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생활의 첫 위기
입사 1~2년 차 때까지는 신입사원이었기 때문에 조금 실수를 해도 어느 정도는 용서가 되는 시기이다. 새로운 환경에 들어와서 적응하기까지 많은 스트레스와 어려움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으니까, 선배들이나 거래처 분들이 어느 정도는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곤 했다.
회사에 입사해서 나에게 주어진 업무는 영업지원 업무였다. 전국의 전화국에서 제품을 문의하거나 제품 발주를 내면 주문 접수를 받아서 출고 조치를 하고 세금계산서 발행까지 하는 게 나의 주 업무였다.
주 고객은 KT((구)한국통신), 지역 대리점, SO 사업자(종합유선방송), 공사업체, 납품업체 등이 있었다. 대부분의 고객을 전화로 만나다 보니까 상냥함은 기본이고, 민첩하게 고객의 요구 사항에 응대를 해야 했다.
신입사원 때는 모르는 제품이나 용어가 있으면 고객에게 ‘죄송합니다. 제가 신입사원이라서 잘 몰라서 그러는데, 확인하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연락처와 성함을 메모하여 선임 선배들에게 문의하여 해결해서 재 상담을 하곤 했다. 내가 1~2년 차 때 제일 많이 사용했던 말이 ‘죄송합니다. 제가 신입사원이라서 잘 몰라서요’였다.
그런데 2년이 지나고 3년 차가 되었을 때 내 기억에 경상남도 KT함양지점 이었던 것 같다. 3년 차라지만 기술적인 것 까지는 많이 부족할 당시이긴 했다. 그때도 어김없이 KT 직원 분이 제품 문의를 해오셨다. 나도 잘 모르는 기술적인 부분이라서 습관적으로 고객님에게 ‘죄송합니다. 제가 신입사원이라서 잘 몰라서요. 확인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렸더니, 그분이 대뜸 하는 말씀이 경상도 특유의 억양으로 ‘아가씨, 아가씨 작년에도 나한테 신입사원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언제까지 신입사원이에요?'이렇게 반문을 하시는 것이었다. 그분은 몇 번 나와 통화를 하셔서 내 목소리를 기억하고 계셨던 것이었다. 순간 조금 창피하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해서 그때부터는 신입사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 같다.
1년 차, 2년 차, 3년 차가 되었는데 그분 말처럼 내가 언제까지 신입사원으로 생활해야겠나 싶었다.
그분 덕분에 또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인생을 살다 보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직간접적으로 만나다 보면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3년 차도 되었으니 이제 신입사원의 티를 벗을 때가 되었구나 생각했다.
내가 업무적으로 이렇게 만나 분들이 수 백 명, 수 천명은 될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과 상담하면서 배운 것도 많고 느낀 것도 많다. 전국의 KT 직원분들을 상대하다 보니 지역마다 특색이 있어서 그분들하고 통화할 때는 그분들에게 맞추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어쩔 때는 한 달에 자주 통화하는 분은 20번 넘게 통화도 했던 것 같다. 그중에서는 유선상으로 조금 친해져서 고객분이 농담 삼아 '오래간만에 서울말 들으니 좋네요. 언제 이쪽에 내려올 일 있으면 연락해요. 맛있는 음식 대접할게요'하고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그냥 인사로 건넨 말씀일 수도 있지만 너무 고마웠다.
실제로 고객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회사를 찾아와서 물건을 구매하시는 몇몇 분들을 제외하고는 나의 업무는 대부분 전화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일들이었다.
1년에 한 번씩 KT 선로 현대화 장비 전시회나 코엑스에 있었던 통신 장비 전시회가 내가 고객들을 직접 얼굴을 대면하여 제품을 설명하고 상담할 수 있는 통로였다.
