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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성인 Mar 29. 2016

다섯째날. 블타바 강가의 두 집.

2016년 2월 24일. 프라하 스메타나 박물관, 카프카 박물관.

다섯째날

2016년 2월 24일 수요일 -2


이 날의 날씨는 말 그대로 환상적이었다. 누가 이 날씨를 2월의 유럽이라고 믿겠는가! 마음 속에 드보르작이 가득찬 나는 다리도 별로 안 아파져서 재개재개 구시가지로 향한다. 이번에는 백색 태양의 옷을 갈아입은 프라하를 보고 싶어서다. 틴 교회와 구시청사, 얀 후스 동상이 보이는 광장은 벌써 흥겹다. 꽤 많은 관광객들, 연인들 (왜 더 어릴 때 못 왔을까!) 거리의 악사들, 행위 예술가들, 비둘기들, 음악과 다양하게 섞여드는 세계각국의 언어들, 가끔 택시 바퀴가 돌길을 달리며 내는 경쾌한 소리. 이 모든 것들이 즐겁다. 



나도 이번에는 셀카봉을 준비해 왔으므로 이 훌륭한 풍경에다 내 적당한 얼굴을 함께 담는다. 곧 나는 여세를 몰아 스메타나 박물관으로 향한다. 카를 교 근처에 있는 이 박물관 앞에는 큼지막한 스메타나의 좌상이 있다. 이곳은 카를 교와 블타바 강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기에 아주 좋은 곳이기도 하다. 



체코 국민음악의 아버지인 스메타나는 교향시 "몰다우(체코명 블타바)"로 유명하다. 교향시란 교향악으로 문학적 주제를 형상화한 작품을 일컫는 표제음악의 일종인데 몰다우는 교향시 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작품에 속한다. 


스메타나 박물관에서 바라본 프라하 성과 카를 교. 블타바 강의 모습.


태곳적의 신비를 간직한 물길에서 

유장하게 흐르는 강물이 된 블타바는 

축제가 벌어지는 보헤미아의 마을들을 지나고

달이 자기 빛조각들을 흩뿌려 놓은 밤의 고요를 지나고

천방지게 넌출지게 뛰노는 성난 물길도 되었다가

마침내 모든 보헤미안들의 기쁨을 한데 모은 

밝고 기운찬 생명의 큰 강이 된다.


프라하 스메타나 박물관. 피아노와 뮤직 스테이션



원래 몰다우는 체코의 전설들을 여섯개의 교향시로 묶은 명작 <나의 조국>의 두번째 작품이다. 당시 프라하에는 독일어를 쓰는 소수의 사람들이 상류 사회를 이루고 있었는데 스메타나는 바로 이 계층에 속했음에도 체코 민족음악의 부흥에 투신한 인물이다. 오케스트라의 지휘대(포디엄)를 형상화 해 놓은 이 곳의 뮤직스테이션에 올라가 지휘봉으로 각 파트를 가리키면 민족에 대한 사랑이 절절 끓는 스메타나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한편 프라하는 카프카의 도시이기도 하다. 나는 이제 카를 교를 건너 카프카 박물관으로 향한다. 프라하의 카프카 박물관 앞에는 문학사에서 K를 나의 글자로 만들겠다던 작가 자신의 포부를 기념하는 듯한 K 자가 서 있고 조금 쌩뚱 맞게도 두 사람의 머슴아가 서로 마주 보고 오줌을 누고 있는 - 그런데 오줌 줄기가 영 시원찮다. - 기괴한 조형물이 서 있다. (대체 뭐지?)



어쨌든 <변신>이라는 기괴하고도 현실적인 작품을 남긴 이 유대인 작가는 평생 거의 프라하 안에서만 살았다. 그는 이 프라하 도시를 누비며 보험를 팔러 다녔고 전화를 받았으며 소설을 쓰고 각혈을 했다. 그리고 그 자신도 벌레가 되어 버린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처럼 벌레로 사는 듯한 경험을 했다. 당시 유대인은 전 유럽에서 벌레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유대인 문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관료주의와 산업화 아래 인격과 개성과 소통을 잃고 소외된 사람들은 모두 한 마리 처치 곤란한 벌레이다. 평생 뼈빠지게 일을 하고 자식들을 건사한 한 가장이 어느 날 갑자기 치매에 걸린다고 생각해 보라. 그토록 열심히 살아왔건만 늘 직장이 바빠 자녀들과는 말 한 마디 제대로 나누지 못했고 아내 또한 그의 존재를 잊은지 오래다. 그가 벌어오는 돈만이 그를 증명해 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어느날 치매에 걸린다. 이것이 바로 카프카가 생각해 낸 <변신>의 상황이다. 소통이 영영 단절되어 버린 채 유용성을 잃어버린 자는 인간이 아니라 벌레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비극을 이만큼 더 충격적으로 묘사한 사람이 또 있을까?



카프카 박물관은 카프카의 어린시절,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 카프카가 사랑했던 여인들, 프라하 문화계의 분위기 등을 주제별로 살펴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프라하에서 활동했었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또 박물관의 한 부분에서는 극도의 관료주의가 얼마나 갑갑한 것인지. 어떻게 사람들의 개성을 없애고 대체가능한 부속품으로 만들어 버리는지를 당시 사용되던 전화기와 밀폐된 무채색의 공간 등으로 실감나게 그려놓았다. 카프카 작품들의 초판본과 번역본들도 인상적인 전시물이었다. 한편 한국어로 된 작은 가이드북도 준비되어 있다. 비록 무료는 아니지만, 55코룬만 내면 프라하에 흩어져 있는 카프카의 흔적들을 찾아다닐 수 있다. 


카프카 박물관은 그다지 크지는 않았지만 역시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둘러 보고 괜시리 지치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박물관이 어둑어둑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뱃 속에서 "이제 작작 좀 하지 그래?" 라고 성질을 낸다. 오전부터 박물관 세 개를 돌아보고 나니 이미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던 것이다. 내 위장들은 주인의 무심함에 지쳐 비명에 삿대질이다. 조금 무리하면 몸이 복수를 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나는 내 위장들에게 미안해 하며 얼른 다시 카를 교를 건너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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