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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Mar 06. 2023

모든 것이 강렬했던 그 시절, 회색 노트

2023년 2월의 지금 나의 관심사|회색 노트(로제 마르탱 뒤 가르)

책속의 말

나로 말하면 내 감정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인간이란,
한낱 짐승이며,
사랑만이 인간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것은 상처입은 내 마음의 부르짖음이고, 그것은 나를 속이지 않으니까! (p. 70)


자기 자신을 비난하면서 일종의 쓸쓸한 쾌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p. 119)




2월 독서 모임의 함께 읽을 책은 내가 추천한 “회색 노트”로 결정되었다. 이전달에 독서 모임에서 “문학소녀”를 읽으며 전혜린에 대해 알게 되었고, 전혜린에게 심정적으로 큰 공감을 했다. 나 또한 10대 때, 전혜린이 소개한 작품 중 하나인 “데미안”에 푹 빠져있었으니 전혜린이 10대 때 빠져있던 작품에 관심이 가는 건 자연스러웠다. 인터넷 서점에서 작품 설명을 읽어보았을 때도 “데미안”이 떠올랐다.

파리에서 마르세유까지,
예민한 두 사춘기 소년이 벌인 일주일간의 가출 사건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마르탱 뒤 가르가 그리는
소년들의 풋풋한 비밀

책 소개대로 ‘예민한 두 사춘기 소년’의 일주일간의 가출 기록이 짧은 책 안에 담겨있다. 자크와 다니엘, 둘은 종교도 다르고 집안 환경도 다르지만 평범한 우정을 넘어서는, 깊은 감정을 교류하는 사이다. 어느 날 둘의 솔직한 감정이 담긴 비밀 노트가 신부님에 의해 들통났고, 둘은 결국 가출을 감행한다.

아마 내가 10대에 읽었으면 분명 지금과는 감상이 달랐을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공감하며 읽지 않았을까. 자크와 다니엘 중 어떤 캐릭터에게 더 마음을 주었을지 10대의 내가 궁금해진다. 거칠고 대범한 자크와 성숙하고 순응하는 편인 다니엘을 보면 나는 예나 지금이나 다니엘과 성정이 비슷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10대의 나라면 자크에게 끌렸을지도 모른다. 뿌리 깊은 가톨릭 집안인 자크의 가정환경에서 우리 집을 비추어 보았기 때문일까. 거칠게 말하자면 가톨릭은 자라나는 아이를 스스로 죄인으로 인식하게끔 해 말을 잘 듣도록 길들이기 때문이다. (미사 예절 중에 자신의 가슴을 퍽퍽 치며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나의 큰 탓이오, 하고 중얼거려야 한다.) 뭘 해도 내 탓이라고 하니 정말 모든 게 내 탓인 줄 알고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모든 것의 원인을 지나치게 나로부터 찾게 된다.

전혜린의 10대를 사로잡았던 글이라지만, 사실 지금 읽어보니 흔히들 말하는 표현으로 ‘오글거리는’ 부분이 있긴 하다. 지금은 이런 강렬한 감정을 통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게도 강렬한 감정만으로 살아가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이걸 그냥 오글거린다는 말로 표현하고만 싶지는 않다. 이때는 친구와 나누는 감정이 전부인 거 같고 그 어떤 것보다 소중했다. 모든 걸 처음 겪으니 모든 것이 강렬하고 크게 느껴지던 10대 시절의 감정의 너울 자체를 나쁘게 보고 싶지 않다.

이제 온전히 10대의 처지에서 생각하기에는 그 시절이 나에게 어느덧 까마득하기는 하지만, 이 책은 그때의 감정과 생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어른들은 아이의 행동을 잠시 ‘탈선’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당시 아이들의 감정은 진심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아이라는 이유로 강렬한 감정은 폄하되곤 한다. 또는 어른에 의해 아이들의 감정이 평가되고 오독된다. 자신들도 그런 시기를 거쳤음에도 마치 그런 적이 없었다는 듯 뻔뻔하게 구는 어른을 보면 과거의 자신이 부끄러워 그런가 싶다. 

p.s. 참고로 이 책은 마르탱 뒤 가르의 대하소설 "티보가의 사람들"의 시작에 해당하는 책이다. 이렇게 긴 시리즈인줄 알았다면 선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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