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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몬 샤베트 Apr 14. 2021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에 대한 고찰

*본 글은 애니메이션 전문 웹진 <아니나>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anination.net/Content?cd=view&ContentCode=298&CategoryCode=1&SortCode=3)





※ 본 글에는「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와「천청난만!」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0.

 

[진격의 거인 The Final Season] 애니플러스 공식 스틸 이미지


  21년 1분기는 애니메이션 팬들에게는 하나의 축복, 사막 속의 오아시스 같은 시즌이다.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사태로 인해 수많은 애니메이션이 제작이 연기되면서 21년 1분기는 역대급으로 인기작들과 기대작들로 가득 찬 분기가 됐다. [Re: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세계 생활] 2기 2쿨, [전생했더니 슬라임이었던 건에 대하여] 2기 1쿨, [주술회전] 2쿨, [진격의 거인 파이널 시즌], [닥터 스톤] 2기, [5등분의 신부] 2기, [비스타즈] 2기, [유루캠] 2기, [일하는 세포] 2기 등등 초 인기작들의 후속작들은 물론, [거미입니다만, 문제라도?], [약캐 토모자키 군], [호리미야] 등등 인기 원작을 둔 신작 애니메이션까지 무언가를 기반으로 한 애니메이션이 정말 많이 포진해 있는 시기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알찬 21년 1분기의 라인업에도 꿋꿋하게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오리지널 애니메이션들이 있는 것은 꽤 놀랄 일이다. [바나나 피쉬]의 감독이 본즈의 제작진과 만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에스케이 에이트], 일본의 90년대 국민 드라마 작가 노지마 신지가 각본을 맡은 클로버웍스의 스튜디오 첫 단독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원더 에그 프라이어리티], 무려 [코드 기어스]와 [천원돌파 그렌라간]의 제작진이 만난 거대 메카물인 [백 애로우] 등 이번 분기는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또한 많은 이목을 끌고 있다. 오히려 너무 많은 후속작과 인기 원작 배경의 애니메이션이 많다 보니, 이런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시도들이 도드라져 보이는 효과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끔 애니메이션에 대한 평을 하고, 추천할 것과 추천하지 않을 것을 고를 때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 등장하면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막막해지곤 한다.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진 미스터리 박스를 과연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그리고 이것의 뚜껑을 열었을 때 어떤 식으로 반겨주고 감상해야 할지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때마침 21년을 여는 오리지널 애니메이션들이 상당히 높은 수준을 유지한 채 쟁쟁한 작품들 사이에서 힘을 내고 있으니, 이들을 다루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가 아닐까 싶다.





1.


[달링 인 더 프랑키스] 애니플러스 공식 스틸 이미지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항상 긁지 않은 복권이자 양날의 검 같은 존재일 것이다. 복권이 긁히면 [에반게리온],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나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린 아직 모른다] 같은 역대급 대박이 터질 수도 있지만, 때론 [달링 인 더 프랑키스], [길티 크라운] 같은 용두사미도 심심찮게 나오는 것이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다. 당장에 지난 20년 4분기의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중 하나였던 [신의 된 날]에 배반당한 시청자들이 많을 것이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은 기본적으로 어떤 내용이 전개될지 전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일지도 모르겠다. 예측 불가능한 모든 것들은 사람들에게 뭔가 자신의 예상 가능한 범위 이상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한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은 불확실하며 동시에 희소하다. 이 모든 요소는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 지금까지 꾸준히 수요층이 존재하고 제작자들이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을 것이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는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화를 기대하는 원동력이 되는가 하면, 때론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전개가 나오지 않아 역풍을 불러오기도 한다. 앞으로의 전개가 불확실한데, 시청자들은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에 실망하는 것인가? 단순히 전개가 개연성이 떨어지고, 구멍이 나 있는 거라면 실망의 화살을 돌릴 수 있겠지만, 우린 이미 이런 단점이 오리지널이건 원작을 가진 작품이건 상관없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앞서 설명한 단점 외에도 그저 어떤 작품에 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문제들 때문에 실망하는 것이 아닌,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기에 생기는 실망은 대체 왜 발생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렇게 매번 실망하더라도 우리는 어째서 꾸준히 좋은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을 기대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새로운 작품들을 시청하는 것일까?