OSP(OUT SIDE PLANT_통신 선로 장비)제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이제는 우리 회사에서 생산하고 취급하는 제품들이 쉽게 눈에 들어오면서 나도 이제 회사의 일원이 되어 가는구나 느끼게 된다. 남들이 원하는 대기업은 아니지만 작지만 강한 중소기업이 우리 회사라는 사명감이 조금씩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3~4년 차 계장 시절.
사람들이 과거를 회상하면서 항상 그 시절로 돌아가면 정말 새롭게 열심히 살거라 얘기들 한다.
나도 힘들 때는 동기들끼리 퇴근하고 밉상인 선배들을 안주 삼아 서로를 위로해주면서 그렇게 치열하게 생활했던 것 같다. 그래도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어보면 나의 대답은 'NO'다.
보통 사람들은 과거 얘기를 자주 한다. 옛날에는 내가 어땠고, 얼마나 잘 나갔는지 아냐고 하면서 예전에 한참 잘 나갔던 그때가 참 좋았다고 하면서 그 시절 이야기를 밤새도록 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현재이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은 미래이다. 언제까지 과거의 영광에 머물러서 시간을 낭비할 것 인가.
과거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땠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과거에 내가 신입사원이어서 많은 실수를 했고, 잘 몰라서 허둥지둥했던 그 시간은 말 그대로 어리버리했던 과거이다. 그 시간들을 발판으로 현재 내가 이자리에 서있으니까.
나는 현재를 살고 있고, 미래를 살아가야 할 사람이기 때문에 과거에 잘못을 했더라도 앞으로 열심히 잘하면 되는 것이다. 예전에 몰랐던 부분이 있다면 지금부터 다시 공부를 하면 되는 것이다.
나도 후배들이 들어오면 우스갯소리로 예전에는 지금 KT가 한국통신이라는 공기업이었고, SK가 선경이라는 비디오테이프 만드는 회사였고, 그때는 인터넷이 4메가 8메가였다. 넌 4메가 ADSL 써봤니?? 시티폰은 아니?? 물어본다.
이건 우리 회사가 정보통신 관련 기업이기 때문에 통신의 흐름을 알려주려고 하는 의도도 있고, 반은 우리가 통신을 선두하고 있는 기업이라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자신감을 갖게 하기 위해서 과거의 히스토리를 자랑스럽게 얘기를 해주지만 이건 교육차원이지 다른 의도는 없다.
더 이상 과거의 영광에 숨어 살지 말고 밖으로 나와야 더 큰 그림을 볼 수가 있다. 그래야 남들보다 한 발자국 앞서 갈 수 있다.
난 그래서 과거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현실에 더 충실하고 싶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 미래를 위해 더 투자하고 노력하고 싶다. 과거의 그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현실에 충실하고 싶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서 나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신입사원은 만 2년 미만의 직원들이라고 생각한다. 2년이 넘으면 자기 업무에 스킬도 생기고, 더 발전적으로 업무를 보기 시작하는 시기인 것 같다. 신입 때는 선임이 시키는 일 위주로 했다면 3~4년 차 때에는 주어진 업무를 다방면으로 확장해서 보는 시기인 것 같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데이터를 단순하게 분석했다면 3~4년 차부터는 분석한 데이터를 가지고 영업에 어떻게 적용하면 시너지가 나올지?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적용하면 더 효율적으로 바뀔 것 같다는 감이 오기 시작한다. 정말 그렇게 업무에 적용하면서 새로운 즐거움을 알게 되고, 하나씩 배워나가는 것 같다.
그렇게 해서 실제적으로 업무에 효과가 나타나 회사에서 인정을 받게 되고, 주위 동료들한테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3~4년 차. 이제는 신입사원의 마인드가 아닌, 현재를 미래를 건설적으로 내려다볼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할 때이다. 그래야 회사에서 나의 입지도 다지게 되고, 새로운 업무가 주어져도 다시 도전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과거의 영광이 아닌, 미래의 영광을 쌓아야 할 중요한 시기이다. 이것을 만들어 내는 건 바로 나. 우리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