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5, 3
옷을 갈아입고 병원에서 제공하는 원피스형태의 환자복을 입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벽으로 구분되어 있고 침대가 각각 놓여있으며 커텐으로 가릴 수 있는 공간이 양쪽으로 많이 있었다. 나는 이 중 한 곳에 안내를 받고 누웠다.
이불도 아주 폭신하고도 무겁지 않은 느낌이라서 호텔침구를 연상케 했다. 나중에 보니 침대 그대로 시술실로 옮겨져서 시술시에는 침대 아래쪽 바에 발바닥을 대고 무릎을 올려서 시술을 하도록 하여, 침대에서 내려와서 다른 침대 또는 시술대로 올라가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그리고 시술시에는 이불로 최대한 감싸줘서 프라이버시도 지켜주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시점이라서 침대 그대로 시술까지, 그리고 회복실까지 다시 이동하는 과정이 난자채취와 배아이식 모두에 적용되었는지가 확실하지 않다. 그래도 내가 기억을 하는걸 보면 마취를 하지 않는 배아이식 때에는 그렇게 했던 것이 맞다.
난자채취는 전신마취를 하기 때문에 시술 이후 회복시간을 가지더라도 집에 갈 때 혼자 가지 못하게 하며 꼭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 병원에서 이를 확인해야만 내보내준다. 나는 지난 글에도 적었지만 남편이 입국 후 14일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난자채취를 하게 되어 정자도 원외채취를 하였고, 남편이 보호자가 되어 나를 병원에서 데리고 나올 수가 없었다. 병원 방침상 원내로 들어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한 친구에게 부탁하여 대략 예상되는 시간에 와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시술 후 회복시간을 가지고 나서 보호자 확인을 거친 후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정신이 멀쩡한 듯 느껴졌지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고 어떤 사람은 쓰러지거나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여 전신마취 후에는 혼자 운전도 하지 못하며, 혼자 귀가하는 것도 허가해주지 않는다.
난자는 10개가 채취되었다. 그리고 5개가 수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감사한 마음과 함께 기대하는 마음도 생겼다. 몇 개의 배아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
그렇게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4일이 지난 후 배아이식을 하러 다시 병원에 갔다.
독일에서는 법적으로 정해놓은 배아이식의 최대 개수가 있었고, 시술 전에 부부가 몇 개를 이식할지 결정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블로그 글 등을 통해 보니 역시 법적인 최대 이식가능 갯수가 있었고 나이와 여러 상황을 고려한 의사선생님의 조언을 따르는 경우가 많아보였다.
몇 개를 이식하게 될지 너무 궁금했는데, 배아이식 날에는 담당 선생님을 뵙고 시술실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시술 전에 대기하는 공간에서 간호사선생님께 여쭈었더니 3개를 이식한다고 알려주셨다. 3개는 최대로 이식가능한 숫자였다.
침대에 누워 이동한 시술실에서 담당선생님을 뵐 수 있었고 선생님은 웃으며 인사를 건네시며 이식할 3개의 배아사진을 건네주셨다. 그리고 각각 몇 세포기인지 알려주시면서 모두 상급이라고 말씀해주셨다. 한 개가 특히 좋다고 해주셨는데 나중에 사진을 보며 인터넷 검색을 해서 공부를 해보니 3개의 모습이 조금씩 다 달랐고 그 중에 가장 분열이 많이 일어난 한 개의 배아를 말씀하셨던 것 같다.
배아이식 후에는 계속 누워있을 필요는 없다고 하였지만 그래도 집에서 안정을 취하면서 외부 활동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잘 먹고 잘 쉬면서 약 10일 후에 있을 임신여부 피검사 날을 기다렸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