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삶에 죽음을 선언하다
낭만주의 Romantik 의 어원은 로만 roman
곧 라틴어를 사용할 줄 모르는 지역민들의 토착어를 말한다.
무지랭이 백성들의 말에는 무엇이 담겨 있었을까.
논리학이나 수사학을 배우지 못하였으니
비록 앞뒤는 좀 맞지 않았으나
길들여지지 않은 상상력과 환상과 에너지가 넘실거렸다.
비록 거칠지만 생명력이 가득했다.
낭만주의는 바로 그 점을 꿰뜷어 보았던 예술 운동이었다.
보통 사람들의 삶을 끌어안지 않고서
어떻게 생명력 있는 예술이 가능할까.
그리고 낭만주의와 함께
숱한 시민 예술가들이 일어나
그들의 삶 저 밑바탕에 놓여 있었던
이야기와 노래들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슈베르트도 자신의 삶을 그렇게 불태웠다.
새로운 시심이 그의 혼 속에 심겨졌고,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었던 새로운 노래가
거칠어서 노래용 언어가 아니라는 폄하를 받던
독일어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개척자의 삶은 고달팠으니
천재가 자신의 능력을 펼 수 있는 무대는
쉽게 열리지 않았다.
교향악의 베토벤
오페라의 로시니
두 사람의 벽은 젊은 천재에게 너무 높아 보였다.
친구들과 허물없이 나누는
가곡의 소소한 장은
아직까지 작곡가를 먹여살려줄 수 없었다.
이전까지의 삶을
계속 할 수는 없었다.
그는 끝없이 도전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자신의 작은 노래들을 좀 더 큰 작품으로
변모시킨 작품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용감하게
지금까지의 삶에 대한
죽음을 선언했다.
<죽음과 소녀>는 그 선언에 대한
음악적 기록이었다.
슈베르트를 사랑하는 분들,
현악4중주를 좋아하는 분들,
그리고 지금까지의 삶에 대한
죽음이 필요한 분들,
목요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