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밤

2013년 2월 4일의 기록

by 거짓말의 거짓말

자정이 조금 지나 정경대를 나왔다. 온 세상이 하얀 이불을 덮고 있다. 한의대 앞 사자상은 하얀 털 옷을 걸쳐 입었다. 인공 빛이 없어도 눈이 달빛을 반사해 어둡지 않다. 때늦은 늦겨울에 흠뻑 내린 눈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조금 푸근하고 따뜻한 느낌도 든다.


사람의 마음에도 계절이 있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의 마음은 열대 해변의 그물 침대와 맥주가 생각나는 여름 같고, 또 다른 사람의 마음은 소나기가 막 내린 이른 아침의 여름 같다.


물론 한 사람의 마음 안에도 사계절이 모두 있다. 다만 어쩐지 내게는 각 사람마다 그 사람을 대표하는 계절, 즉 그 사람의 마음 안에서 가장 강하고 긴 계절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 사람이 대표하는 계절에 따라 어떤 사람은 봄의 사람이 되고 어떤 사람은 여름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게도 다행히 마음이란 것이 있고, 거기에 계절이란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아마 ‘겨울’이 아닐까 한다. 낙엽이 모두 져버린 늦가을 같은 느낌도 조금 들지만 내 생각엔 ‘겨울’ 쪽에 더 가깝다. 하지만 오늘처럼 눈이 펑펑 내린 따뜻한 겨울밤의 느낌은 아니다. 아마도 내 마음의 겨울이란 매우 춥고 건조한 바람 없는 날의 인적없는 겨울 같지 않을까.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들지 않고 오로지 정말 ‘춥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외출하기도 싫고 누군가를 만나기도 싫을 만큼 오로지 춥다라는 감각. 누군가의 체온을 그리워하거나 떠올릴 만큼의 여유도 생기지 않을 정도의 그냥 추운 느낌.


한 발 양보해서 그냥 평범한 겨울이라고 하더라도 아마도 내 마음의 겨울엔 절대로 눈이 오지 않는 것 같다. 그 증거로 아직까지 아무도 내 겨울에 발자국을 남긴 사람은 없었다.




덧붙이는 글

2013년 2월 4일, 이 글을 쓸 당시 나는 두 달 뒤에 직장을 갖게 될지 몰랐다. 2년여 이상 직업이 없는 백수 생활과 불확실성은 안 그래도 삐뚤어진 내 마음에 더 큰 그늘을 드리웠다. 물론 외부적인 나는 항상 밝고, 웃기는 캐릭터였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조금 더 밝고, 신나는 애티튜드를 갖고 살았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여유라는 것은 여유 있는 상황에서 생기기도 하지만 여유로운 태도 자체에서 생기기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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