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부터 박물관 3곳을 돌고 나니 당이 바닥을 찍는다. 이십대 체력이 아닌 걸 몸소 느끼며 식당으로 가는 발걸음은 터덜걸음이다. 거리 예술가들의 예술혼 돋는 노래를 들으며. 카를 교 근처의 "후사"라는 곳을 추천받았는데 이 곳은 벨벳 맥주가 유명하다고 한다. 벨벳처럼 거품이 부드럽다나.
어쨌건 어제 저녁 굴라쉬를 먹은 터라 다른 요리를 시켜보기로 했다. 돼지는 나중에도 기회가 있겠지 싶어 칠면조 요리를 시켰는데 맛은 괜찮았지만 당이 떨어진 몸에서는 기름기를 원하는데 요놈의 칠면조 고기는 나처럼 열심히 걸어만 다녔는지 기름기 제로에 찔깃찔깃 건강하기 이를 데 없는 육질이냐. 맛은 나름 괜찮은데 묘하게 나의 상황과 안 맞는 메뉴. 순간 일드 <고독한 미식가>에 나오는 주인공이 떠오른다. 나도 한 입을 베어물고 잠시 콧소리를 내다가
"음. 유마이~!"
이러고 싶었는데 지금은 왠지 "괜찮아. 실패하면 후회하면 되지" 하는 대사를 읊고 있다.
(벨벳비어: 처음엔 이렇게 거품이 확 올라오고, 나중엔 저렇게 진정된다)
그래도 벨벳 맥주는 꽤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거품이 부드러운 것은 물론이고 홉향이 싱그러운 필스너 본연의 특성에다 아주 젠틀한 목넘김이 더해진 만족스러운 한 잔이다.
식사를 마치니 이미 시간이 거의 3시반이다. 아까 메뉴를 기다리며 가이드북을 넘겨보다가 알게 된 한 가지 사실을 다시 곱씹어본다. 프라하에 왔는데 프라하 성에 갈 수 없다는 놀라운 사실. 날이 너무 좋았던 탓에 나는 글쎄 지금이 2월 동절기라는 것을, 그래서 프라하 성이 오후 4시면 닫는다는 것을 깜박 잊은 거다. (그래도 날씨가 너무 좋았던 것이 착각의 이유가 되었다는 것은 참 마음에 든다. 유럽의 겨울에 이런 멘트를 날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사치스러운가.) 나는 다시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을 떠올리며 "괜찮아, 또 다시 오면 되지" 라고 생각한다.
체코 필하모니의 주 공연장인 루돌피눔에 가서 드보르작 동상을 카메라에 담는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주공연장 앞에 기념할 만한 인물이 한 사람 서 있다면 어떨까? 세종대왕님이나 이순신 장군님 말고 예술가 중에도 이런 분이 있을텐데. 우리나라에 동상이 많이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음악가나 예술가가 없어서? 아니면 열혈 우상화 반대론자들 때문일까? 아니면 뿌리깊은 사공농상 의식이 이런 데서도 나타나는 것일까?
이번에는 체코 음악 박물관으로 향한다. 루돌피눔에서 다시 블타바를 건넌 뒤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가는데 나에게 낯익은 이름이 눈에 띈다. 토마섹 거리. 내가 아는 그 토마섹이 맞을까 하고 거리에 들어서니 과연 꽤 큼직한 저택에 현판이 붙어 있다.
"바츨라프 얀 토마섹"이 1850년 이 집에서 서거했다.
바츨라프 얀 토마섹, 독일명으로는 벤첼 요한 토마섹은 프라하에서 활동하던 체코의 가곡 작곡가이다. 당시 프라하는 북독일 혹은 동부독일과 빈을 잇는 문화적 거점이었기 때문에 음악에서도 역시 독일적 전통과 오스트리아의 전통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토마섹은 이 점에서 독일 가곡사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한다. 그는 베를린 가곡악파와 빈 고전주의의 중간에 서서 음악적으로는 빈의 모차르트 스타일을 추구하고 문학적으로는 베를린 가곡악파처럼 괴테, 쉴러를 작곡한 것이다.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그의 가곡은 초기 독일가곡사에서 무시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아무런 준비나 조사도 없이 왔는데, 무척 반갑고 기분이 좋다.늘상늘상 현판을 읽고 다니는데 익숙해진 편이지만, 그래도 예상 밖에 의미 있는 장소를 만나는 건 무척 행복한 일이다. 아까 광장에서도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현판을 발견하고 반가웠는데 토마섹은 아무래도 음악가다 보니 더 반가웠나 보다.
