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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Mar 25. 2024

비극을 넘어서는 방법,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

2024년 3월 여성 작가의 책 | 고양이와 사막의 자매들 (예소연)

책속의 말

“하지만 알잖아. 인간이 무언가를 지킨다는 건 그 무언가를 제외한 나머지를 내친다는 말이기도 해. 물론, 나도 내쳐졌고.”
“인간은 매 순간 주어진 상황에 의해 조금씩 다른 존재가 돼. 아주 급작스럽게 달라질 수도, 서서히 달라질 수도 있어. 하지만 인간이 주어진 여러 상황과 선택으로 말미암아 영향받는 존재라는 건 변치 않아.”
말리는 시간이라는 게 참 이상한 방식으로 흐른다고 생각했다. 꼭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관계에 있어서는 어쩐지 휘어지고 틀어지며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 버리곤 했다. 오랫동안 쌓아왔던 무언가가 조금씩 다른 양상을 띠다가, 종국에는 사라지게 된다는 건 슬픈 일이었다.




※ 소설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단편소설은 단편만의 매력이 있지만 나는 장편 소설이 좋다. 그 이야기에 푹 빠져있다가 보면 책장이 넘어가는 것도 아쉬워질 때가 있지 않던가. 점점 흐려지는 집중력 때문에 이제는 그런 경험을 자주 하지 못하지만, 언젠가 다시 맛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장편 소설책을 괜히 뒤적거린다. 이 책도 그런 기대를 품고 읽기 시작했다.

전쟁 이후 사막에 남겨진 할머니 용병 ‘아샤’, ‘창’, ‘말리’는 커뮤니티에 속하지 못하고 떠돌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받아주는 커뮤니티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전쟁 때 상사이자 그들에게 사막에서 살아남는 법을 알려준 ‘정’을 찾아 나선다. 그 여정에서 뜻밖에 발견한 건 정이 키우던 로봇 고양이 ‘치즈’, 가 아닌 치즈의 군단. 수많은 고양이 로봇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곧 정도 찾을 수 있다는 뜻일까? 과연 정을 만난다면 이 힘든 방황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의 주인공은 고양이, 그것도 심지어 로봇 고양이와 노년의 여성 용병 세 명이다. 노인이 주인공인 소설도 많이 읽어보지 않았는데 노년의 여성 용병이라니, 흔치 않은 주인공에 자연스레 매료되었다.

사막을 떠도는 그들을 보니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라는 영화에 나오는 부발리니 전사가 떠올랐다. 그 영화에 등장하는 부발리니 전사도 노년 여성이다. 

당시에는 노년 여성이 누군가의 어머니 역할이나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아닌 강인한 전사로 나온다는 것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는데, 이 소설의 세 용병도 내게 비슷한 인상을 남겼다. 그들은 각자 이유가 있어 용병인 워커로 활동하며 거친 전쟁터에서 살아남았다. 고향 친구 대신 입대하거나, 해일로 마을이 휩쓸리거나, 기후 재난으로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되거나. 커뮤니티에 속하기 어려운 그들의 존재는 멸종한 고양이 대신 로봇 고양이의 등장으로 새 국면을 맞이한다.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는 로봇 고양이들이 그들에게 커뮤니티를 형성하자는 발칙한(?) 제안을 하기 때문이다.

정을 찾지 못하고 주변부 인물끼리 작당을 하나 했는데, 중반부에 어찌 보면 허무하게도 그들이 그렇게나 찾아 헤맨 정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는 결코 김빠질 일은 아니다. 오히려 정의 등장이 극을 다른 의미로 긴장감 있게 끌고 나간다. 그들이 마주한 정은 그들의 기억 속 정과는 사뭇 다르다. 삶의 궤적을 바꾸는 선택이란 무엇일까? 분기의 작은 선택처럼 보이는 것이 쌓여 완전히 다른 궤적을 그리게 된다.

이 소설에서 꾸준히 내보이는 메시지는 인류를 향한 경고이다. 이 소설의 많은 비극은 기후 위기와 전쟁, 방사능과 같이 나만의 안온한 삶을 위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다가 모두가 멸망을 맞이하게 되는 모습에서 비롯한다. 읽다 보면 소설에서 그린 비극뿐만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내가 외면하고 있는 많은 비극이 떠오른다. 그래서 읽으면서 즐겁지만은 않다. 고통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반드시 마주해야 할 일이기도 할 것이다.

결말은 사람에 따라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희망적인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비극을 잊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희망찬 일을 하려고 한다면 이 작은 행동은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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