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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Jun 30. 2024

자연에 이름 붙이기

2024년 6월 여성 작가의 책 | 자연에 이름 붙이기 (캐럴 계숙 윤)

책속의 말

모두가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하는 일 가운데 우리가 생명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게 하는 일, 바로 ‘먹기’를 할 때조차 우리는 우리가 먹는 것이 사실은 생명의 세계임을 점점 더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는 고기가 콧김을 뿜어대는 덩치 큰 포유동물에서 잘라낸 살덩어리가 아니라 스티로폼 접시에 놓인 새빨간 타원형 덩어리라고 생각한다. 생명의 세계는 항상 바로 우리 눈앞에 있지만 우리는 그걸 모두 놓치고 있다.
매번 당신이 선을 하나 그을 때마다, 당신이 지닌 범주들의 가장자리가 흐릿해지는 것 같다. 질서를 지으려 시도할 때마다 예외들과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들이 계속 쌓여가고 결국에는 당신이 만들어낸 분명하고 깔끔한 범주화의 규칙들은 모조리 지워지고 만다.
하지만 과학의 진보는 언어의 일치나 상호 이해의 증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진정한 과학적 분류는 생명 세계의 자연적 질서에 대한 우리의 본능적 시각과 정반대 입장에 선다. 그 분류는 우리에게 생명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사실 틀렸다고 말한다. 과학은 단지 자신의 정확함을 주장하는 것만으로 똑바로 우리 앞을 막아섰고,언제든 우리가 샛길로 빠지려 할 때마다 끼어든다. 우리는 모두 과학의 옳음을 지나치게 확신한 나머지 이런 일까지 허용했다.
움벨트는 생명의 세계에 대한 시각만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를 둘러싼 현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이해하게 해주는 맥락에 대한 시각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우리는 의식하지도 못한 채, 생명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생물로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을 상품들의 풍경에서 살아가는 소비자로 바라보는 관점으로 바꿔치기한 것이다.
어쩌면 오히려 각각의 분류는 있는 그대로, 그러니까 그 사람의 비전, 인간의 움벨트가 표현된 것으로, 보편적인 주제에 대한 하나의 변주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물은 하나의 진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사고라는 백색광을 무수한 명암과 색조의 분류학들로 흩뜨릴 수 있는 프리즘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백색광은 무지개의 서로 다른 색깔들이 정의하는 것도, 그것을 흩뜨리는 프리즘이 정의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이처럼 인간 사고의 빛이 만들어내는 분류학의 다양성도 서로 모순되는 것으로 볼 필요가 없다. 이 다양한 분류학들은 찬란하게 반짝거리는 우리 인간 비전의 무한히 다양한 색조들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재작년, 나도 독서 모임 친구들과 함께 그 책을 읽었다. 나 역시 홀린 듯 빠져들어 읽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열광하는 만큼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알겠는데, 그게 뭐?’ 저자의 심정에 깊게 공감하지 못했던 게 가장 컸고,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명제가 단지 명명 정도의 차원으로 다가왔다. 인간이 멋대로 분류하는 게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그 정도에 충격을 받는다고? 그러니까 그때 나는 이게 얼마나 큰일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의미를 온전히 이해한 시점은 바로 “자연에 이름 붙이기”를 읽고 나서였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영향을 준 것으로도 유명한 이 책은 분류학의 역사를 다루며, 그 사이에서 드러나는 움벨트의 정체를 추적한다. 전통적 분류학에서 수리분류학, 분자 분류학, 분기학까지 어떻게 분류학이 변화했는지 설명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고, 분류학과 마치 갈등 관계를 갖는 듯한 움벨트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를 취해 흥미를 유발한다.

단순히 분류학에 대한 책인 줄 알았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이 책의 세계는 확장한다. 결론에서 저자가 ‘물고기가 없는 이유’와 ‘물고기가 있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 마치 이 둘이 모순된 주장 같지만. 저자가 차곡차곡 쌓아온 전개 덕에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결론에서 추리소설의 반전과도 같은 충격을 받았다.

결국, 분류학은 학문이고, 분류라는 행위를 하는 것은 먼 엣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간, 인류였다. 그러니 이 책이 인류와 지구 차원에서 바라보는 이야기가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우리가 움벨트라는, 각자 감각으로 인지한 세계를 자연에 적용하는 것을 잃고 점점 자본주의 시대 상품에 적용하게 되는 것을 보고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비판한다. 우리는 생명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이 분명한데 점점 생명과 멀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를 비추고, 다양성의 중요성과 타인, 나아가 다른 존재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선하지만 단호한 어투로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인류와 생명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이 묻어나는 책이다. 과학사에서 분명 재수 없는 과학자가 있을 텐데도 저자는 나름의 애정을 담아 설명한다. 과학자로서 열린 마음과 겸손함이 드러나고, 그러면서도 용기 있고 단호하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천명한다. 이 책을 읽으며 과학에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저 도구로서 다뤄지는 과학도, 절대 명제로서 신성시되는 과학도 아닌 ‘인간’이 탐구하는 과학이라는 학문에 대해서. 그리고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 좋은 책이라 믿는다.

그러고 보니 독서 모임에서 한 친구가 사서인 나는 항상 분류하는 사람이니 어떻게 읽었을지 궁금하다고 해서 놀랐다. 나는 전혀 떠올리지 못했던 부분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나도 언제나 분류를, 그것도 인위적인 분류를 하는 사람이었다. 사서마다 얼마나 세세하게 분류하는지 전부 다르고, 분류 번호를 끝까지 다 붙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사서인 우리는 결국 이용자 입장에서 찾기 쉬운 분류 번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도서관 사정에 따라 분류 번호는 같은 주제라 해도 또 달라진다. 사서에겐 이게 바로 움벨트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도서관 분류법에도 한계가 많다. 새로운 개념이 탄생하는 속도보다 분류법의 변화 속도가 느리니까 말이다. 생물의 분류처럼 언젠가 왜 이것을 여기에 분류했는지 미래의 사서들이 의문을 가질 것이다. 사실 지금도 많은 사서가 고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느리지만 조금씩 변화한다는 것이다. 분류는 책 속에만 머물러 있지는 않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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