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정말 여자 보는 눈이 없구나”

2019년 7월 어느 날의 술자리

by 거짓말의 거짓말

최근에 술을 먹다가 "너는 정말 여자 보는 눈이 없구나"라는 말을 들었다. 그 전에도 "너는 정말 못 생겼구나"라거나 "너는 정말 안 웃겨"라거나 "너는 정말 구제불능이구나"라는 말을 종종 들었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언제나 그 말을 하는 상대방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쩐지 "너는 정말 여자 보는 눈이 없구나"라는 말을 들을 때만은 마음속으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뭔가 나의 본질적인 부분이 부정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불쾌하기도 했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말이라고 애써 무시했다.


하지만 서른다섯이 되고 나서 술에 반쯤 취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니 참말로 그 말은 맞는 것 같다,라고 생각을 바꿔 먹게 됐다. 나는 정말 여자 보는 눈이 없는 게 맞는 것 같다. 구구절절 설명하자니 스스로가 더 한심해질 것 같아 자세히는 쓰지 못하겠다. 하지만 역시나 내가 호감을 품거나 괜찮다고 생각했던 여자들은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조금은 이상하거나, 굉장히 이상한데 그때의 나만 그걸 잘 몰랐었던 것 같다,라는 느낌이다. 나는 그런 이상함에 끌리도록 생겨먹었는지 모르지만, 어쩐지 지금에 와서 찬찬히 생각해보니 역시나 나는 나와는 굉장히 맞지 않는 사람에게만 끌렸던 것 같다.


이상하다면 이상하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나에게 호감을 보이는 이성에게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나는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을 것 같은 이성에게만 끌렸고, 내게 관심을 보여주는 이성에게는 유독 무신경했다. 스스로는 '짝사랑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소셜한 범주를 넘어 내게 관심을 보여주는 사람에게, 내가 관심이 없을 때는 개무시가 상책'이라고 합리화했다. 자신의 무료함과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호감의 링에서 약자인 상대에게 희망고문을 하는 것은 잔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술을 먹다 "너는 여자 보는 눈이 없으니까 너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지 말고, 너에게 호감을 보이는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는 사람을 보는 눈이 있는 사람이니까 그 사람을 만나라"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 조언을 한 사람은 공교롭게도 여자였는데 그 여자애는 같이 술을 먹던 또 다른 남자애에게는 "너는 반대로 너에게 호감을 보이는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는 사람을 보는 눈이 없거나 좋은 사람이 아니니까 조심해라"라는 충고를 해줬다.


그러자 그 남자애는 발끈해서 “그게 무슨 말이냐”고 그 여자애에게 따져 물었고 그 여자애는 "너는 잘생겼으니까 네 외모만 보고 관심을 보이는 여자애를 경계하라는 의미"였다고 설명해줬다.


그날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과연 그렇군'하고 감탄했지만 지금에 와서 멀쩡한 정신으로 생각해보니 그 여자애의 말은 바꿔 말하면 "너(여기서는 나)는 정말 못 생겼구나"라는 말의 다름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이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너는 정말 못 생겼구나"라는 말을 하는 표현 방식도 점점 진화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역시나 문화와 예의범절이 과잉된 모던 소사이어티에서 살아가기에 적합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2019.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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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리석고 (그것을 알면서도)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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