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리의 전문가가 되자
회사 입사 10년 차에 나는 새로 개편된 물류팀의 팀장을 맡게 되었다.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난 직책에 상관없이 평소에 내가 하던 방식대로 좀 더 효율적으로 팀을 정비하고 싶었다. 우리 팀은 말 그대로 물류관리. 회사에서 취급하고 있는 모든 제품들의 물류관리 및 배송을 책임져야 하고 생산제품의 생산도 같이 관리해야 했다.
팀을 맡고 처음 진행한 일이 회사에서 장기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재고 파악 및 재고 처분이었다.
우선 본사 창고와 공장 창고 등에 산재해 있고 숨어 있는 자재들을 파악해서 공장별로 정리하고, 제품 입고일, 원가 등을 확인하여 정리를 시작했다.
새로 개편된 팀에 처음 주어진 업무이어서 팀원들과 협력하여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일을 추진했던 것 같다.
항상 일을 하다 보면 주변에서 많은 잡음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동안 회사에 숨겨져 있던 재고들을 끄집어내어 수면으로 내놓았을 때 많은 어려움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당시 제일 힘들었던 부분이 신념과 타협 간의 갈등 부분이었던 것 같다. 나의 머리는 신뢰가 우선이니까 신념에 맞게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나 상황이 어느 정도는 타협을 해서 같이 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암묵적인 강압. 그래서 나의 이런 업무처리 방식은 직원들 사이에서는 일명 버릇없는 눈치 없는 사람처럼 취급되어졌다. 나의 업무처리 방식이 직원들과의 소통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진실를 감춘다고 감춰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까지 회사 생활하면서 신뢰를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왔고, 그렇게 배워왔다. 고객과의 신뢰, 협력업체와의 신뢰, 직원들과의 신뢰. 나의 판단의 결과로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지만 나의 판단이 맞다고 생각했다. 일부 직원들의 관리 부실이 수면으로 떠오르면서 일부 직원들의 타깃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난 나의 업무 처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부는 재활용하기도 하고, 다른 제품에 전용해서 사용하기도 했다. 장기 재고를 처리함으로써 물류창고 유동성도 확보하고 회사에는 여러 가지로 플러스 요인이 되었으니까.
참 이때 직책만큼이나 힘들었던 시기였다. 직급은 과장이었지만 직책은 물류팀 팀장.
어떻게 보면 주위에서 직원들이 바라보는 시선은 내가 무슨 특혜를 받은 양. 어떻게 하는지 보자는 식으로 타 부서 직원들이 참 나를 힘들게 했던 시기였다. 사장님께서 나에게 이런 직책과 업무를 부여한 것은 내가 다른 사람들과 타협을 하지 않고 성실하게 업무를 처리할 거라 믿었기 때문에 맡겼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감사했던 게 우리 팀 직원들이 너무 착하고 이런 나를 잘 이해해주면서 잘 따라와 준 것이다. 그래서 팀 체계를 하나씩 잡아갈 수 있었고, 팀을 안정화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디를 가나 사람들의 험담은 있기 마련이다. 직원들이 뭐라 하든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했고, 나에게 주어진 업무를 제대로 해내어서 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여자만의 섬세함과 다정함을 팀원들과 업무에 접목하여 일을 추진해 나갔다.
그렇게 묵묵히 업무를 지원하다 보니 그 효과가 다른 팀에게도 전해져 영업팀 매출도 신장되었고, 좋은 시너지 효과가 나왔던 시기였다. 좋은 결과가 나오다 보니 조금 더 욕심이 생겨 새로운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고, 업무를 할 때 좀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연구하게 되었다.
업무 보고 양식과 데이터도 한눈에 알아보게 정리하여 영업팀에게 실시간 피드백을 해주어 영업 효과도 극대화시켰다. 물류관리를 전산화하여 관리 체계를 잡아갔고, 협력업체 관리, 생산관리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나에게 주어진 업무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고 싶었고, 나를 믿고 따라 준 팀원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기를 원했다. 내 자리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시기. 신념과 주변과의 타협으로 많은 갈등이 공존하던 시기.
우리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의 신념대로 일을 처리하다 보면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질타를 받을 때가 있다. 이 것을 어떻게 슬기롭게 넘기느냐가 제일 큰 문제이다. 우리 속담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다. 일이 커지기 전에 쉽게 처리되었을 작은 일들을 방치하다 보면 나중에 더 큰 문제를 야기하여 처음보다 몇 배의 노력을 들여서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나중에 결과가 어떻게 될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의 눈앞의 현실이 힘들다는 이유로 근본적인 문제를 보지 않고 덮어버리려고 한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갈등이 항상 존재한다.
무슨 일이든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모든 것들을 포용할 수 있는 나의 그릇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고 그 그릇에 주변을 슬기롭게 담아 가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나의 생각을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해를 시키고 같이 나아가는 것이 직장생활의 노하우인 것 같다. 아직도 이 문제가 나에게 큰 숙제인 것 같다. 정답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