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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이 크는 나무 Feb 29. 2020

언어의 온도 _ 이기주 작가

책 리뷰


나의 언어의 온도는 몇 도일까?



요즘 들어 세월의 빠름을 다시 한번 느낀다. 어리게만 느꼈던 아이들이 어느새 훌쩍 커버려 내가 한마디를 하면 열 마디로 되받아친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차가운 말을 내뱉기도 한다. 그리고 후회를 한다. 나의 언어의 온도는 몇 도일까?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이번에 리뷰할 책은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이다.


이기주 작가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서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들려오고 보이는 것들을 엿듣고 기록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그리고 일상에서 사람들이 무심코 교환하는 말과 끄적이는 문장에는 절실한 사연이 도사리고 있을 것 같아서 작가는 쉽게 지나치지 못했는데, 그렇게 해서 탄생한 책이 언어의 온도라고 한다.



섬세한 것은 대개 아름답다. 그리고 예민하다. 우리말이 대표적이다. 한글은 점 하나, 조사 하나로 문장의 결이 달라진다. 친구를 앞에 두고 “넌 얼굴도 예뻐” 하려다 실수로 “넌 얼굴만 예뻐”라고 말하는 순간, 서로 얼굴을 붉히게 된다.


말과 글에는 나름의 온도가 있다. 따뜻함과 차가움의 정도가 저마다 다르다. 적당히 온기 있는 언어는 슬픔을 감싸 안아준다. 세상살이에 지칠 때 어떤 이는 친구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고민을 털어내고, 어떤 이는 책을 읽으며 작가가 건네는 문장에서 위안을 얻는다.


용광로처럼 뜨거운 언어에는 감정이 잔뜩 실리기 마련이다. 말하는 사람은 시원할지 몰라도 듣는 사람은 정서적 화상(火傷)을 입을 수 있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표현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이다. 상대의 마음을 돌려세우기는커녕 꽁꽁 얼어붙게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을 집어 든 우리의 언어 온도는 몇 도쯤 될까? 무심결에 내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소중한 사람이 곁을 떠났다면 '말 온도'가 너무 뜨거웠던 게 아닐까. 한두 줄 문장 때문에 누군가 마음의 문을 닫았다면 '글 온도'가 너무 차갑기 때문인지도 모를 노릇이다. 어쩌면.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던지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는 위안을 주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한다. 이왕이면 따뜻한 언어를 주변에 전달하면 좋을 것 같은데, 잘 안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을 다시 보면서 따뜻한 언어와 글을 일상에서 많이 담아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탈무드에 말의 중요성에 관한 좋은 글귀가 있어서 메모해 놓은 것이 있다. 나의 첫 책'나는 삼성보다 작은 회사가 좋다'에서도 말의 중요성에서 인용한 글귀이기도 하다.



'험담을 하는 것은 살인보다 위험하다.

살인은 한 사람만을 죽이나 험담은 반드시 세명을 해치게 된다.

험담을 하는 장본인과 그것을 제지하지 않고 듣고 있는 사람, 험담의 대상이 된 사람이다.'


'험담하는 사람은 흉기를 사용해 남을 해치는 것보다 더 큰 죄를 짓는 것이다.

흉기는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상대방을 해칠 수 없지만 험담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도 해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불타고 있는 장작에 물을 끼얹으면 속까지 젖어 들어 꺼지지만 험담을 전해 듣고 분노에 차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사죄한다 해도 그 마음속의 불을 꺼줄 수 없다. '


'손가락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은 남의 험담을 듣지 않기 위해서이다.

험담이 들려오면 재빨리 두 귀를 막으라.'


-탈무드-



책 표지에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라는 문장을 보고 예전에 이 책을 처음 집어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책 표지를 넘기면 작가가 일러두기라고 해서 적어놓은 글은 있는데, 이 글도 너무 좋았다.



한 권의 책은 수십만 개의 활자로 이루어진 숲 인지도 모릅니다.

언어의 온도라는 숲을 단숨에 내달리기보다

이른 아침에 고즈넉한 공원을 산책하듯이 찬찬히 거닐었으면 합니다.



이 책을 한꺼번에 다 읽지 말고, 갑자기 마음이 헛헛하거나 바쁜 일상을 환기시키고 싶을 때 책꽂이에서 꺼내서 조끔 씩 읽어 내려가면 더 좋은 책이다. 한 챕터의 내용이 길지 않아서 가볍게 읽어 내려가면 마음에 차분해진다. 작가가 말하는 언어의 온도를 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랑, 위로, 사람+사랑+삶




'흔히들 말한다.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것이 사랑이고 하지만 그건 작은 사랑인지도 모른다.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큰 사랑이 아닐까.’



우리는 일상에서 어떤 사랑을 하고 있을까? 위문장을 읽는데, 나는 평소 가족이나 주변에 어떤 사랑을 하고 있나? 되돌아보게 되었다.


정말 큰 사랑은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이 진정하게 그 사람을 위해주는 것!!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아이들이나 주변에 작은 사랑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작은 사랑에 불과했다. 아이들이 싫어하는 잔소리를 줄여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잘 안 되는 게 사실이다. 혼자 피식 웃어본다.




'위로는 헤아림이라는 땅 위에 피는 꽃이다, 상대에 대한 앎이 빠져 있는 위로는 되레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상대의 감정을 찬찬히 느낀 다음 슬픔을 달래 줄 따뜻한 말을 조금 느린 박자로 꺼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여기서 작가는 상대의 웃음 뒤 감춰진 상처를 감지할 때,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뿐 아니라 싫어하는 것까지 헤아릴 때 ‘그 사람을 좀 잘 안다’고 겨우 말할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주변 동료나 가족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떻게 보면 위로라고 건넨 말에 상대방이 더 큰 상처를 받기도 한다.