체코 음악박물관에서는 여러가지 특이한 피아노들과 첼로, 바이올린, 기타 여러가지 악기들을 구경하였다. 이런 박물관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여러 악기들이 그냥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가르쳐준다. 피아노의 할아버지쯤 되는 클라비코드에서부터 모차르트가 프라하 공연 때 연주했던 피아노, 옆구리에 서랍장을 부착한 가구형 피아노, 기린, 피라미드 모양, 혹은 중국풍 그림이 그려진 인테리어형 피아노. (요즘 스피커들이 인테리어 기능을 갖추고 있듯이) 가정용 오르간과 진공관, 휴대용 피아노까지 신기하게 생긴 건반악기들이 있다.
현악기 중에서도 우리가 흔히 아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가 아닌 여러가지 옛 악기들이 있었다. 줄이 4개인 바이올린 계열의 악기와는 달리 이 곳에 전시된 악기들은 줄이 6개다. 이런 악기들은 바이올린 군 악기들과의 경쟁에서 밀려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지게 되었지만 말이다. 결국 악기라는 문화 또한 사회적인 선택과 합의에 의해 생겨나는구나 하고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블타바 강변의 댄싱 빌딩을 보고 기묘하게 생긴 카프카의 동상을 보고..... 이렇게 하루가 저물어 간다. 이 두 조형물은 뭐랄까. 기괴하면서도 특별하다. 현대적인 프라하의 느낌을 잘 보여준다고 할까. 몸과 머리는 텅 비어있는 거대한 옷덩어리(?) 위에 무등을 탄 카프카. 현대사회의 공허를 카프카스럽게 잘도 만들어 놓았다. 댄싱빌딩은 사실 빌딩 허리를 거대한 손으로 움켜쥐어서 저렇게 틀어진 듯한 모양이다. 춤춘다는 느낌인줄은 모르겠는데...... 어쨌거나 인상적인 건물이다. 어쨌든 제대로 하루를 둘러보았을 뿐인데 시간이 잘도 흐른다. 해가 지고 나니 오늘 밤이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밤이구나. 아쉬움이 남지만 이래야 또 다시 올 것 같으니 잘 되었다 싶기도 하다.
마지막 밤.
나는 다시 식당으로 간다. 이번에는 콜코브나 첼리니라는 식당이다. 화약탑 근처에 있는 사람이 왁자하고 큰 식당. 금연석과 흡연석이 나눠져 있지 않았지만, 뭔가 먹고 마실 분위기가 충만하다. 일단 필스너 우어크벨을 생맥으로 한 잔 시키고 이번엔 뭘 먹는다? 하고 고민을 하다가 "거위 다리 한쪽"을 먹기로 한다. 이번 선택은 점심 때의 아쉬움을 만회하는 대성공이다.
거위 다리는 기름지고도 풍부한 맛을 보여주었고, 특히 겉부분은 바삭하니 씹히는 맛이 있고 그 바삭한 부분의 바로 아랫쪽에는 향긋한 거위 기름이 흐르며 또 그 아래에는 거위의 살이 층을 이루며 부드럽게 씹히는데 그 삼층의 맛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또 너무 짜지도 달지도 않은 소스와 후추와 향신료도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곁들여진 감자요리도 독일 것만은 못하지만 그럴듯하다. 함께 마시는 필스너 우어크벨은 기름기가 많은 거위 요리와는 더할 나위 없는 궁합이다.
나는 이어서 코젤 다크 한 잔을 더 주문한다. 일단 코젤은 맛있는 맥주다. 사실 굳이 안주와 함께 먹을 필요가 전혀 없다. 하지만 마시다 보면 조금씩 입안에 개운함보다는 단맛이 남는다. 그것은 코젤이 맥주에 약간의 설탕을 첨가하기 때문인데 나는 그런 달작지근한 - 그것도 맥주 본래의 달달함이 아닌 끝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차라리 코젤을 먼저 마시고 우어크벨을 나중으로 했으면 좀 더 개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일 그랬다면 거위와의 궁합이 깨졌겠지. 뭔 맥주 한 잔 가지고 이러냐 싶지만 이런 건 다 기분이 좋아서 하는 소리다. 나는 충분히 먹고 마셨고 흡족했다.
계산을 하고 나오니 남은 돈은 170코루나. 한 만원 정도 되는 돈이다. 환전한 코루나는 다 쓰고 가기로 했으니까 이 돈으로 기념품을 산다. 기념품이라 해봐야 비싼 크리스털이나 고르기 까다로운 화장품 등등이 아니라 가볍지만 임팩트 있는 냉장고 자석이다. 하지만 사진으로는 화려하고 보암직한 크리스털을 몇 장 담아간다. 값을 치르고 나니 이제 단 한 푼의 코루나도 내 주머니 속에 없다. 왠지 뿌듯하다.
그 유명한 프라하 성도 못 가 보아는데도 뭔가 알찬 프라하 여행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다시 내려온 프라하의 아름다운 밤. 나는 푸른 프라하의 마지막 밤에다 아쉬움을 버무린 재회의 희망을 가만히 끄적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