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베데레 궁전으로 가는 동안 광활한 하늘은 온통 회색빛이었고 안개가 자욱해 가시거리가 길지 않았다. 무척 추운 날씨였다.
곧 상궁에 입장했다. 이곳엔 그 유명한 클림트와 에곤 쉴레의 그림이 있다고 했다. 명성답게, 이토록 흐린 날씨에도 입구엔 사람들이 긴 줄을 만들고 있었다.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미술 작품을 돌아보는 몇 시간 동안 숱한 감정들이 들어왔다 빠져나갔다. 잘 그렸다는 생각이 드는 그림에는 감탄하다가도, 이 미술관에 걸려있는 작품 중에 여성 작가가 있기는 한 걸까 한숨이 쉬어지다가도, 이내 익히 알고 있는 작품들 앞에서는 관성처럼 시선이 이끌렸다.
그 가운데 ‘유디트’가 있었다. 적장의 목을 벤 채 ‘몽환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그 그림 앞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키스’ 앞에도 사람들이 많았지만, 유디트와 함께 사진을 찍는 인파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이내 젠틸레스키의 유디트가 떠올랐고, 눈 앞에서 유디트의 가슴과 함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니 불쾌한 감정이 밀려 올라왔다. (키스 앞에서 똑같은 모션을 취한 채 인증샷을 찍는 뭇 커플들이 시야에 가득차 꽤나 고통스러웠다. 우악스럽게 상대방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며 고개의 각도를 맞추던 남성이 아직도 떠오른다)
에곤 쉴레의 그림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좋아했던 것들이 실제 눈 앞에 펼쳐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가 미성년자를 ‘뮤즈’로 삼아 작품을 그렸다는 사실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숱한 여자들을 뮤즈 삼아 그림을 그렸다는 것. 그런 사실들이 보이는 액자마다 따라다녔다.
‘요절한 천재’라는 타이틀이 여성에게 주어진 적이 있었던가. 28살에 사망한 에곤 쉴레에게 붙은 ‘요절한 천재’라는 말을 곱씹어본다. 나혜석 작가가 떠오르며 요절과 천재, 두 단어가 너무도 멀리 느껴져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