2. 


[극장판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신편) : 반역의 이야기] 네이버 공식 스틸컷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그들이 표방하는 ‘오리지널리티’는 애초에 성립이 불가능에 가까운 단어라 생각한다. 이미 장르적인 개척이 수도 없이 이루어진 시점에서, 제아무리 오리지널 각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라고 한들 그 공식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시청자들이 그 결과물을 매주 기다릴 때도 자연스럽게 몸에 익은 장르적 공식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영화, 만화, TV드라마, 라디오, 소설 등 수없이 많은 매체는 이 시간에도 자신들의 존재감을 내뿜기 위해 ‘다름’을 추구한다. 그 과정에서 성공한 작품들을 따라 하거나, 의도와는 무관하게 비슷한 내용이 일정한 ‘공식’을 공유하게 되어 이들의 전철을 밟는 후계자들이 등장하곤 한다. ‘장르’라는 것이 성립되는 것이다. 애니메이션 또한 당연히 이러한 장르적인 전철을 어떻게든 밟게 된다. 따라서 창작자들은 자신들의 애니메이션이 ‘특별함’을 지니게 하도록, 장르적인 공식을 부정하지는 못하더라도 몇몇 공식들을 비틀고 부정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마련이다.


단순히 완성된 공식을 따라 양산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하는 창작자들에겐 오리지널 애니메이션만큼 좋은 형식을 찾기 힘들 것이다. 뭐든지 그려낼 수만 있다면 어떤 것이든 사용이 가능한 애니메이션만의 자유로움과 ‘오리지널’이 보장하는 자유로운 출발점은 다른 그 어떤 방식보다도 공식을 탈피하기 좋은 수단이다. 실제로 현재 방영 중인 [원더 에그 프라이어리티]의 경우 노지마 신지가 드라마의 경직된 제작 환경에 한계를 느끼고 애니메이션 각본에 도전한 케이스며, 이 애니메이션을 보는 우리는 그가 기존의 각본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한 온갖 판타지적, 비현실적 설정을 접목하기에 편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원더 에그 프라이어리티] 애니플러스 공식 스틸 이미지


  어쨌거나 이런 형식의 자유 덕에 나온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이하 [마마마])일 것이다. 기존의 마법소녀 장르의 공식을 비틀어 마법소녀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악인 것은 물론, 마법소녀의 활동 자체가 자신이 물리쳐야 할 대상이 되는 파멸의 순환이 되는 어둡고 잔인한 세계관은 기존 마법소녀들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신선한 자극이었다. [마마마]의 대성공 이후 많은 이들이 마법소녀 장르의 비틀기에 동참했고, 그렇게 우리는 [매지컬 고삼즈], [유우키 유우나는 용사다] 등 매체를 가리지 않는 수많은 마법소녀물의 새로운 하위장르에 속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


  분명히 시청자들이 기존 마법소녀 장르에 기대를 품었던 것과 전혀 다른 충격적인 전개를 선사했음에도, [마마마]는 수많은 사람을 열광시켰고, 마법소녀물에 새로운 장르적인 활로를 개척했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었기에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을 설정할 수 있었고, 제로부터 쌓아 올려 나간 세계관이기에 장르적인 한계를 넘어 비틀기가 수월했을 것이다. 시청자들이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으로부터 기대할 것이 모호했기에 배반할 자유가 주어졌고, 동시에 아무도 [마마마]가 어떤 전개를 취하게 될지 알 수 없었기에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마마] 이후 여러 장르의 개척자들이 된 애니메이션들은 단순히 공식을 깨부순 전개가 충격을 주고, 시청자들이 그 배반을 즐겼다는 것으로 성공한 것은 아닐 것이다. [마마마]의 사례를 계속 분석해보자면, 성인이 되지 못한 미성숙한 아이들에게 과분할 정도의 힘을 쥐여 주며 사회의 어두움, 혹은 순수한 악의에 맞서 싸우게 한다는 마법소녀물 장르 자체의 부조리함을 꼬집으며 장르의 경계를 부쉈다. 마법소녀물이라는 장르를 보는 모두가 알면서도 간과하고 때론 무시한 속성을 수면 위로 끄집어낸 것이다. 그렇기에 [마마마]는 시청자들이 무의식적으로 품었던 생각들을 건드리는 충격적인 전개와 이를 위해 준비해 놓은 고유한 세계관을 통해 이 모든 것을 보는 이로 하여금 납득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시도는 해당 장르의 팬이 아닌 사람들조차 기존에 없던 기대를 품게 만들고 새로운 소비자층으로 끌어 올 수 있는 모험이며, 수많은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 제작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시청자들을 납득시키지 못한 비틀기는 단순한 서사의 부족함으로 보이곤 한다. 이미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을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에서, 기존의 기대를 배반하는 이유마저 납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서사의 부족함으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은 창작자의 역량에 매우 크게 의존한다.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 어떤 장르적 관습은 따르고 어떤 것은 새로이 할 것인지 선택하고, 이를 풀어나가는 서사의 구성, 세계관의 설계 등등 모든 것이 오롯이 창작자의 손끝에서 나온다. 아마도 이러한 면이 많은 이들에게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의 제작진 면면을 뜯어보게 만들지 않을까 싶다.





