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을 앞두고

사회에 첫 발을 대딛다

by 꿈이 크는 나무


사람들은 누구나 지난 과거를 회상을 하면서 그때가 참 좋았지 라고 말하곤 한다. 나도 시간이 지나고 회사생활을 하면서 냉정한 사회 현실에 이리저리 부딪치고 나니 그래도 학교라는 울타리가 참 좋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곤 했다.


대학교 때는 학생이라는 특권이 있어서 그냥 공부만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만 받으면 그나마 부모님한테 면이 섰었다. 공부라도 잘해서 가끔 장학금이라도 받으면 할 말이 있었던 때가 우리의 대학생활이었다. 학생만이 당당하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었기에 공부만 잘한다면 다른 것들은 용서가 되는 학생이라 가질 수 있는 면책 특권.

나도 그 특권을 누렸던 한 사람이었다.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요구하는 성적을 위해 공부를 했고, 나의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그냥 하루하루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그렇게 대학 4년을 보냈던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생활했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대학수능시험 점수에 맞춰 나의 적성과는 상관없이 등 떠밀리듯이 대학과 학과를 결정해서 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때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 꿈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도 못했고, 앞으로 살아갈 미래를 위해 이런 중요한 이슈사항에 대해서 나에게 진지하게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냥 아침 7시에 등교해서 저녁 10시까지 시달리는 고등학교 생활이 싫어서 빨리 대학교에 가서 이런 힘든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나부터도 그랬으니까,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나와 우리 부모님에게 해주었던 진학지도는 이랬다. 나의 내신 성적과 수능점수가 현재 여기에 위치에 있으니 안정권인 학교와 학과를 선택해서 점수에 맞춰 원서를 넣자고, 이게 내가 고등학교 3년 동안 공부해서 받은 진학지도의 전부였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소질이 있는지 물어봐 주는 사람도 없었고, 나의 꿈같은 건 대학 원서 접수에 중요한 사항들이 아니었다. 지금도 난 고등학교 때 대학을 위한 입시에 목을 매는 학교와 그런 시스템을 당연하게 주입하는 사회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창 꿈을 꾸고 미래를 생각해야 할 시기에 무조건 대학에 모든 포커스를 맞춰서 수업을 하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학교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때는 놀고 싶으면 대학교에 가서 놀라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다. 정말 대학교가 인생 전부의 대안은 아닌데 말이다.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사실 이런 현실도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하나씩 느꼈던 것들이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교에 가면 전부라고 생각했었고 대학교 때는 사회에 나가 직장생활을 하면 모든 것 들이 다 해결될 거라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그래도 요즘은 90년대의 주입식 교육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아이들의 꿈에 조금씩 포커스를 맞추어 진학지도를 해주는 학교도 늘어나고 있고, 직간접적으로 직업 체험을 할 수 있는 사회시설도 생기고 있으니까 바람직한 현상이라 생각한다.


내가 대학교를 입학했을 때는 지방이긴 하지만 국립대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사회가 이렇게까지 치열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1997년 IMF를 겪으면서 사회가 급속도로 변화하면서 안정적인 공무원이나 선생님이 인기 직종이 되어 갔다. 내 주변의 친한 친구들도 4년대 대학교를 졸업하고 교대로 편입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은 다들 잘 되어서 여기저기에서 멋진 선생님으로 우리 아이들을 즐겁게 가르치고 있다.


가끔 나도 교직을 끝까지 이수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한 적이 있었다. 교직에 복수전공을 다 하기에 너무 무리여서 교직을 중간에 포기를 하고 복수전공을 선택했다.



고3 때 담임선생님의 진학지도대로 점수에 맞춰 인문대에 들어왔지만 나와는 많은 괴리감 있었다.

연로하신 부모님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국립대를 선택했고, 학과는 당연히 점수에 맞춰 진학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학과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그래서 학과에 적응을 못하고 있을 때 C.P.U.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였다. 내가 대학생활 중에 가장 잘한 일이 컴퓨터 동아리 C.P.U.를 선택한 것이다. 지금도 여기에서 만난 20년 지기 친구들과 선배들과 소통을 하고 있으며, 대학 4년 동안 동아리에서 배운 컴퓨터 지식이 나의 사회생활의 밑거름이 되었다.


1, 2학년 때는 내가 전공한 학과에 적응을 못해서 중간에 편입도 생각해봤고, 재수도 진지하게 고려했었다. 그러나 결론은 빨리 졸업을 해서 내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부모님께 더 이상은 부담을 드리고 싶지도 않았고, 나도 빨리 사회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그때는 간절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2학년 때부터는 교직 이수도 신청해서 교직 수업도 들어보고 3학년 때부터는 복수전공을 시작하고. 복수전공 때문에 4학년 때까지도 학점 이수 때문에 바쁘게 생활했다. 중간중간에 계절학기도 받아 학점 이수를 서두르기도 했고, 1학년 때 좋지 않은 성적을 받은 과목을 재수강하여 학점을 올리기도 했다.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면서 자격증 준비하고 여기저기 채용공고를 찾아보면서 답답한 마음 반 설렘 반으로 보냈던 4학년 말.


사회에 나가면 TV 드라마에서 보듯이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되어 멋진 사무실에서 좋은 오피스텔에 살면서 재미있게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환상을 갖고 있었다. 무엇을 하든 학생보다는 직장인이 나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고, 나도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해서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생각을 하며 살고 있다. 시야를 넓게 보자


지금도 주위에는 사회생활을 앞둔 수많은 취업 준비 생들이 있다. 회사에서 16년 가까이 근무하면 느낀 건 소위 말하는 요즘 아이들은 힘든 일은 그리고 상대적으로 페이가 적은 중소기업은 우선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눈을 한 단계 낮춰서 보면 중소기업은 여러 가지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먼저 본인의 노력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일들을 다양하게 배울 수 있다. 관리, 영업, 마케팅, 생산, 물류 등 다양한 부서의 일들을 경험해 볼 수 있으며, 본인이 잘할 수 있는 업무를 더욱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가진 회사이다. 그런데 대기업 같은 복지와 급여가 보장이 안된다는 이유로 그저 쉽게 중소기업에 도전을 하지도 않고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막상 현실은 그렇지 않다. 취업 현실은 더더욱.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어 놓고 기다려보지만 면접 보라고 연락 오라는 곳은 50%도 되지 않고, 막상 면접을 다녀보지만 내가 생각하는 이상하고 현실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주위에서도 회사를 선택할 때 회사의 이력과 4대 보험이 되는지 기본적인 것을 따져 보라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내가 우리 회사에 지원하게 된 이유는 중소기업이지만 창업한 지 13년이 되었고, 홈페이지를 보면서 한국통신이라는 공기업과 거래하고 있어서 안정적이고 통신 사업이라는 비전이 있어 보였다.


통신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가까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우리가 집전화나 인터넷을 하기 위해서는 통신이라는 기본 베이스가 깔려 있어야 하기 때문에 향후에 지속적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지금도 우리 회사를 선택한 것을 잘했다고 생각한다. 작지만 강한 중소기업인 우리 회사에서 소위 밑바닥부터 배우면서 인생을 배웠고, 세상을 배웠으니까. 어디에서 내가 무엇을 하든지 내가 우리 회사에서 배운 기초로 모든 것들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준 나의 회사.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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