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의 책읽을깡현 | 천 개의 파랑 (천선란)
투데이의 등에 앉아 달릴 때마다 콜리는 숨을 쉬었고, 호흡이 생명의 특권이라면 콜리는 그 순간만큼은 생명이었으며, 생명은 살아 있는 존재라는 뜻이었다. 콜리는 살아 있었다.
“당신까지 위험해지는데 왜 나를 구했어요?”
“3%였잖아요.”
“고작 3%인 거잖아요.”
“사람은 기계와 달라서 꺼진다고 완전히 멈추는 게 아니니까요. 3%라는 뜻은 말 그대로 살 수 있다는 뜻이에요.”
고백하건대 나는 이 책을 미루고 미루다 읽게 되었다. 독서모임에서도 읽겠다고 했다가 결국 다른 책으로 바꾼 적도 있다. 그렇게 유행했을 때도 읽어야지 생각했고, 리디셀렉트에 있어서 읽어야지 생각했는데 여전히 읽지 않다가 마침내 좋아하는 밴드맨이 읽는 걸 보고 이제야 읽게 되었다. 읽겠다는 마음을 먹을 때부터 센다면 꼬박 몇 년이 걸린 독서인 셈이다.
책 자체는 읽는 걸 왜 망설였을까 후회가 될 정도로 쉽게 읽혔다. 기수(騎手) 휴머노이드인 콜리는 학습 휴머노이드의 칩이 잘못 삽입되어 다른 기수 휴머노이드와는 달리 세상을 학습하게 된다. 아는 단어는 천 개. 천 개의 단어로 세상을 배우고 설명하는 휴머노이드 ‘콜리’는 흑마 ‘투데이’와 호흡을 맞춰 달려왔다. 그러나 경마장에서는 말이 생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말을 혹사시키기 일쑤라 투데이의 건강 상태는 최악에 이른다. 결국 콜리는 투데이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말에서 떨어져 부서진다. 그 콜리를 ‘우연재’라는 소녀가 구매해 고쳐주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투데이를 구하려는 연재와 다리가 불편한 언니 ‘은혜’, 콜리, 그리고 연재의 친구 ‘지수’.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작가의 말에서도 나오지만 이 소설은 현실과 딱 붙어있는 SF 소설이다. 완전히 다른 어딘가의 행성이 배경이 아니라 그냥 이곳의 한국이 배경이다. 휴머노이드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로봇이 활용되기는 하지만 장애는 여전히 고쳐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돈으로 장애를 ‘고칠’ 뿐 사회의 인식을 바꾸려고 하지는 않는다. 동물과 로봇은 인간의 유희를 위해 무한히 ‘사용’된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간을 편하게 했지만, 그건 결국 돈이 많은 인간 한정일지도 모르겠다. 전체적인 시스템은 지금과 큰 변화가 없어 보이는 사회가 이 소설의 배경이며 그 점이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도 세상을 좋은 쪽으로 바꿔보려는 사람이 있다. 그게 연재와 은혜, 지수, 그리고 몇몇 어른들이다. 어른들은 이미 부조리에 익숙하고, 이 세상은 바뀌지 않을 거로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아니다. 잘못된 걸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행동해서 바꾸려고 한다. 불평등한 사회를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이 소설 속에서 결국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해가는 모습은 청소년인 연재와 은혜, 지수가 주도하고, 이 소설의 어른들은 적극적으로 용기를 내진 못해도 자신의 자리에서 그 아이를 도와주는 조력자의 역할을 한다.
현실에서는 아마 이러한 변화를 쉽게 체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나마 이런 모습을 자꾸 보여주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걸 잘못되었다고 계속 말해야 부조리함에 익숙하거나 무뎌지지 않고,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깨달을 수 있기에 이 결말은 파랑파랑하고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