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과 함께 듣는 <파우스트> 이야기
파우스트는 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에 맺었을까?
젊어서 못 놀아본 것이 한스러워서 라고 한다면,
그것은 괴테의 <파우스트>가 아니라 중세의 전설 파우스트 이야기다.
괴테가 그려낸 파우스트 박사는 그저 쾌락이나 호위호식을 누려보고픈 인간이 아니고
이야기의 전말 또한 흔한 권선징악과 거리가 멀다.
파우스트의 문제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인생을 돌이켜 보아도
남는 장면이 없었다는 점이다.
비록 페스트를 고쳐주고 존경을 받고
많은 학식을 쌓았어도
자기 마음에 영원히 남아 있는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지 못했다면
인생은 공허하다. 그것이 곧 학자 파우스트의 비극이었다.
(그런데 이런 비극은 오늘의 우리 아버지들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지 않던가.)
그래서 그는 악마와의 계약을 받아들인다.
내 인생에 영원히 기억에 남는 순간을 한 번 만들어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계약의 내용이 기묘하다.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의 영혼을 취하는 순간은 곧 파우스트가
"시간아,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 라고 외치는 순간이다.
그 전까지 파우스트는 악마를 종처럼 부릴 수 있다.
그렇다면 파우스트가 이런 선언만 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영영
메피스토를 수하에 부릴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언뜻 보기에 파우스트에게 유리한 것 같은 이 계약 조건은
메피스토에게 더 유리하다.
왜냐하면 파우스트가 다시 젊어져서 얻고 싶어한 것이 바로
"마음 속에 영원히 멈춰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간절히 바랬던 그것을 얻는 순간
파우스트는 영혼을 악마에게 넘겨야 한다.
얻는 순간 누릴 수 없게 되는 비극이
파우스트에게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파우스트는 어떻게 허무를 딛고 일어설 수 있을까.
인생을 허무에서 건져내려는 한 영혼의 사투가
괴테의 <파우스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러한 주제의식과 함께
이 강의에서는 괴테의 <파우스트>에 붙은
베토벤의 "벼룩의 노래"(op.75 no.3)
구노의 <파우스트> 중 "보석의 노래"
슈베르트의 "물레 가의 그레트헨"(D 118)
뢰베의 "파우스트의 장면" 등을 함께 감상한다.
이 가운데 슈베르트의 "물레 가의 그레트헨"은
예술가곡 장르의 탄생을 알린 명곡이다.
돌고 도는 물레바퀴와 페달 소리를 묘사한 피아노,
거기에 실려 돌고 돌다가 점점 격정적으로 변하는 그레트헨의 마음,
결국 나중에 물레바퀴와 페달 소리는 마음 속의 동요와
어찌 할 수 없는 두근거림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마음을 누그러 뜨리려고 앉았던 물레에서
오히려 운명과도 같은 사랑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헤어나올 수 없게 된 것이다.
파우스트에게 악의 기운을 느꼈으나
그렇다고 사랑을 부인할 수 없었던
신실한 여인 그레트헨.
그녀는 지고지순한 사랑의 원형적 캐릭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