3. 

 

[데카당스] 공식 홈페이지 스틸 이미지


  [마마마]의 대표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만이 가지는 자유로움 덕에 가능한 온갖 시도들은 애니메이션들이 나아갈 수많은 활로를 개척해왔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속성들은 그것이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한 것이지,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기에 가진 모순은 아닐 것이다.


  작년에 방영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데카당스]나 [아쿠다마 드라이브], [천청난만]은 단순히 서사에 구멍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꼈을 작품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분량 내에 최대한 세계관을 납득시키고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해내는 데 성공한 작품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이들이 전개가 부실하다고 비판하며, 뜬금없는 스토리의 전환 등을 큰 단점으로 꼽곤 한다. 물론 세 작품 모두 1쿨에 불과한 콤팩트한 분량으로 인해 이야기가 꽤 축약된 것이 드러나긴 하지만, 그들의 각본이 지향하는 반전이나 전개의 방향성은 납득이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똑같이 분량의 한계로 몰락한 수많은 오리지널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관점에서 이 세 작품에 가해진 비판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TV 애니메이션은 보통 매주 24분 남짓의 매 화가 짧게는 3개월 남짓의 12~13화를 이어서 보게 되는 매체다. 그 기간을 통해 전체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큰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3개월 혹은 그 이상의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한 형식이다. 당연하게도 우리가 애니메이션을 평가할때는 매주 그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만드는 입장에서도 이를 간과할 수 없고, 보는 입장에서도 이를 감안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 부분에서 원작이 있는 애니메이션과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 가장 큰 차이가 생길 것이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은 어떻게 해서라도 초반에 고정된 시청자층을 남기지 못한다면, 상대적으로 시청자층을 유지하기 어렵다.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전혀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제작자(감독, 각본가, 작화 감독, 성우진)등 애니메이션에 참여한 인물들의 팬층으로 수요층을 노릴 수도 있고, 때론 이 애니가 어떤 장르와 어떤 내용을 표방하는지 PV와 시놉시스 등을 통해 알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결국 소비자층을 붙잡는데 ‘도움’을 주는 요소들이지, ‘붙잡는’ 요소는 되지 못한다.


  결국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 숙명으로 안고 가야 할 이런 불안함은 초반 몇 화에 힘이 쏠릴 수밖에 없어 후반 가면 힘이 빠지거나, 매 화 흥미를 유지하고 시청자층을 붙잡아 두기 위해 인스턴트 적인 흥미를 추구하는 방식을 취하다 큰 틀의 전개를 놓치는 등의 실책이 유독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에 자주 등장할 수밖에 없는 큰 원인이 되는 것이다.



[천청난만!] 애니플러스 공식 스틸 이미지


  그뿐만 아니라,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을 홍보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선택하든 간에, 이것이 작품 전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닐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앞서 사례로 든 3개의 작품 중 [천청난만]을 사례로 가져와 보자. 먼저 [천청난만]의 공식 시놉시스를 읽어보자.


