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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Mar 19. 2023

'잘 바라보는 법',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2023년 2월의 책읽을깡현|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책속의 말

우리의 존재와 삶을 구성하는 정신 과정은 단순히 추상적 혹은 기계적인 과정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다. 대상을 분류하고 범주화할 뿐만 아니라 판단하고 느낀다. 
우리는 각자 오늘날까지의 역사, 다시 말해서 과거라는 것을 지니고 있으며 연속하는 ‘역사’와 ‘과거’가 각 개인의 인생을 이룬다. 우리는 누구나 우리의 인생 이야기, 내면적인 이야기를 지니고 있으며 그와 같은 이야기에는 연속성과 의미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곧 우리의 인생이기도 하다. 그런 이야기야말로 우리 자신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자기 정체성이기도 한 것이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신경의학자인 올리버 색스가 자신이 만났던 환자와의 일화를 담은 책이다. 이 일화는 총 4부, 24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해도 단순히 환자의 증상과 질환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색스가 환자를 만나며 깨달은 점, 인간에 대한 고찰, 질병에 대한 철학을 담고 있어 과학서라고만 분류할 수는 없는,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뇌과학과 신경의학에 관한 지식이 없더라도 술술 잘 읽힌다. 두께만 보자면 얇은 책이 아니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의 능력이 뛰어나며 문장 또한 어렵지 않으면서도 유려하다. ‘과학계의 셰익스피어’,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는 거창한 수식어가 이해가 될 정도로 아름다운 표현과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인상깊다. 내가 번역에 관해서는 하나도 모르긴 해도, 책을 읽을 때 거슬리는 문장이 없이 물 흐르듯 읽게 되는 걸 보면 아마 역자의 능력도 뛰어난 듯하다. 

무엇보다 읽으면서 든 생각은 과연 우리는 어디서부터 인간이라고 정의하는 걸까, 무엇을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하는 것이었다. 책을 읽다보면 색스의 고찰을 따라가며 자연스레 그 지점을 고민하게 된다. 더불어 내가 이 책을 읽기 전 떠올리는 인간의 모습은 굉장히 한정된 형상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증상의 범위는 굉장히 좁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라는 제목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실제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하고 잡아 쓰려고 했던 남자의 이야기가 책에 등장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증상과 질병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저 나와 다른 무언가, 병적인 것으로 뭉뚱그려 치워버리는 듯하다. 나와 다른 누군가, 정상의 범위에서 벗어난 이로 치부해버리면 생각하기 편리해서였으리라.

반면 타인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라면 저자와 같은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애정 있는 저자의 시선이기에 자칫 독특하고 특이한 것에 관한 흥미 위주의 글이 될 수 있었던 것이 독자가 진지하게 고찰할 수 있는 글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는 역자도 후기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시대가 바뀌어 치료법은 그때와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저자의 따뜻한 글은 여전히 우리에게 큰 울림과 고민을 준다. 세상이 변해도 바뀌지 않는 어떤 것은 소중하게 불씨처럼 남아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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