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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열하루

일곱째날. 인터메조

2016년 2월 26일 밤. 저녁

by 나성인

일곱째날.

2016년 2월 26일. 금요일



20160226_204544_HDR.jpg 뮌헨. 레스토랑 벨라 이탈리아


어느덧 다시 하루가 저문다. 뮌헨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나의 마음은 다시금 말을 잊고 고요해진다.


그 어떤 시절을 나는 살아왔었나.

내 앞에 앉은 강운이가 자신의 음악에 대해

자신의 피아노에 대해 묻지만

나는 미안하게도 지금 강운이 나이 때의

내 뮌헨 시절의 모습을 하염없이 떠올린다.


그런 방황이야

유학 나오기 전에

결혼하기 전에

끝냈어야 할 것을.


내 삶과 선택의 결과가 그래도 견딜만큼 가벼웠던 시절이

너무나 부지중에, 황망스럽게 흘러가 버렸다.

나는 내 삶이 여전히 가벼웁던 시절에

여러 선택을 제대로 못 해 본 것이 아직도 아쉬운데,


알고 보면 내게 주어지지 않았던

그 많은 선택지들이 또한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기도 하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동경이

내 삶을 만들어간다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

더 이상 내 삶을 아쉬움으로 채울 것도 없는 일이다.


그러다가 그를 바라 본다.

그는 이미 너무나 좋은 피아니스트이다.

다만 그에게는 약간의 성공이 적시에 꼭 필요할 뿐이다.

그의 음악에게는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으리. 그깟 콩쿨이 무에 그리 중요하냐고.

그러나 그의 삶 앞에서는 그를 기쁘게 해 줄 무슨 일이라도 반드시 일어나

그의 삶에 쏟아지는 희락의 음률에 나도 흠뻑 함께 젖어보고 싶을 뿐이다.

샐린저가 홀든에게 아낌없이 내려준 그 소낙비를

나도 그의 덕에 한 번 따갑도록 함께 맞아 보고 싶을 뿐이다.


나는 사실,

그의 싸인을 받고 싶다.

그는 이미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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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그 시절 함께 먹었던

벨라 이탈리아의 파스타를 먹는다.

스파게티 까르보나라는

여전히 5유로 90센트이다.

여전히 그 시절 그 주인 아저씨가 있고

여전히 그 시절 파스타 속에 죽은 벌이 들어가

공짜 카푸치노를 얻어먹은 일이 떠오른다.

그 시절의 기억은 아름답다.

우리가 만일 열 배나 우리 삶의 지평이 넓어져

스파게티 까르보나라를 59유로를 주고 먹는 날이 오더라도

나는 그와 함께 벨라 이탈리아의 5유로 90센트짜리

까르보나라의 맛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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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에서의 마지막 밤.

맥주를 따르고 한 모금 한 모금을 넘긴다.

한 모금 한 모금이 이제는 아쉽지 않다.

뮌헨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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