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우연이거나 필연이거나

'우연'에 관해 글쓰기

by 거짓말의 거짓말

태국 끄라비의 이름 모를 한 해변에 반쯤 누워 파도를 몸으로 맞고 있었다. 파도의 하얀 포말은 평소 내가 보아오던 것보다 높았고 파도의 근력도 내 상체를 반쯤 흔들거나 내 몸 자체를 밀어낼 정도로 셌다. 파도에 휩쓸린 모래, 조개껍질의 파편, 바다에 잘 갈려 보석처럼 보이는 유리 조각들이 파도에 이끌려 해변으로, 바다로 이리저리 움직였다. 한 번도 쉬지 않고 3~4초에 한 번씩 치는 저 파도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왕복을 했던 것일까. 그리고 저 파도가 모래로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한 바다의 그림은 총 몇 장이나 될까. 그 수많은 그림들 중 아직까지 똑같았던 그림이 단 한 쌍이라도 있었을까?


내가 만약 지금부터 이 바다의 모래를 세어 본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혼자로는 무리. 만약 내가 10만, 100만 명을 넘어 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의 숫자인 60억 명으로 늘어나 모래를 세기 시작한다면? 이 바다에 있는 모래의 숫자에 비교하면 60억은 굉장히 작은 숫자일 게다. 줄어드는 시간은 분명 60억 분의 1이 되겠지만 두 시간 모두 엄청나게 긴 시간일 것이다. 비유로서 예를 들자면 지구의 입장에서는 코끼리나 개미나 큰 차이가 없는 작은 생명일 뿐인 것처럼.


나는 일어서서 발가락으로 해변의 모래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의 이름을 적었다. 아마 한글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 이름은 얼마 지나지 않아 파도가 다른 그림으로 덮어 버렸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하늘에는 구름이 있고 태양이 있다. 나는 지구에 있다. 태양계에는 지구와 태양이 하나밖에 없고 나로서는 그 광대함을 직관적으로라도 이해할 수 없다. 여기서 사고의 범위를 더 확장해 우주로 나아가면 우리 은하, 그리고 우리 은하 너머의 우주에는 내가 파도를 맞으며 누워있던 이 바다의 모래알보다 더 많은 행성이 존재할 것이다. 이 바다의 모래알의 숫자가 내 직관 너머에 있는 것처럼 우주에 있는 모든 행성의 숫자는 이 바다에 있는 모래알의 직관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광활한 우주의 관점에서 나라는 존재는 얼마나 미약한가. 이 거대한 지구 자체가 우주에겐 모래알 하나에 지나지 않을 것인데 그 지구 안의 70kg도 안 되는 나라는 덩어리 하나가 사라진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지만 지금의 우주에서 내가 사라지는 순간 이 우주는 지금의 우주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이 세계는 존재가 아닌 존재와 부재의 중첩이라는 가능성으로 유지된다. 다만 관측자가 대상을 관측(인지)하는 순간에 비로소 대상은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다. 결국 내가 지구를 관측하고 지구를 생각하지 않으면 지구는 없는 것에 다름 아니다. 내가 생각할 때 비로소 내가 존재하는 것처럼 내가 있을 때 지구도 있다.


이런 생각들을 하다 문득 하나의 궁금증이 떠올랐다. 어쩌면 나의 이런 생각들도 우주라는 필연성 속에서 하나의 필연적인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러니까 내가 이런 주체적인 사고를 하고 자유의지를 통해 하는 모든 행동들이 나의 착각일 뿐이고, 사실은 원래부터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었던 것이라면.


우연처럼 보이는 모든 사건들이 사실은 수많은 경우의 수로서 존재하고 그것이 실현되는 순간 100%의 현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라면. 이 세상은 어쩌면 모든 일이 필연이고 우연은 애초부터 없는 것이었다면. 우리가 우연이라고 부르는 것도 사실은 우연이 아닌 다른 모든 일들과 마찬가지로 단지 수많은 가능성중 하나일 뿐인 똑같은 사건이라면. 세상은 원인과 결과에 따르는 인과성의 법칙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설계도에 따라 한 방향으로 굴러가는 공일뿐이라면.


그러니까 137억 년 전 빅뱅이 있었고, 우주가 팽창하고, 다양한 항성과 행성이 만들어지고, 그중에 지구가 탄생하고, 수많은 빙하기와 해빙기를 거쳐 최초의 단세포 생물이 출연하고, 지적 생명체가 탄생하고, 인간이 수많은 짝짓기를 통해서 번성하다, 마침내 1985년 대한민국에서 내가 태어난 일련의 모든 일들이 우연이 아닌 이 바다의 파도가 모래 그림을 1번 그리는 것과 비슷한 경우의 수 중 단 하나로서 존재할 뿐이라면.


지금의 모든 일들이 우연이 아닌 이 우주에 존재하는 많은 경우의 수중 하나라서 이 우주 너머의 누군가에게 관측되었고 지금의 상태로 발현된 것일 뿐이라면. 그리고 이렇게 발현되는 우주가 단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멀티 유니버스)이고 다중 우주의 세계도 동시성이 아닌 또 다른 시간 축에서 다시 한번 여러 다중 우주로 나뉜다면. 모든 우연은 사실은 수없이 많은 필연 중에 하나가 발현된 것일 뿐이라면.


어쩌면 1시간 전의 내가 '태국 끄라비의 이름 모를 한 해변에~'로 시작되는 글을 타이핑하는 순간부터 이미 내가 10분 뒤에 그다음 문단에 '내가 만약 지금부터 이 바다의 모래를 세어~'로 시작하는 문단을 쓰도록 정해져 있었다면. 지금 내가 우연성 속에서 하나하나 밟아 가고 있는 시간의 점들이 사실 원래부터 이미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이었다면.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이미 내 죽음까지의 모든 시간표가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말이다.




*수요 산문회(수산회) 일곱 번째 글쓰기 과제

-'우연'에 관해 글쓰기

(2019.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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