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toZ

관찰

ㄱ to ㅎ

by 거짓말의 거짓말

관찰을 좋아했다. 어린 시절 텃밭이 있는 시골집에 산 적이 있다. 상추, 호박, 고추 따위를 키우는 작은 밭이었다. 갈라진 시멘트 틈 사이로 무리를 이루고 사는 좁쌀 만한 갈색 불개미의 행렬을 삼십 분이고 한 시간이고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개미들은 자기 몸보다 몇 배는 큰 과자 부스러기를 옮기거나 내가 먹다 버린 사탕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새끼손톱 만한 검정 병정개미와 새끼손가락 만한 사마귀를 잡아다가 철로 만들어진 영양제 통에 집어넣고 싸움을 붙인 적도 있다. 몇십 분에 걸친 혈투 끝에 기진맥진해진 개미와 사마귀 모두 죽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죽어서 지옥에 가게 되면 개미와 사마귀를 관중으로 두고 3m가 넘는 거대 오랑우탄과 목숨을 걸고 싸울지도 모르겠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서는 사람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남자보다는 여자, 평범한 여성보다는 미인인 쪽에 조금 더 눈이 갔다. 별다른 뜻이 있었다기보다는 DNA 레벨에서 그렇게 되도록 프로그램돼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한창 에너지가 넘치던 시기에는 여름이면 알 수 없는 오징어 썩는 냄새가 넘치던 교실에 6년간 갇혀 있었다. 여건이 조성돼지 않은 상황에서 모험을 떠나는 타입도 아니었으므로 관찰 취미는 접었다. 별다른 시도 없이 얌전히 참으면서 보냈다. 그나마 연령대가 비슷한 젊은 여선생님 몇몇이 위로라면 위로였다.

그럭저럭 대학이란 곳에 들어가고 통학을 하면서 지하철을 이용하게 됐다. 지하철은 사람을 관찰하기에 매우 좋은 장소였다.

지하철을 타기 시작하면서 습관 비슷한 게 한 가지 생겼다. 언제나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습관이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지만, 가끔 기분이 내킬 때 불규칙적으로 그 일을 하곤 했다.

지하철을 타기 전에 맨 앞쪽 칸이나 꼬리 칸에서부터 반대 방향으로 쭉 걸어간다. 그러다 줄을 서있는 사람 중에 눈에 띄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줄을 선 옆줄에 나도 줄을 섰다. 그리고는 같은 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는 척을 하면 그 사람을 관찰하곤 했다.



이런 행동을 하면 누군가는 '그거 범죄 아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 내 경우는 어떤 의도나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우연'이라는 상황이 설정하는 선을 정하고 절대로 그 선을 넘지 않았다. 내가 내릴 역을 지나치거나, 흥미로운 사람을 관찰하는 행동을 연장하기 위해 그 사람을 따라 내리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역시나 흥미롭게 지켜보던 그 사람이 나보다 먼저 내리게 되면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가끔 관찰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전화를 하거나 대화를 하는 걸 듣게 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경우 대개는 초기에 갖고 있던 것보다 흥미의 정도가 떨어졌다. 상대가 관찰의 대상으로 하나의 이미지로 존재할 때는 상상의 여지가 많지만 거기에 목소리와 그 사람의 생활이 개입하게 되면 현실로 끌어내려지게 되기 때문이었다.

한 번쯤은 내가 관찰의 대상이 됐던 적도 있다. 그러니까 교환학생에 응시하기 위해 강남에 있는 어학원에 다니며 지하철에 타던 시기였다. 당시에 지하철에서는 언제나 초록색 토플 단어집을 외웠다. 보통 하루에 200~300 단어를 외워야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지하철에 타서 지하철 칸과 칸을 나누는 문에 등을 기댄 채로 단어를 외우고 있었다. 별다른 생각 없이 단어를 외우다 무심결에 뒤를 봤다. 지하철 칸을 나누는 미닫이 문의 창을 통해서 어떤 여자애 하나가 내가 단어를 외우고 있는 뒷모습을 연습장에 크로키로 스케치하고 있는 걸 보게 됐다. 단어를 외우며 몇 번더 슬쩍 쳐다봤더니 나를 포함해 지하철을 탄 다양한 사람들을 그리고 있는 것 같았다.

눈치를 채고는 일단은 모델로서 되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자세를 고정하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잠시 뒤에 환승역인 신도림에 다다랐고 어쩔 수 없이 먼저 내렸다.

어쩐지 그쪽도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구나란 생각에 뭔가 응원의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뜬금없이 말을 거는 것도 이상하고 괜히 쓸데없는 오해를 살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냥 내렸다.

언제나 관찰을 하다 관찰의 대상이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지하철에서 좌석을 보고 서있다가 내 옆에 서있는 사람과 지하철의 창을 통해 눈이 마주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지하철의 창을 통해 사람을 관찰하는 것의 최대 장점은 상대가 모르게 관찰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가끔 지하철의 창을 통해 시선이 마주치게 되면 어쩐지 민망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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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황하면 오히려 더 이상하게 되므로 상대와 태연하게 눈을 맞추고 있거나 자연스럽게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린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연기에는 어설픈 편이므로 역시나 상대가 눈치를 채도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다.

그건 그러니까 DNA 레벨에서 그렇게 하도록 프로그램돼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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