장에 걸쳐 사회 현상과 연결해 설명한다. 도시화로 도시에 사람이 몰리며 임대료와 주택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니 정착은 불가능하다. 내일이면 또 다른 사람을 마주치니 공동체가 형성되지 못한다. 그 도시에서는 노숙자와 같은 특정 집단으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적대적 건축물을 만든다. 하지만 오히려 공동체를 위한 공간은 자리를 잃게 된다.

사실 지속해서 공동체를 강조하는 저자의 주장이 처음에는 그다지 편치 않게 느껴졌다. 나부터도 지역 공동체를 그다지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공동체에서 계층, 인종, 종교 등 다양한 사람이 섞일 기회가 없으면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안 그래도 코로나의 여파로 비접촉 방식이 새로운 생활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나와 동일한 주장만 팔로우하며, 나와 다른 의견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혐오를 동력으로 삼는 정치가 득세하는 것도 이상해보이지 않는다.

저자가 오늘날 외로움 위기를 심화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꼽은 것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이다. 전세계의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심화하고, 경제적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만 잘살면 돼’라는 마음가짐은 온정과 돌봄의 가치를 폄하하며 자립과 분투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을 하게끔 한다. 우리가 폄하했던 온정과 돌봄, 협력으로 자본주의를 공동선과 연결하자는 게 저자가 생각하는 해결방안이다. 내가 거칠게 요약한 것과 달리 저자는 외로움의 원인을 다룬 장마다 그에 대한 꽤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사회현상을 다룬 책에서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고는 대부분 해결방안은 두루뭉술하게 다루고 마는 것과 다르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부터 들기는 한다. 개인만 변한다고 될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의 모든 주장에 동의할 수는 없고, 오히려 공동체 안에서 차별받은 경험도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분명 지금 우리 앞에 있는 문제를 지적하고, 변하려는 태도는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고립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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