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한 생각
-오늘 넥타이 셔츠랑 참 잘 어울리네요.
-그 구두 정말 예쁘네요. 선물한 남자 친구분 센스가 좋나 봐요.
칭찬을 잘 하는 사람. 그리고 그 칭찬으로 대화를 잘 이끌어 가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볼 때면 먼저 그들의 능력에 감탄하게 되고 곧이어 부러워진다.
그 칭찬에 몇 퍼센트의 진심이 담겨 있든지 간에, 칭찬은 확실히 칭찬받는 사람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이 있다.
아무리 진실된 마음으로 상대방을 생각하는 좋은 마음이 있더라도 적절한 말 한마디를 건네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칭찬할 거리를 발견해내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그들의 눈과 그것을 찾아내는 그들의 시각. 그리고 칭찬할 거리를 발견했을 때 그것을 바로 말로 표현해 상대방에게 전하는 능력. 설령 발견한 칭찬거리가 조금은 작다고 할지라도 거기에 약간의 살과 과장을 조금 더해서 구체적으로 상대방을 칭찬할 줄 아는 그들의 능력.
나는 칭찬을 잘 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부럽다.
2.
-고마워요. 전에 선영 씨가 가끔씩은 좀 화려한 넥타이도 어울릴 것 같다고 하셔서 이번에 새로 샀어요. 잘 어울린다니 다행이네요. 답례로 오늘은 제가 저녁이라도 사고 싶은데 시간 괜찮으세요?
-고마워요. 민수 씨. 참, 민수 씨도 다음 주에 여자 친구 분이랑 1주년이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맞나요? 민수 씨만 좋다면 제가 자주 가는 괜찮은 샵이 있는데 소개해 드릴까요?
칭찬을 받고 그에 대한 감사의 말을 잘 하는 사람.
칭찬을 받고서도 어색해서 우물쭈물하다가 결국은 타이밍이 어긋나서 아무 말도 못 한 체 칭찬한 당사자를 민망하게 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멋지게 다음 대화로 이끌어서 칭찬을 한 사람에게 바로 자신의 받은 기쁨의 일부를 되돌려 주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들을 보면 이번에는 그러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칭찬을 받고도 익숙하지 않은 어색함에 그 칭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멍청한 자격지심 때문에 칭찬하는 사람의 의중부터 헤아리려고 드는 바보 같은 심리.
‘어, 이 사람이 이런 칭찬을 왜 내게 하는 거지?’ 하고 경계부터 하는 천하에 쓸모없는 조심성.
칭찬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칭찬에서 자신의 칭찬거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여유로움. 칭찬을 받았을 때 어색해하지 않고 칭찬을 한 상대방에게 멋쩍은 미소라도 한번 지어주고는 바로 다음 말을 이어 갈 수 있는 능력.
나는 칭찬을 잘 받는 사람들이 부럽다. 그리고 칭찬을 받고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로 부럽다.
3.
-저기, 나 이번에 머리 새로 했는데 어떤 것 같아, 잘 어울려?
-나 이번에 다이어트해서 10kg나 뺐잖아. 좀 달라 보이는 것 같아?
세상에 널려있는 많은 칭찬할 거리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고야 마는 사람을 위해서, 그리고 칭찬할 거리를 찾아도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망설이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일부러 칭찬할 거리를 알려주고 힌트를 주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곧 그들에게 미안해진다.
잘 어울리면 솔직하게 “어. 정말 잘 어울려요.”라고 경쾌하게 말하지 못하고, 만에 하나라도 잘 어울리지 않거나 잘 모르겠다고 생각되면 그 자리에서 우물쭈물하다가 상대방을 무안하게 만드는 나 자신 때문에 상대방에게 정말로 미안해진다. 내가 정말 싫어진다.
왜 나는 좋으면 그걸 있는 그대로, 혹은 좋은 점이 조금 작더라도 약간의 과장이나 놀람을 보태서 그들이 준 힌트에 답을 하지 못하는 걸까.
4
선물을 받아도 내 기쁜 마음을 상대방에게 다시 돌려주지 못하고 “어, 그래. 정말 고마워.” 따위의 무덤덤해 보이는 말 밖에 하지 못하는 나.
속으로 아무리 ‘어, 난 이 정도밖에 고마워하고 있는 게 아닌데. 사실은 정말 기뻐서 너를 안고 달리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하고 생각해 봤자 상대방에게 전해지는 건 무감각해 보이는 말 한마디뿐이다.
나도 정말 칭찬을 잘 하고 싶다.
나도 정말 감정이 담긴 말을 잘 하고 싶다.
내 말에 화려한 미사여구와 살을 붙인 과장을 더 하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있는 그대로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만큼만이라도 상대방에게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여러 사람들 속에 숨어서 소심하고 부끄러워하는 자신을 들키지 않기 위해 가벼운 농담과 흥미 있는 이야기로만 대화를 해나가기보단, 나 혼자 똑바로 서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상대에게 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200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