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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Feb 07. 2023

생명의 태피스트리에는 주인이 없다

2023년 1월의 여성 작가의 책 | 생명의 태피스트리 

책속의 말

그런데 지구에서 생명이 존재하는 생물권이라는 층은 생각보다 두껍지 않다. 사과 한 개에서 껍질이 차지하는 두께를 생각해보자. 이 사과 껍질은 지구에서 생명이 살아 있는 층보다 두껍다.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 밑바닥에서 에베레스트산 정산까지는 끽해야 20킬로미터다. 피라미드와 동굴 벽화에서 토스터기와 유엔총회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문명이 모두 이 얇디얇은 층에 모여 있다. 생명체에 주어진 공간이 여기뿐이다. (p. 20)




2023년의 첫 책으로 “생명의 태피스트리”를 읽었다. 동네 친구들과 결성하게 된—지금 나는 동네 친구는 아니지만, 마음만은 그렇다는 의미에서— 독서 모임 ‘동네북’에서 2022년 마지막 독서 모임 때 서로 책을 선물했다. 작년에도 연말에 서로 책을 선물한 다음, 새해에 각자 선물 받은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좋아서 이번에도 하기로 했다. 내가 받은 책은 Y의 선물인 “생명의 태피스트리”였다. 2021년도에 “세상에 나쁜 곤충은 없다”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책 저자의 신간이다. 저자는 노르웨이의 여성 생태학자로 전작에서는 유쾌한 어조로 곤충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며, 인간의 오만함과 모두가 공존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에 대해 설파했다. 이번 책도 이와 비슷하지만, 곤충뿐만이 아닌 다양한 종을 다루며 보다 넓은 범위의 이야기를 한다.

저자는 동‧식물, 균류, 곤충 등 수많은 생명체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태계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일화처럼 친근한 어투로 풀어낸다. 지역과 역사를 넘나들며 자연에서 생명체가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특히 인간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고 연구에 활용되었는지 누군가 바로 옆에 편하게 이야기해주는 듯해 어렵지 않게 이야기에 빠져든다.

읽다 보면 세상에 이렇게 수많은 종이 있고, 그 수많은 종이 생태계에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인간만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만큼 생태계에 도움이 안 되는 종이 또 있을까? 게다가 인간도 수많은 종 중의 하나일 뿐인데 어떤 자격으로 멋대로 자연을 자신의 것처럼 변화시켜도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렇다고 나라고 해서 지금 내가 누리는 편의를 다 포기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그럴 자신은 없다. 저자 또한 당장 자연으로 돌아가고 우리가 누리는 모든 걸 포기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저자는 경이로운 자연을 사랑하고, 그 일부가 자신이라는 점을 사랑한다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도 분명 과학자이기 때문에 자연을 통해 배우고, 이를 인간 삶에 어떻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있다. 저자가 거듭해 말하는 것은 인간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 중의 하나일 뿐이며, 지금 우리가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그 행동에 책임을 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책의 한 구절에 나오듯, 지구에서 생명이 존재하는 생물권은 사과로 비유하자면 사과 껍질보다도 얇다. 그 사과 껍질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비율이란 아마 눈으로 보이지도 않을 만큼 얇을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마치 우리가 지구의 주인인 것처럼 굴고 있다. 그렇게 행동하는 건 인간에게도 고스란히 돌아올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아름다운 ‘생명의 태피스트리’를 영영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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