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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Feb 16. 2023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2023년 1월의 지금 나의 관심사 | 오늘 브로콜리 싱싱한가요? 

책속의 말

나는 가지나물을 좋아했다. 푹 익은 속살과 질깃하미 남아 있는 껍질의 조화가 재미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사람들은 대체로 가지의 그런 부분을 싫어한다는 것을. 푹 익어버려 곤죽 같은 질감도 그렇지만 고운 미색의 속살이 푸르죽죽해져 입맛이 떨어진다는 이유 떄문이었다. 죽은 돌고래 속살 같다는 이들도 있다. (p. 94)




혼자 살면서 처음 몇 주는 요리를 시도해봤다. 단조롭기 짝이 없는 식단이지만 식재료를 구입해 다듬고 불에 익히기도 하고 무언가를 만들어 먹기는 했다. 그러다 금세 포기하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가장 큰 이유가 식재료 관리의 어려움이었다. 이 책은 작가의 말에서부터 '동네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있고 식탁에 흔히 오르는 식재료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라고 했으며,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이들에게 더 잘 먹을 수 있는 요령을 즐겁게 소개하고 싶었다'고 밝힌다. 이 책을 읽으면 식재료 관리를 보다 잘 할 수 있을 것이고, 내가 평소에 단조롭게만 활용했던 식재료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새삼스레,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욕망이 별로 없는 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거였다. 나는 다섯 달 정도 오트밀 달걀 죽을 평일 아침으로 먹으면서 그다지 맛있진 않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배도 차고 영양소도 그나마 간편하게 해 먹을 수 있는 음식 중엔 균형 잡힌 편이니 괜찮았다. 당연히 맛있는 걸 먹는 건 좋다. 그러나 그걸 위해 품을 들이는 건 솔직히 자신 없다. 이 책의 저자와는 정반대 편에 서 있는 듯했다. 저자는 온갖 요리와 식재료에 정성을 쏟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자가 소개하는 식재료의 이름은 분명 친숙한데도 이렇게나 깊고 넓은 세계가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하지만 이는 익숙함의 문제일 수도 있다. 제철 식재료를 사서 직접 요리하는 경험을 안 하다 보니 그 맛을 몰라 그 길을 갈 생각조차 못 하는 건 아닐까. 그러다 보니 나에게 어느덧 인이 박여 가공식품에 익숙해지고 대충 허기를 채우는, 식사를 때우는 길만 알게 되는 거 아닐까. 이 책에서 다루는 재료 중 올리브가 있다. 나는 원래도 올리브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일부러 내 손으로 올리브를 사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이 책을 보고 나서야 책의 가이드를 따라 올리브를 샀다. 가격으로 따지면 과자를 담는 거나 올리브를 담는 거나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처음 사보는 올리브 앞에서, 네모난 체다 슬라이스 치즈나 냉동 피자 치즈 아닌 치즈 앞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과자나 냉동식품은 그렇게 쉽게 담으면서도, 이걸 담기 전에는 ‘언제 해 먹지? 남으면 어떡하지?’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막상 해 먹고 나니 맛있었고, 다행히 남지는 않았다. 

당연히 음식 평론가인 저자와 내가 같은 수준으로 음식을 해 먹는 건 아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주방도 좁고 조리 공간은 턱없이 부족하며 식재료를 소모하기엔 나는 집에서 밥 한 끼 먹으면 많이 먹는 것일 정도로 다양한 방해 요인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식재료를 마냥 무서워하지 않는 것, 이제까지 안 해본 시도를 하는 것, 익숙하게 나 있는 길이 아니라 다른 길을 가보는 것,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분명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이 책이 알려주었다. 저자가 마지막에 소개한 채식 또한 그렇다. 아직 미식이 우리에게 허락된 즐거움일 때 나름대로 즐겨보는 건 어떨까.

참, 이 책에 의하면 올리브는 한식과도 잘 어울린다고 한다. 생각도 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식재료를 활용하는 지평을 열어주니, 이 책을 따라 시도해보지 않을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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