작가가 말한 것처럼 상대방의 감정이 어떤 상태인지 시간을 갖고 천천히 생각한 다음에 조금 느린 박자로 따뜻한 말을 꺼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위로를 받은 사람이 정말 위로가 되었다고 느꼈을 때 나와 상대방의 마음이 통한 것이다. 뭐든 때와 장소가 맞아야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제대로 상대를 보듬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들이 PC 자판을 치면서 가끔 오타를 자주 치게 되는데, 작가는 그 경험을 이렇게 글로 적고 있다.



‘어제는 노트북을 켜고 ‘사람’을 입력하려다 실수로 ‘삶’을 쳤다. 그러고 보니 ‘사람’에서 슬며시 받침을 바꾸면 ‘사랑’이 되고, ‘사람’에서 은밀하게 모음을 빼면 ‘삶’이 된다



몇몇 언어학자는 사람, 사랑, 삶이라는 세 단어가 모두 하나의 어원에서 파생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작가는 사람이 사랑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삶이 아닐까라고 말하고 있다.


정말 사람, 사랑, 삶이라는 세 단어를 곱씹어 보니 많이 닮았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 세 단어처럼 우리에게 영향력을 주는 단어도 없는 것 같다. 삶이라는 것이 어찌 보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행복하게 사는 것이 우리의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기도 하니까. 사람이 있기에 사랑이 있고, 그 사랑이 있는 것이 우리 삶이기도 하다.


행복이라는 것이 높은 위치에 올라가고, 큰 성공을 거뒀다고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보내는 이 순간, 이 시간이 진정으로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누구에게나 바다가 있다. 슬픔, 비움과 채움



누구에게나 바다가 있다고 한다.



‘사람은 태어나면 다들 자기만의 배에 오르게 된다.

가끔은 항로를 벗어나 낯선 섬에 정박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끊임없이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간다.

이유는 단 하나, 자신만의 바다를 건너기 위해서,

다만 바다를 건너는 일이 모두 똑같을 리는 없다. 저마다 하는 일과 사는 이유가 다르고, 사연이 다르고, 또 삶을 지탱하는 가치나 원칙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어떤 바다를 건너고 있을까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인생을 사는 것은 다 비슷비슷한 것 같다. 잔잔하게 흘러갈 때도 있고, 어쩔 때는 생각지도 못한 폭풍우를 만나서 갈 길을 잃어버려서 흔들거리기도 한다. 그래서 살면서 나만의 인생 나침반, 인생의 기준이 중요하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 제대로 된 나의 나침반이 있다면 길을 잃고 헤매고, 돌아가더라도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누구나 각자의 바다를 가지고 있고, 속도나 상황이 다 다르다. 중요한 것은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의 원칙을 가지고 인생의 바다를 건너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살면서 주변에 의해 많이 흔들거린다. 자녀 교육이나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고, 주변에서 내가 틀린 것 같다고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은 이런 주변의 말 때문에, 내가 정말 잘못된 길을 가고 있나? 불안하기도 하고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하고 살아가는 것이기에,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가끔 시간을 내어 나는 지금 어떤 바다를 건너고 있다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다.




우리가 살다 보면 자주 맞이하는 것이 슬픔이다. 생각하지 못한 어려움을 겪고, 사랑하는 사람과 갑자기 이별을 하게 되고, 주변 사람들 때문에 슬프기도 하다.



‘슬픔은 떨칠 수 없는 그림자다. 목숨을 다해 벗어나려 애써보지만 마음대로 될 리가 없다. 그저 슬픔의 유효기간이 저마다 다를 뿐, 누군가에게는 잠깐 머물러 있고, 누군가에게는 꽤 오래 달라붙어 괴롭힌다. 시인의 말처럼 우린 종종 슬픔에 무릎을 꿇는다. 그건 패배를 의미하지 않는다, 잠시 고개를 조아려 내 슬픔을, 내 감정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과정일 터다’



일상을 살다 보면 우리는 많은 슬픔과 마주하게 된다. 믿었던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아 슬프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슬프기도 하다. 슬픔에는 유효기간이 다 다르다는 말이 참 공감이 됐다.


우리의 인생에는 희로애락이 항상 함께한다. 좋은 날만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생각하지도 못한 어려움 때문에 슬픔을 맞이하게 되고, 그렇다고 그 상황을 외면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그 상황을 시간을 갖고 정확하게 들여다보면 조금씩 해결책이 보이게 된다. 그래서 내 감정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과정이라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무엇이든 내가 바라보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는 구절이었다.




‘비우는 행위는 뭔가를 덜어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비움은 자신을 내려놓은 것이며 자기 자리를 누군가에게 내어 주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비우는 일인 것 같다. 지금까지는 열심히 살아오면서 채우는 것에만 열중한 나머지 더 이상 더 채울 공간이 없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이제는 조금씩 비워나가면서 새로운 것들로 채워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채우고 비우고.. 어떻게 보면 우리 인생 사이클이 채움과 비움을 반복이었다. 지금까지는 직장을 갖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내왔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를 해왔다. 이제 40을 넘고 나니,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고 비울 시기인 것 같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면 그만큼 공간이 필요하니까..


말과 글이 참 운치가 있는 책!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


요즘 세상이 코로나19로 불안하고 어수선한데, 이때 어느 한 챕터를 딱 펼쳐 읽어보면 이런 불안한 마음이 착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현재 나를 돌아보고 나를 만나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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