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빙 #1
아래 글은 2018년 11월 어느 날 당시 하던 일에 관해 써두었던 기록이다. 오늘 문득, 이때의 기억이 떠올라 이곳에 그 기록을 옮긴다.
한 학교에서 프리미어, 애프터 이펙트를 가르치고 있는데, 매일 어두워진 시간에 수업을 마치면 불현듯 황량한 기분을 느낀다. 20명 남짓한 수의 학생들이 교실을 빠져나가는 순간이면 그제야 수업을 하며 보았던 것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쓴 학생들, 앞머리에 롤을 말고 있는 학생들, 그들의 손 끝에서 보았던 매니큐어와 대부분의 긴 머리, 필수적인 화장 등. 수업 시간엔 그런 것들에 초연해져야 하기 때문에 순간순간 속에서 차오르는 감정들을 억누르기 바쁘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쓴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곱씹어지는 장면들에 억울함과 분노가 밀려온다.
앞에서 열거했던 것보다, 정말 분통이 터지는 건 학생들이 나에게 질문을 하는 순간들이다. 한 번은 한 학생이 수업 전에 다가와 말을 걸었다. 요지는 수업을 들으니 영상에 흥미가 생겨 영상 관련 공부가 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학생은 말 끝을 자꾸 흐리며 원하는 바를 나에게 명확히 전달하지 못했다. 머뭇거리는 그를 북돋워줄 친구가 옆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을 하다 만 채 자리로 돌아가버렸다. 붙잡을 새도 없이.
이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대부분은 나에게 질문하기를 어려워한다. 설명을 바라며 나에게 도움을 청해도, 무엇이 궁금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게 전달하는 학생은 정말 드물다. 대부분은 '선생님' 불러놓고,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이것이다라는 한 문장을 끝맺지 못한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학생일 경우 의사소통은 더욱 힘들어진다. 최대한 말을 이끌어내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북돋워주고 있지만 정말 쉽지 않다. 나는 정교사도 아니고 일개 강사이기에, 그들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의 한계가 극명하다.
그렇게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고 나면, 이 교실을 채우고 있는 학생들이 잃어버리고 있는 가능성의 합이 얼마나 될지 감히 가늠할 수 없다는 생각에 분노가 인다. 얼마나 많은 기회를, 그리고 가능성을 가져볼 생각도 않은 채 소멸시켜버리고 있을지 상상할 수가 없다. 십 년 전의 나도 그랬으니까. (내 속단이면 얼마나 좋을까.)
때문에 실습을 시키고 난 후 교실 전경을 보는 찰나의 순간에, 이에 대한 분노는 물밀듯이 밀려들어왔다가 그 어느 곳에도 표출되지 못한 채 허공으로 빠져나간다. 가슴이 꽉 막힌다. 몰래 쉬는 한숨이 잦아졌다.
수업이 끝나고 한 뼘 길이의 치마를 입은 학생들을 보낸 후 나도 학교를 나서면, 운동장에 근처 남학교의 남학생들이 축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곳에서 학생들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운동장은 늘 남학생들의 차지였다. 이것이 내가 목격하고 있는 지난한 현실이다. 이게 현실이다.
학교를 올 때마다 현실이라는 말이 너무나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