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타인의 잘못으로 엇갈리는 나의 운명 – 실책
[야구라는 이름의 인생 – 6. 타인의 잘못으로 엇갈리는 나의 운명 – 실책]
야구는 숫자와 매우 절친한 운동경기이다. 경기가 끝나고 Box score를 보면, 홈런, 2루타, 3루타와 같은 타격 기록, 도루, 도루자, 픽오프와 같은 주루 기록, 실책, 어시스트와 같은 수비기록, 그리고 피안타, 실점, 자책, 볼넷, 탈삼진과 피홈런 등의 투구기록, 심지어 관중 수와 풍향, 풍속과 같은 경기 외적인 기록까지 기재되어 있다. 이렇게 많은 숫자들이 매 경기마다 Box score에 올라가지만, 정작 야구장의 전광판에는 매 회 득점 상황을 제외하면 딱 3가지 기록만 수치화되어 표시된다. 안타, 득점, 실책.
득점은 경기의 승패를 가늠하는 요소이고, 안타는 단타와 2루타 이상의 장타까지 포함하는 개념이자, 득점에 필연적 요소이므로 전광판에 기록하는 것이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야구의 수많은 요소가운데 유독 실책이 전광판에 오르는 영예(?)를 차지하는 이유가 뭘까? 심지어 수많은 관중들을 열광케 하는, 일부 관중들은 집에서 손수 [K]자를 그려와서 외야 펜스에 걸면서까지 관심을 갖는 삼진조차도 전광판에는 오르지 못하는데 말이다.
2003년도 월드시리즈 우승팀은 플로리다 말린스이다. 그들의 상대는 MLB 최고 구단이라는 뉴욕 양키스. 총 연봉이 말해주듯이 스타플레이어가 즐비한 양키스이지만, 플로리다에 현저하게 열세를 보인 유일한 부분이 바로 수비이다. 그리고 그 수비가 최종 승자를 갈랐다.
공격력 위주의 현대야구에서 수비는 흔히 간과되는 부분이다. 자유계약(FA)시장을 보더라도, 공격형 선수와 수비형 선수의 몸값은 천양지차(天壤之差)이다. 하지만, 필자가 단언하건대, 실책에 의한 실점은, 안타에 의한 실점보다 훨씬 그 여파가 크다. 연속안타로 실점한 투수에게는 내야수들이 모여서 다독여주고, 격려해줄 수도 있지만, 실책으로 실점한 상황이라면, 그 실책을 한 야수는 투수의 얼굴을 어떻게 볼 것인가? 만일 그 실책이 승패를 가르거나, 대기록을 깨는 상황이었다면, 그 투수의 기분은 어떠할까?
수비의 중요성은 자신의 실수가 타인, 특히 투수에게 귀결된다는 점에 있다고 할 것이다. 실책에 의한 실점은 자책(ER:Earned Run)으로 계산되지 않으므로, 투수 능력의 직접적인 잣대인 방어율(ERA:Earned Run Average)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 승패는 고스란히 투수가 떠안는다. 무자책 패전이 종종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런 실책 때문이다. 결국 타인의 실수로 인해 나의 운명이 엇갈리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필자의 사관생도 1학년 시절 기억이다. 본디 1학년 생도의 삶은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눈을 감을 때까지, 꾸중과 질책 그리고 체력단련(?)이 계속되는 것이지만, 어느정도 적응이 되고부터는 필자 개인의 잘못으로 인한 질책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 대신에 다소 행동이 굼뜬 같은 호실 동기생(이른 바 룸메이트)의 실수로 인한 질책이 늘어났다. 그 동기생의 빨래가 밀려있어도, 서랍에 속옷이 부족해도, 심지어 그 동기생이 매일 쓰고 다니는 안경이 지저분해도, 같은 202호실을 쓰고 있다는 이유로 항상 함께 땀을 흘려야 했다.
당시의 필자는 그러한 연대책임(連帶責任)이 심히 못마땅했다. 내 잘못으로 인해 벌을 받는다면, 그 벌이 다소 가혹하더라도 그다지 기분 나쁠 것이 없었지만, 타인이 치러야 하는 대가까지 짊어져야 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연대책임은 전우의 실수로 내 목숨까지 위험할 수 있는 전쟁터를 감안하면, 오히려 타당한 것이었고, 사관생도 1학년 시절의 그 기억은 필자의 사고방식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전쟁상황을 가정한 군인들에게 더욱 강조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네 삶 속에서도 이러한 연대책임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학교든, 직장이든, 가정이든, 구성원의 실책이 자신에게까지 영향을 끼치는 경우는 너무나 많다.
하지만, 야구에서 배워야 할 중요한 점이 하나 더 있다. 이런 타인의 실책으로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그걸 불쾌하게 여기고 있으면 결국 자신에게 더 큰 손해가 온다는 점이다. 우리는, 완전시합(perfect game)를 진행하던 투수가 단 한번 야수의 실책으로 완전히 무너져서 심지어 패전투수가 되는 경우를 MLB에서 종종 본다. 실책이 발생해도, 아직 노히트 게임이 남아있건만, 평정심을 잃어버린 투수는 패전으로까지 치달은 것이다.
실책은 언제고 발생할 수 있는 것. 타인의 실수가 내게 악영향을 끼친다고 해도, 그 악영향을 확대하느냐, 거기서 멈추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라는 점. 우리네 삶과 닮아있는 야구에서 배워야 할 중요한 내용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