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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븐제이 Jan 06. 2024

고요한 바다

피피섬 투어가 있는 날.

스피드보트를 타고 바닷가를 시원하게 가로지르며 달릴 때면 아무 생각이 없었다.

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있고 바람에 날리는 머리칼이 얼굴을 간지럽혔다.

어느 나라를 여행하든 투어를 했던 적이 없다.

패키지여행도 안 해본 나로서는 기대반 설렘반이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알아보고 공부한 게 아니여서일까 처음 들렀던 곳 이름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몇 군데 왔다 갔다 했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 곳은 바다 한가운데서 한 스노클링과

피피섬에서 주어진 자유시간 그리고 뱀부 아일랜드.


스노클링은 처음이었다.

2019년도에 시드니 갔을 때 브론테비치에서 바다 수영을 한 이후 아주 오랜만에

바다 수영을 하게 되었다. 두렵기도 했지만 설레기도 했다.

구명조끼 입었고 물안경 준비 됐으니 입수해 볼까?

배에서 수직낙하하듯 그대로 미끄러져 입수 완료.

구명조끼를 입은 탓인지 몸은 쉽에 떠올랐고 바다 한가운데 내가 떠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얕은 파도와 물살이 밀려오는데 내 힘으로 감당이 되지 않았다.

발버둥을 치고 수영을 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스노클링이고 뭐고 배에 다시 올라타고 싶었다.

아직은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했다는 생각과 동시에 더 이상은 무리인가 싶었다.

하지만 다시 배에 올라가려고 하니 아쉬운 마음이 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배 끝에 위치한 간이 계단을 붙들고 있으니 가이드 중 한 명이 여기 있으면 위험하니까

바다로 가서 즐기라고 했다. 내 마음도 모르고 속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 순간만큼은 가이드들에게도 자유시간이 주어진 듯 신나게 놀고 있었다.

물 만난 고기들처럼.

구명조끼도 안 입고 인어공주처럼 바다를 누비는 모습이 살짝 부럽기도 했다.


그때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다.

가이드 중 한 명이 지레 겁먹은 날 발견한 듯했고 자가기 손 잡고 이끌어줄 테니 함께 가자고 했다.

난 전적으로 그를 믿고 따랐다. 그의 손을 필사적으로 꼭 붙잡았다.

나중에 친구가 해준 이야기지만 살라고 잡고 있는 모습이 너무 웃겼다고 했다.


바닷속이 엄청 맑고 깨끗하진 않았으나 내가 본 세상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동시에 무서운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못했다.

앞에서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려고 이끌어주는 이 친구를 위해서라도

함께 즐겨야 했지만 중간중간 숨도 쉬어야 했고 물고기도 봐야 했고 손도 잡고 있어야 해서

정신이 없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느 순간엔 몸과 마음에 긴장을 풀고 바다에 맡기기로 했다.

그러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고 바닷속 물고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 깊은 곳 아래에는 뭐가 있을까 궁금했다.

신기하고 색다른 경험이었다. 더 깊이 들어가 보고 싶었다. (물론 공포심은 여전했지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긴장이 풀린 듯했고 점점 지치고 힘들었다.

날 배 위로 데려다주고 다시 유유자적 바닷속 탐험을 떠나러 간 가이드가 그 순간엔

멋있어 보였다.


여행을 다녀온 후 바다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떨쳐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내가 나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는 숙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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