19세기가 끝을 고하고, 20세기의 막이 오르는 시대…
천재지만 사교성 제로인 엔지니어 '소라노 앗파레'와, 실력은 뛰어나지만 겁이 많은 무사 '잇시키 코사메'는 어떤 사고로 일본에서 아메리카까지 표류하게 된다.
돈 한 푼 없는 두 사람이 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아메리카 대륙 횡단 레이스'에 참가하는 것.
스타트는 서해안 로스앤젤레스, 골은 뉴욕. 직접 만든 증기자동차로 황야를 가로질러, 크레이지한 라이벌들과 경쟁하고, 무법자들과 대자연으로부터 자신을 지킨다...
과연 두 사람은 가혹한 레이스에서 우승하고, 상금을 손에 넣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시놉시스를 읽어보면 우리는 [천청난만]에게서 자동차 산업이 막 발전하기 시작한 즈음의 미국에서 펼쳐지는 레이스를 통해 박진감 넘치는 경주 장면들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경주는 맥거핀에 가까우며, ‘아메리카 대륙 횡단’과 ‘무법자들’, 그리고 ‘사교성 제로’, ‘겁이 많은’ 두 주인공의 성장담이 메인이 된다. 여기에 더해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하고 원주민 박해가 만연하던 당시 미국상은 기존 애니메이션에서 보기 힘든 묘한 인원 구성을 완성한다. [천청난만]은 홍보 PV나 시놉시스와는 다르게 (현재 시점에서 비주류인) 서부극에 가까운 작품인 것이다. 개인적으론 본편은 이 과정을 꽤 성실하게 그려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급격하게 방향성이 틀어지는 애니메이션의 전개를 보며 홍보 방향과는 전혀 다른 전개에 거부감을 표하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비주류적인 애니메이션의 요소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유입층에 친숙한 스팀펑크에 가까운 차량 디자인과 광활한 미서부 개척지를 배경으로 한 경주를 홍보 요소로 내건 것이 되려 발목을 잡은 것이다. [분노의 질주], [레드라인] 같은 작품을 기대했는데 나온 것이 [매그니피센트 7]과 같은 서부활극이 됐으니, 억울한 심정은 백번 이해가 간다.


  이와 같은 사례는 비단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영화 등의 매체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를 아동용 판타지 모험으로 홍보했다가 질타를 받은 일은 이미 유명하다. 오리지널 각본답게 자유로운 주제와 세계관을 선택할 수는 있어도, 근본적으로 상업적인 성공이 뒤따라야 하기에, 제작자의 의도와 마케팅의 방향성이 어긋나는 상황은 자주 벌어질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이 옳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은 근본적으로 이러한 마케팅의 실책이 벌어지기 쉬울 수밖에 없으며, 만드는 쪽에서도 이를 인지하고 있겠으나 소비자로서도 이를 어느 정도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원더 에그 프라이어리티]를 일상물로 태그한 라프텔의 실책이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이들이 이러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의 숙명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좀비랜드 사가] 공식 홈페이지 키 비주얼


  해가 갈수록 더 많은 시도가 이뤄지고 창작자들은 새로운 것을 창작하는 것에 벽을 느끼게 될 것이다. 동시에 소비자들 또한 끊임없이 작품들을 접하며, 많은 공식에 익숙해지고 처음 보는 것들에게도 그 공식들을 들이밀며 평가를 하는것에 익숙해진다. 우리가 점점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이 쉽게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이제 [에반게리온], [천원돌파 그렌라간], [마마마], [좀비랜드 사가], [카우보이 비밥]이 신선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흔히들 기대하기에 실망을 한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는 오리지널 애니메이션들에 대해 너무 확고한 기대치를 설정한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언급했던 여러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의 취약점들을 감안하고, 그들의 의외성을 즐길 여유를 가진다면, 아마 훨씬 더 많은 즐거움을 이들에게서 찾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 방영 중이거나 혹은 준비 중인 작품들을 놓치지 않을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빈곤한 20년 한 해를 지나 멈췄던 프로젝트들이 전부 재가동된 21년은 분명 애니메이션이 역대급으로 풍족한 한 해가 될 것이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OTT 서비스의 활성화로 낮아지고, 미디어 간의 교류가 더욱더 수월해진 시대가 다가왔다. 어쩌면 올해는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다시 끌어올릴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더 많은 시도가 이루어지고, 애니메이션 시장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를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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