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1년이 굉장히 긴 시간이라고 여겼다.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달력을
한 장씩 넘기며 여유 있었고 촉박하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는 다르다.
연간 스케줄을 정리하며 일정을 적어 내려가는데
숨이 막혀왔다. 해야 할 일과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들 목록을 보는데 1년이 너무 짧았다.
인생을 살아가는 건 나인데 핸들을 직접 돌리고
있지 않다는 불안감이 갑자기 밀려왔다.
숨이 막히기 전에 아침부터 러닝화를 신었다.
초미세먼지 농도가 조금 높긴 했지만
두려움에 먹히지 않기 위해 나가야만 했다.
이른 아침, 구름이 살짝 낀 날.
평소 달리는 천변에는 사람이 적었다.
달리는 길에 혼자 남겨진 듯한 고요함이 좋았다.
기온도 며칠 전에 비하면 높은 편이었다.
지금 내가 집중해야 할 건 보폭을 유지하고
숨 쉬는 일뿐이다.
해야 할 일들 리스트와 압박감은 잠시 덮어둘 수 있었다.
조용함 속에서 헉헉 거리는 내 숨소리가 들린다.
고명환 작가는 누구나 꺼내지 못한 나의 진짜,
무언가가 있다고 말했다.
나의 진짜는 무엇일까? 발견해야만 한다.
시간에 끌려다니듯 했던 요 며칠이 스쳐 지나가며
답답했다. 어찌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걸 바로 잡아서 주도권을 잡아야 하는 이가 나라는 걸 알기에.
두발을 움직이며 달리는 이 순간이 소중한 이유는
단순하고 내 의지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10km를 달릴 수도 있고 5km에서 멈출 수도 있다.
멈춰 서서 주변 나무와 물을 바라볼 수도 있고
냅다 앞만 보고 질주할 수도 있다.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감사한 시간.
기온이 높은 덕분에 7km 정도를 달렸음에도
땀이 뚝뚝 떨어진다.
진짜 자신으로 살아가는, 진짜를 꺼내서 사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진짜를 꺼내지 못한 지금의 나는
가짜인 걸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땀과 함께 질문들이 떠다녔지만 왠지 모르게
낙관적인 미래도 함께 그려졌다.
'한 달에 300km 정도 마일리지를 쌓아볼까?'
나로 존재하는 시간이 늘어나면 어디로 갈지
방향이 보일 것도 같았다.
한산한 아침에 땀을 흘리니 휘몰아쳤던 감정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달려야만 한다.'
나의 진리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라테 한잔을 마시며 스케줄을
다시 보는데 '그래도 해야지. 해내야지'란
말이 먼저 나온다.
주체적으로 달리고 주체적으로 살기를
다짐하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