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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성일 Jan 31. 2019

제1회 - 러닝 머신(Running Machine)

도시의 실내 헬스클럽 회원들이 러닝머신 위에서 열심히 달린다. 양쪽 옆에서 다른 사람들도 역시 저마다 러닝머신 벨트 위에서 다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 달린다. 땀을 흘리면서 달린다. 거리의 마라톤 코스나 들판을 상상하면서 달린다. 심장과 근육의 피로감을 이겨야 한다는 자신의 정신력을 시험하면서 달린다. 뚱뚱한 사람들은 살이 쪘다는 사실 자체에서 오는 사회적 서러움에서 벗어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이를 악물고 달린다. 달리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운동이 된다. 자신이 조금씩 건강해지고 있고 남 보기 좋은 몸매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한국의 뮤지컬 내부와 그 주변에는 언제나 열정에 가득 찬 사람들이 있다. 극작가, 작곡가, 작사가, 배우, 연출가, 안무가, 무대 디자이너, 조명 디자이너, 의상 디자이너, 음악 감독... 그리고 제작자와 관객. 그 열정의 이유가 무엇이든 뮤지컬의 주변은 뜨겁다. 그 뜨거움에 들떠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뮤지컬이 많이 발전했다고 한다. 창작 뮤지컬도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고, 뮤지컬 시상식도 있고, 전문 극단이나 제작사도 있고, 장기 공연하는 작품도 있고, 해외에 나가서 공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허전함. 허전하다.     


 우리의 뮤지컬은 그 허전함을 메우려고 더 발버둥을 치는 것 같다. ‘나는 허전하지 않아’라고 과시하면서도 ‘이렇게 하면 혹 허전함이 사라질까?’하는 의심을 하면서. 그럴수록 허전하다. 왜 나는 뮤지컬을 보면서 허전함을 느낄까?     


 이러한 허전함과는 달리, 어떤 허접한 뮤지컬을 보고도 너무나 헌신적으로 박수만을 보내는 글들이 인터넷에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나한테 문제가 있는가 하는 의심마저 생긴다. 관객이 순진한 걸까? 내 영혼이 메말라있는 걸까? 인생을 즐길 만큼 여유가 없는 걸까? 분명한 것은 뮤지컬 작품을 만드는데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은 그런 즐거운 관객과는 다른 말을 한다는 것이다. 허전하다는 말과 비슷한 말들이다. 왜 관객들이 그리도 환호하며 박수를 치는 작품을 보고도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기가 힘들까? 그 허전함에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러닝머신 위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고 나서 러닝머신의 정지 버튼을 누르면 헬스클럽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은 그대로인 제자리이다. 처음에 자기가 올라왔던 러닝머신 위. 미안한 얘기지만 우리 뮤지컬은 많은 모습이 그렇게 제자리를 달리고 있는 모습이다. 달리고 있다는 것 때문에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를 러닝머신 위로 올려놓은 도시와 닮은 뮤지컬의 모습이, 우리로 자연을 닮은, 꿈틀거리는 공연예술의 느낌을 잊어버리게 하고 그저 만족하게 만든다.    


 얼마간 나는 이곳을 통해 진짜 들판을 달리는 달리기와 같은 뮤지컬을 위한 사색을 즐겨보려 한다. 달리다 보면 그 허전함의 이유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고, 혹 발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의미 있는 질문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혹 달리기가 벅차면 가벼운 걸음이라도 좋다. 더 바란다면 나의 초라한 글을 읽으며 함께 걸어줄 사람을 많이 만나고 싶다. 이제 운동화도 새로 샀고, 운동복도 새로 준비했다. 출발선에 섰다.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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