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toZ

담배 피우는 여성에 대해

by 거짓말의 거짓말

개인적으로 나는 담배를 피우는 여성을 싫어하거나 꺼리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담배를 피우는 여성이 종종 훨씬 더 매력적'이라고까지 생각하고 있다. 내가 담배를 피우는 여성에 얼마나 호의적인지는 아래의 상상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조금은 어두운 분위기의 술집에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담배를 피우는 여성과 내가 앉아있다. 여성은 잔에 담긴 술을 마시다 중간에 백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는 담배를 태우기 시작한다.


한동안의 시간이 흐르고 여자가 세 번째의 담배를 반 정도 태우고, 내가 잔을 들어 내 몫의 술을 들이켜려는데, 여자가 예고도 없이 자리에서 절반쯤 일어나 상반신을 내쪽으로 기울인다. 그리고는 내 얼굴을 잠시 빤히 바라보고 자신이 피우던 담배 연기를 내 얼굴 바로 앞에다 내뱉는다.


순간 눈앞이 뿌예지고 담배 연기로 인해 숨이 답답해짐을 느끼지만 나는 그리 불쾌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런다고 내가 먹고 있던 술을 그녀에게 뱉어 버릴 수는 없으니까'와 같은 생각도 전혀 하지 않는다.


내가 이상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위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내 생각에 그건 상당히 멋진 일일 것 같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 후에 뭔가 조금 더 특별하고 멋진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담배를 피우는 여성이라면 어떤 여자라도 모두 다 OK인 것은 아니다.

"저기 이봐요. 오늘 밤에 내가 재미있는 걸 줄테니까 나를 따라오지 않을래요?"

라고 담배를 피우는 여성이 내게 물어온다 해도 나는 대개의 경우에 거절할 것이다.


담배를 피우는 행동 자체만으로도 내게는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기왕이면 담배를 처음 피우게 된 계기를 그쪽에서 기억해 주는 편이 좋다. 물론 아침에 습관적으로 거울을 보며 이를 닦다가 문득 '어. 내가 어떤 계기로 언제부터 이를 닦기 시작한거지?'하고 생각해 봐도 기억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 돌아보니 담배를 피우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라는 쪽도 나름대로는 괜찮은 사정이라고 생각하지만 기왕이면 담배를 처음 피우게 된 순간 정도는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물론 이런 바람 따위야 담배를 피우는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뭐지? 내가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담배를 피우는 것도 아닌데 왜 이 녀석은 굳이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거야?"라고 말해도 변명의 여지는 없다.


하지만 내가 담배를 피우는 여성을 좋아한다고 해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여성은 싫어한다거나 담배를 피우지 않는 여성도 담배를 피우면 좋을 텐데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여자들은 그쪽대로 또 그쪽의 좋은 점이 있어서 매력적이다.


담배를 피우는 것과 피우지 않는 것 사이에는 아주 얇고 애매한 경계가 있어서 누구라도 그쪽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 한쪽에서 한쪽으로 다시 옮기는 것이 아주 힘이 든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럼 만약 현실에 A라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나는 그 A가 담배를 피우길 원할까, 담배를 피우지 않길 원할까?

여기에 굳이 답을 하자면 답이 없다 정도가 최선이다.


그 두 가지는 전혀 별게의 것이면서도 그 경계가 너무 모호해서 담배를 피우면 피우는 대로 피우지 않으면 피우지 않는 대로 확실히 그 양쪽에 저울로는 잴 수 없는 종류의 매력이 나뉘어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A가 담배를 피우지 않다가 피우게 된다면 나는 그녀에게 “이쪽 세게로 넘어온 걸 환영해요. 잘은 모르겠지만 괜찮은 일도 한 두 가지쯤은 일어날지도 모르잖아요.” 정도의 인사말을 건넬 것이다.


만약 A가 담배를 피우다가 끊게 된다면 나는 그녀에게 “축하해요. 확실히 담배를 끊는 쪽이 건강에는 좋으니까요.” 정도의 인사말을 건넬 것이다. 물론 '하지만 담배를 끊는다고 해서 더 오래 산다거나 하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요.' 따위의 말은 덧붙이지 않을 것이다.


같은 이유로 만약에 내가 결혼을 해서 아버지가 되고 내 딸이 교복을 입고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무조건 딸에게 금연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아버지이기 때문에 적어도 딸아이에게 '왜' 담배를 피우는지에 대해서는 물어볼 것이다.


“혹시 네 남자 친구 되는 녀석이 네가 담배 피우는 쪽을 더 좋아한다거나 하는 이유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아니니?”라고.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거기서 내 부모로서의 역할은 끝이고 별다른 이유가 없다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한 번쯤은 네가 담배를 왜 피우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답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담배를 처음 피우게 된 계기 같은 것 말이야.”


(2004. ?)


스무살 성인이 되고 금지된 것이 허락된 첫 해에 쓴 것으로 서른을 훌쩍 넘긴 현재의 생각과는 다소 다릅니다.


+댓글을 달아주신 '아무누구' 님의 요청으로 추가합니다.


위 글을 쓴 저와 지금의 저는 14년의 시차를 두고 있습니다. 스무 살이었던 당시의 저는 담배 피우는 여성이 섹시하다고 생각했고 화려한 손톱의 여성에게 매력을 느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런 특징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뭐랄까, 특정 부분에 매력을 느끼는 패티시즘 대신 사람 전체의 매력과 아우라를 좀 더 중요하게 보게 된 것 같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일본 소설인가에서 이런 문장을 본 적이 있어요. 여자의 가슴 사이즈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여성이 여자 친구가 되기 전까지의 일이다, 뭐 이런 의미의 문장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남자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여성의 가슴 사이즈, 즉 특정 부분은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된다는 의미인데요. 물론 일반론으로 남자들은 가슴이 큰 여성을 좋아합니다. 가슴이 큰 여성과 여러 가지 실험적인 일들을 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여성들이 키가 큰 남자를 좋아하거나 혹은 다른 것이 큰 남자를 좋아하는 것처럼 남자들도 가슴이 큰 여성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론이고 그 대상이 내 여자 친구가 되기 전까지만 문제가 될 뿐입니다. 남자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여성의 가슴사이즈는 사실 중요하지 않아요. (혹시나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의 경우도 어떤 남자를 좋아하게 되면 사이즈는 중요하지 않을 거라 짐작합니다) 마찬가지로 담배를 피우는 것은 그 사람을 이루는 여러 가지 특징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지금은 담배를 피우고 피우지 않는 정도의 특징은 그 여자분이 파타이를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는다, 정도의 특징에 불과할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솔직한 답변인 것 같기도 한데 아무누구님의 댓글이 방금 전에 올린 글을 읽고 이 글에 연관해서 추가로 달으신 것 같아 저도 나름 성의 있게 답변을 달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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