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자기 역할이 구분되어 있는 팀 게임
[야구라는 이름의 인생 – 5. 자기 역할이 구분되어 있는 팀 게임]
야구는 기본적으로 한 팀이 26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페넌트레이스 막판에는 신예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로스터가 확장되는 등, 구기 종목에서 가장 많은 선수를 필요로 하는 경기가 아닐까 한다.
이렇게 많은 선수들이 경기를 하는 만큼, 다른 구기 종목과의 차이점이라면, 전문화된 프로야구는 물론이고, 아마야구까지도 역할 분담이 비교적 엄격하다는 것이다. 특히 MLB에서는 역할의 세분화가 더욱 심화되어 있다.
가령, 마운드 위에 서서 포수에게 공을 뿌리는 투수라 하더라도, 경기를 시작하는 선발 투수(starter), 선발 투수에 이어 마운드에 오르는 중간 계투(reliever), 그리고 경기를 끝맺음하는 마무리 투수(closer)로 세분화 되어있고, 심지어는 중간 계투조차도, mopup reliever, middle reliever, set-up reliever로 나누기도 한다.
수비 포지션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백업 요원으로 어느 포지션이든 다 소화할 수 있는 전천후 선수(utility man)도 있지만, 주전 선수들은 대부분 자기 포지션을 가지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다른 포지션에서 경기를 하지 않는다.
타순 역시 단순히 1번부터 9번까지 타석에 들어서는 순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한 때 40홈런-40도루의 대기록을 노리던 알폰소 소리아노에 대해 끊임없이 잡음이 일었던 이유는, 그의 활약이 1번타자로서의 기대치와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이었다. MLB 호사가들의 끊임없는 소재, AL 유격수 삼인방(SS Troika)의 비교도 사실상 팀 내에서의 역할과 그에 다른 요구치가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1)
그러나, 배리 본즈라는 MLB 역대에서 그 짝을 찾아야 할 정도의 야구 천재가 속해 있는 팀도, 그의 역할이 좌익수에 3번타자로 한정되어 있기에, 때로 경기에서 지기도 한다. 다시 말해, 자기 역할이 구분되어 그 한계가 명확한 만큼, 모든 선수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승리라는 열매를 얻을 수 없다.
우리네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학창시절 너무 많이 들어 지긋지긋한 “학생은 공부하는 것이 본업이다.”라는 말도 역할 구분과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것을 시사하는 말이다. 1루수에게 타석에 선 타자를 삼진 아웃시킬 것을 바라지 않는 야구처럼, 초등학생에게 불끄는 소방관의 역할을 기대하지 않는 우리네 삶이다.
또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구성원들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으려면, 구성원 상호간의 끊임없는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야구로 다시 시선을 돌려보자. 투수가 공 하나를 던지기 위해 투수가 쉴 새 없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린다. 루상에 발이 빠른 주자라도 나가면, 이번엔 3루 코치의 손이 모자며, 코며, 가슴이며, 쉴 새 없이 오가며 사인을 낸다. 수비수가 아웃카운트를 잡고 나서 손가락을 펼치며 현재 아웃 카운트를 알려주는 것도 유기적인 연계를 위한 의사교환 행위이며, 이러한 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팀의 경우, 사소한 실수로 경기 흐름을 망칠 수 있다. (보스턴의 우익수 트롯 닉슨이 아웃카운트를 오인하고, 공을 관중에게 던져 준 해프닝은 유명하다.)
가끔, 남부럽지 않은 환경의 사람이 엄청난 범죄를 저질러서 사회를 경악시키는 경우가 있다. [명문대 재학생, 부모 살해]라는 타이틀의 신문 기사는, 황색 언론의 농간이기는 해도, 분명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이를 의사 교환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 판단한다. 유복한 집안에 지성인(知性人) 부모, 그리고 우수한 성적의 자식들로 구성된 가정은, 분명 외관상 이상적(理想的)인 집안의 모습이라 해도, 구성원 상호간의 의사소통이 결여되어 있다면, 마치 사인이 전혀 없는 야구팀처럼, 작은 실수로도 와해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역할이 구분되어 있고, 그 한계가 분명하며, 구성원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야 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의사소통이 요구되는 게임."
이는 야구를 표현하는 말인가, 아니면 우리네 인생을 표현하는 말인가?
주1) 필자가 이 글을 작성한 2000년대 초반을 기준으로 한 이야기이므로, 현 시대의 야구와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