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장래희망은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연락이 왔다.
나의 직업군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다름 아닌 초등학생 친구다.
어머님의 카톡 내용은 이러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저 죄송한데... 첫째 아이가 학교에서 과제로 우리 동네 직업탐험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선생님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해서... 실례를 무릅쓰고 연락드립니다.
바쁘시겠지만 내일 아무 때나 시간 되실 때 5-10분만 시간 내주실 수 있으실까요?'
초등학생의 눈에 나의 직업이 멋있어 보였나?
괜히 뿌듯했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꿈이 확실했다.
평소 머리 만지는 걸 좋아했고 친척 동생들이 집에 놀러 오면 그렇게 머리를 가지고 놀았다.
-아마 그 친구들은 괴로웠을 수도 있다.-
이렇게도 만지고 저렇게도 만지면서 어떠한 결과물을 만들어 냈을 때 어른들은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지 않나.
명절 때마다 칭찬을 먹고 자란 나는 우연히 티브이에서 하는 성공시대라는 프로그램을 보았고 하필 그때 영국의 가위손 세시박이라는 사람이 나왔다.
한국인 최초 영국에서 대학 교수가 되었고 엘리자베스 아덴의 첫 한국인 크리에이티브였다.
사람들의 머리를 만지는 모습을 보고 너무 멋있어 보였고 내가 좋아하는 지금 이 행위가 직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그분의 에세이를 사서 읽었고 그 후부터 나는 세계적인 헤어디자이너를 목표로 삼았다.
친구들이 장래희망에 의사, 과학자, 선생님, 대통령등을 적을 때 난 변함없이 매년 같은 꿈을 제출했다.
'장래희망 : 세계적인 헤어디자이너'
나의 학창 시절은 비교적 순탄했다.
사춘기로 인해 부모님을 힘들게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사춘기가 없었다.
어쩌다 과외 한 번 해봤고 학원은 친구들 따라 몇 개월 다녀본 게 전부다.
워낙 꿈이 확고했고 부모님도 자녀의 학업에 아니 정확히는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셨다.
미용학원에 다니고 싶었지만 그땐 내가 너무 어렸고 형편 상 어려웠다. 결국 고등학교를 미용고로 진학했고
내가 꿈꿔온 학교생활과는 거리가 있어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당시 미용에 큰 꿈을 가지고 온 친구들 보다는 소위 말하는 노는 아이들의 집합장소였고 현재 그 학교는 폐교되었다.-
그 안에서 나는 학급의 임원을 도맡았고 매주 영단어 시험도 100점을 맞으며 우수하게 졸업했다.
그로부터 나는 줄 곧 꿈을 향해 달렸다.
그때 당시 꿈이 한 단계 진화해 교육자의 길을 걷고 싶었는데 수도권에는 2년제 대학 밖에 없어 어쩔 수 없이
지방에 있는 대학을 고려했는데 수시로 대학에 붙었고 막 학기엔 장학금을 타는 기회도 얻었다.
그렇게 나는 기숙사 생활을 하며 4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방학 때마다 친구들이 유럽 배낭여행을 다닐 때 나는 미용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었고
미용을 전공으로 이수하며 학사로 졸업했다.
사실 졸업 전, 그러니까 정확히 4학년 2학기때부터 취업했다.
취준생 시절도 없이 바로 사회에 뛰어들며 일을 시작한 20대 초반이었다.
성장의 길을 멈추기 싫었고 함께 공부하는 동료들에게 뒤지기 싫어 오로지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목표 하나만 보고 달렸다. 주위의 친한 친구들이 만나자고 해도 나는 거절 아닌 거절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주말이 바쁜 직업이기에 주말 약속을 잡을 수도 없었을뿐더러 평일에 쉬는 날이면 매번 연습에 연습을 더하는 나날들이었기에 가끔은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나의 젊음을 바치고 있나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4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고 드디어 2013년 25살.
나는 영국 런던에서 공부를 마치고 디자이너가 되었다.
그로부터 4년 뒤 29살.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허무해졌다.
청소년기에 누구나 겪는 사춘기, 그리고 성장통.
10대만 겪으라는 법 있나? 오히려 10대 땐 무사히 잘 지나갔는데 올 것이 왔다.
30대를 코 앞에 둔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