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는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서로의 애인을 집에 데려오지 않는다
-방 값과 관리비는 정확하게 절반씩 부담
-상기 조건 미 이행시 상대방과의 동거 파기 가능
아이러니하게도 규칙이 많고 복잡할수록 그것을 어기기 쉽다. 그와 나는 그래서 꼭 필요한 규칙만 세우기로 했다. 그가 먼저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을 내걸었고 내가 두 번째 규칙을 제안했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나머지 작은 규칙들은 크게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그를 알게 된 것은 한 인터넷 카페를 통해서다. 그는 자신과 동거할 사람을 찾고 있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동거인을 찾는 것이 처음이 아니라고 했다. 다행이었다. 경험을 통해 나는 양쪽 모두가 '처음'을 공유할 경우 대개 그 결말이 굉장히 우스꽝스러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포함해 총 세 명의 남자에게 쪽지를 보냈다. 굳이 동거가 처음이라는 내 쪽의 약점을 드러내어 상대에게 주도권을 넘길 필요는 없었다. 동거인을 찾는 남자에게 간단히 내 연락처만을 남긴 쪽지였다. 얼마 뒤 세 명 모두에게 연락이 왔고 나는 그에게만 연락했다.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마음속에서 세 명 중에는 그를 택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동거를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경제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사실 20대 초반의 (반반한) 여대생에게 서울에서 월세를 버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약간의 결단력과 대담함, 그리고 '거울'이 준비돼 있다면 적은 시간과 노력으로 부족하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런 시스템이 이 사회 안에는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그와 동거를 시작하고 사실 내 방세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다만 화장실과 거실이 조금 더 넓고 쾌적해졌을 뿐이었다. 그는 다른 남자들과 달리 정확하게 생활비를 절반씩 부담하자는 내 제안을 기꺼이 수락했다. 온라인에서 동거인을 찾는 많은 남자들이 추가적인 경제적 부담을 지는 대가로 지저분한 욕망(SM이 대표적이다)을 드러내는 것과는 달랐다.
어디까지나 그와 나의 관계는 대등했다. 그가 나의 몸을 원하는 것처럼 나도 그의 체온이 필요했다. 때때로 내가 그와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는 것처럼 그도 나를 거부할 권리가 있었다. 어디까지나 우리는 동거인이라는 계약 관계였기 때문이다. 계약 내용에 굳이 '마음'이라든가 '감정'등의 항목을 억지로 끼워 맞출 필요는 없었다. 그냥 내버려두고 어떻게 되어 가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계약 내용에 그런 항목들을 추가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계약의 첫 번째 규칙을 클리어하고 침대 위에서 그와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결혼이라는 제도가 곧 사라지거나 적어도 지금보다는 많이 쇠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견 내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점점 약해지긴 하겠지만 결혼 자체가 멸종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 어쩌면 결혼은 하나의 '약속'이라는 형태로 일부의 사람들에게 더 큰 의미를 갖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적어도 우리의 결혼이 유지되는 순간만큼은 당신을 제외한 어떤 누군가와도 자지 않겠습니다. 아니, 설령 함께 자더라도 마음을 주지는 않겠습니다.' 하고 말이지. 아마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동거와 결혼은 그 차이가 아닐까. 결국 위로받고 싶고 상대에게 신뢰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다 같으니까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