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비극의 탄생
우리는 어느 정도 예술에 대한 울렁증을 가진 채 살아간다.
예술가란 하늘에서 똑 떨어진 범접할 수 없는 존재거나
머릿속을 헤아릴 수 없는 기인이거나
어쩐지 나와는 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막상 접해보면 그들도 우리와 다를 게 별로 없는데,
(나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와 함께 떢볶이를 먹은 적이 있는데
그들 또한 우리나 마찬가지로 맛집에 열광한다)
예술가를 이렇게 어렵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무대가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 멀게 느껴지고
그들의 평범함 대신 특별함만을 부각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예술과 문화는 건강한 저변이 있어야만 발전한다.
예술가 자신의 특별함도 중요하지만
그를 알아보고 돕는 사람들의 노고도 중요하다.
19세기 이래 서양에서 천재를 길러낸 것은
세상을 바꾸고자 한 새로운 시민 의식이었다.
숱한 시민 예술가들을 길러내면서 서양사람들은 귀한 사실을 배웠다.
예술가를 길러내는 데 나 역시 동참할 수 있고
그들과 스스럼 없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쉴러와 쾨르너의 우정은 인상적인 사례다.
1784년, 젊은 작가 쉴러는
군주의 치졸한 폭정을 너무나 실감나게 묘사하는 바람에
정처없이 쫓기던 신세가 되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군주가
평민의 딸과 사랑에 빠진 자기 자식의 마음을 돌리려고
권모술수와 협잡을 이용하는 이야기.
평민의 딸 루이제의 부모를 가둬놓고 협박하여
거짓 연애 편지를 쓰게 한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이가
가진 것이라곤 순수와 올곧음 밖에 없는 시민의 자존심을
아무렇지 않게 짓밟은 일이다.
루이제의 연인 페르디난트는 루이제의 필체를 알아보고
격분한 나머지 그녀와 독이 든 레모네이드를 나눠 마신다.
죽어가면서 루이제가 말한다. 그 편지는 협박에 의해 쓴
거짓 편지였노라고.
아버지가 원했던 것은 두 사람을 갈라놓는 것이었다.
그라고 아들이 죽기를 바랐겠는가.
그러나 가진 자의 과한 욕심은 이처럼 다음 세대를 짓밟는다.
그것이 쉴러가 당대 귀족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그러면서 그는 시민을 새로운 비극의 주인공으로 삼았다.
원래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피난길에 오른 왕이 말죽거리에서 죽을 먹는 것이 비극이지
그 죽을 매일같이 먹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은 비극의 소재가 못 되었던 것이다.
곧 드높은 지위에 있는 고귀한 이가 예기치 못한 운명에 의해 추락을 겪어야만
비극이 성립할 수 있었다. 그 추락의 높이가 높아야만 카타르시스가 발생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은 왕이다. 햄릿은 왕자다.
멕베스는 장군이었다가 왕이 되며 오셀로는 고귀한 장군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계몽주의가 더이상 신분이 지배하는 세상을 거부하자
고귀함의 개념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혈통이 훌륭함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경험적 지식이 축적되자
고귀함은 혈통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데 포괄적인 동의가 생겨났다.
고귀함은 오히려 그 사람의 한 일과 그 사람의 정신에서 나온다.
곧 혈통귀족 대신 공훈귀족, 정신귀족의 개념이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면 협잡을 일삼는 귀족보다
더 올곧고 깨끗한 정신을 지닌 시민은
새로운 시대의 고귀한 자가 될 수 있었다.
고귀하지 못한 귀족에 의해 고귀한 시민이 희생을 당한다.
이것이 곧 쉴러의 시민 비극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쓰고 난 뒤 쉴러는
말 그대로 비극적인 상황에 빠져 들었다.
작품을 무대에 올리지도, 인세를 받지도 못한 채
글도 한 줄 쓰기 어렵도록 쫓기는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한 젊은 시민이었다.
쉴러의 기개와 비전에 감동한 크리스치안 고트프리트 쾨르너는
그에게 자기 오두막을 내어주고 후원자를 자처했다.
그렇게 그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고
지금도 그 오두막 앞에는 그들의 우정을 기념하는
"우정의 우물"이 세워져 있다.
새 시대의 상을 그려내느라
고생을 하고 수배를 당한 작가를 위해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 쾨르너처럼
우리도 같은 일을 할 수 있다.
예술가는 하늘에서 똑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우리와 함께 호흡하며 삶을 나눌 수 있는 존재다.
이 이야기에 깊은 감명을 받은 베르디는
훗날 쉴러의 <간계와 사랑>을 토대로
<루이자 밀러>를 작곡했다.
루이자의 거짓편지를 읽고
좌절과 분노에 휩싸이는 페르난도의 아리아.
그는 왜 루이제를 믿지 못하고
간계의 거짓을 믿게 되었을까.
그러나 그의 미숙함을 탓하기 이전에
귀족인 그가 평민을 얼마나 편견없이
순수하게 사랑했는지를 떠올려보면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저녁녘 별이 가물가물
반짝이는 고요한 하늘 아래
그녀는 나와 함께 사랑스럽게
하늘을 바라보았는데,
나는 살짝 맞잡은
그녀의 손을 느꼈었는데...
아! 아! 그녀가 나를 배반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