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0일 서울 -> 빈
어떻게 비행기를 탔는지 모르겠다. 조금 멍한 상태로 기내에서 주는 걸 받아먹는다.
영화를 본다. 첫번째 <마션>. 화성에 홀로 남은 한 남자의 이야기.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다. 다 보고 났는데 무척 외로웠다. 내가 그동안 좀 외로웠구나.
두번째 <더 셰프>. 술과 마약에 빠졌다가 재기를 노리는 천재 요리사의 이야기. 사실 완벽주의자는 그 완벽주의를 지키느라 생기는 자신의 불완전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친다. 다만 그의 완벽주의가 민폐를 보상하고도 남는 보람과 가치, 그리고 사랑을 선사한다면? 사람들은 고민에 빠진다. 이 악마 같은 자식의 훌륭함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영화에서 말하려는 것은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 주인공은 셰프이고 완벽주의자지만 늘 빚진 자이다. 그의 가치를 알아봐주는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아니다. 빚 정도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주는 선량한 사람들을 때때로 도박의 상황에 빠뜨린다. 이런 인간은 늘 대박 아니면 쪽박이니까. 결국 완벽주의자는 저 혼자 잘난 것 가지고는 근사한 일을 할 수 없다. 그 지랄을 다 받아주고 따라주는 선량한 손발들의 힘이 없이 그가 어떻게 설 수 있겠는가. 언젠가 C.S. 루이스에서 읽은 인용구절 가운데 "최상층은 최하층이 없으면 서지 못한다"는 말이 기억나는 영화이다.
세번째 <겨울 왕국>. 카이와 게르다의 이야기가 엘사와 안나의 이야기로 바뀌었다. 안데르센 원작에 다뤄지는 악의 문제는 좀더 미국식으로 희석되고 눈의 여왕이라는 인물도 엘사 자신의 또다른 자아로 내면화된다. 작품의 열쇠인 진정한 사랑과 영원의 모티프는 게르다의 변함없고 순수한 사랑보다는 용서와 화해, 그리고 약간의 동성애적 분위기가 뒤섞인 자매간의 우정으로 대체된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만하면 잘 미국화 시킨 작품이다. 하지만 역시 노래는 피곤하다. '렛 잇 고 Let it go'는 이 영화의 가장 큰 히트곡이지만 사실 음악적 힘은 약하다. 이 장면이 몰입도가 높은 것은 엘사가 보여주는 동작이나 에니메이션 연출이 인상적이기 때문이지 음악 때문은 아니다. 반복은 효과가 떨어지고 도약은 맥빠진다. 음악적 에너지를 자연스럽게 모아 클라이맥스에 이르는 과정도 그다지 신통하지 않다. 다른 효과들의 도움이 없다면 노래는 무척 빈약하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이건 나의 직업병이니 이쯤해서 패스. 이래서 영화를 혼자 보는건 피곤하다.
정신없이 자고 깨서 영화를 보고 × 3 을 하고 나니 빈에 도착해 있다. 생각하면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다. 나는 분명히 애가 둘 딸린 아빠이고, 몇 시간 전만 해도 열나게 쳇바퀴를 굴리고 있었는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이건 다 며칠 전 마누라가 "너, 그렇게 살다 고자 된다." 라며 여행을 갔다 오라고 해 준 덕분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덧붙였다. "내 노예를 남이 더 노예처럼 부리는 건 참을 수 없어."
생각해보면 이번 여행처럼 준비없이 떠나온 여행이 없었던 것 같다. 예전에 독일 일주를 할때는 2주를 여행하는데 3주간 계획을 세웠다. 하루에 도시 세 개. 점심은 삼각김밥과 하누타 쪼코바. 저녁은 맥주. 기차간에서는 번역을 했다.
확실한 건 이번 여행은 그런 식이 아닐 거라는 것 정도이다. 식당에도 가고 해뜨면 나갔다가 해지면 들어올 것이다. 괜히 밤에 눈 덮인 묘지를 해메는 일 따윈 안 할 거다. 이 여행이 순적하게 진행되기를 바라며 기도했다.
공항에 내려서 S반을 타고 적어놓은 주소로 찾아간다. 빈의 민수씨, 미정씨 내외가 환대해 주었다. 반갑고 고마운 사람들. 감사하다.
오스트리아, 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