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toZ

단어 굴리기

"도대체 그런 글은 어떻게 쓰는 거야?"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

by 거짓말의 거짓말

"도대체 그런 생각(글)은 어떻게 하(쓰)는 거야?"


얼마 전 한국은행에 다니는 한 지인이 물었다. 그 형님은 "나도 보고서는 꽤 쓰지만 네가 쓰는 형태의 글은 전혀 다른 타입"이라며 “잘 쓴다”고 나를 치켜세워줬다.


가끔 비슷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이런 경우 대체로 내 대답은 정해져 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여자에게 인기가 없겠구나'라고 본능적인 감으로 캐치하고 그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한 것 같아요." 뭐 대충 이런 식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손꼽히는 김태원도 한 방송에 나와 자기가 처음 기타를 잡은 이유는 '한 소녀를 위해서'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닐 테다. 반쯤은 쑥스럽고 반쯤은 우쭐해져서 90% 정도의 진심을 담아 유머를 섞은 표현이 '여자한테 관심을 끌고 싶어서'이지 않을까,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와서 '어떻게 나는 남과 다른 사유(글)를 하(쓰)는가?'에 대해 조금 진지하게 대답해보자.

내 머릿속, 정확히 단단한 두개골 안에는 연두부처럼 흐물흐물하고 호두처럼 주름이 많은 뇌가 (아마도) 있다. 그 뇌의 90%는 여자고 나머지 5% 정도가 돈이고 또 5% 안에는 꿈, 건강, 세계평화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 전자는 뇌라는 기관의 물리적 차원에서의 접근이고 후자는 뇌라는 기관에서 발생하는 사유 행위에 대한 조금은 추상적인 접근이다.


말이 조금 복잡해졌는데 간단히 정리해서 처음의 질문에 다시 답을 하자면 나는 평소에 '머릿속으로 단어를 굴리는 작업'을 꾸준히 실행해 왔다. 한 손에 호두를 쥐고 굴리는 것처럼 나는 단어를 굴린다. ‘단어 굴리기’를 통해 생각도 하고 글도 쓴다. 단어를 굴리는 작업은 처음에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익숙해지면 나중에는 어느 정도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조금 더 명확하게, 좀 더 쉽게 접근해보자.


머릿속으로 하나의 주머니를 상상해 보자. 내 뇌 속의 그 주머니 안에는 단어들이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다. 나는 그 단어의 물고기를 잡아 생각을 하고 글을 쓴다.


평소에는 독서 혹은 사유를 통해 그 주머니 안에 물고기를 한 두 마리씩 채워 넣는다. 내 주머니 안에는 점차적으로 내게 처음의 질문을 했던 다른 사람보다 많은 종류의 물고기가 살게 된다. 물고기들은 주머니 안에서 오래 있을수록 살도 오르고 통통해진다. 때로 암컷과 수컷 물고기가 사랑에 빠져서 새로운 물고기를 낳기도 한다. (물론 물고기들은 사람처럼 사랑을 나누기보다 체외 수정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므로 새끼를 낳는 물고기는 포유류인 돌고래로 하자. 내 머릿속 주머니의 돌고래들은 때로 짝짓기를 한다.)


예를 들어 '머릿속으로 단어를 굴린다'라는 표현도 내가 임의대로 만든 것이다. 그것의 원재료도 주머니 속의 물고기다. 주머니 속의 물고기가 풍부해질수록 재료는 많아진다.


물고기(단어)를 가지고 말로 표현하거나 글로 쓰는 것은 이제부터 ‘요리’의 영역이다. 나는 어떤 시점에서 어떤 요리가 하고 싶어질 경우 평소 해오던 것처럼 낚싯대나 뜰채를 사용해 적절한 물고기를 잡는다. 그리고 단어 굴리기를 통해 어느 정도 틀을 잡아놓은 상태에서 물고기들을 일정 순서나 논리에 따라 배열한다.


요리를 하는 과정과 방법에 대해 더 구체적인 방법론은 말이나 글로 풀기가 퍽 어렵다. 중식의 대가 이연복 셰프에게 '오이를 얇고 빠르게 채 써는 방법'을 물어보고 이에 대해 답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연복 셰프가 '중식도를 사용해 왼손으로 적절한 간격으로 오이를 잡고 오른손으로 빠르게 오이를 내려친다'라는 식으로 설명을 해도 일반 사람에게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험적으로 몸에 익은 행위를 하는 것이다. 요리의 행위는 결국 연습과 수련, 반복을 통한 습득이다. 물고기(단어)를 사용해 요리(글)를 하는 것도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쌓인 일련의 프로세스(과정)가 작동하는 것이지 특별히 어떤 방법이나 방식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실례로 단어를 물고기로, 내 뇌를 단어 주머니로, 글쓰기를 요리로 비유한 것도 이번 글을 쓰면서 즉흥적으로 떠오른 것을 옮겼을 뿐 어떤 사유나 고민을 거치지는 않았다.


결국 독특한 생각과 글을 쓸 수 있는 것의 원천은 주머니 속의 물고기를 다양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고기를 다양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제일 좋은 방법은 '독서'다. 너무 뻔한 답 같지만 그 외의 답을 나는 모른다.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면이 필요한 것과 같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좋은 물고기가 필요하다.

사람이 일반적으로 하루에 쓰는 단어는 남자가 2000~2만 5000개, 여자가 7000~5만 개라고 한다. 보스턴 글로브의 마크 리버만이 다양한 연구와 박사들의 책을 조사한 결과 그렇다고 한다. 결국 남이 하지 않는 생각을 하고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남들에게 없는 물고기를 수집하고 기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렸을 적 주변 친구들로부터 "넌 종종 문어체로 말한다"라는 핀잔을 듣곤 했다. 문어체의 단어란 결국 일상에서는 잘 쓰지 않는 단어들이었을 텐데 발화의 상황에서 내게 그 단어는 익숙한 단어였을 것이다.


결국 나는 내 또래 집단의 다른 사람보다 조금 이른 시점에 문어체의 물고기들을 내 주머니에 넣어서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내게 있어 문어체의 물고기들은 '점심에 뭐 먹을래?'와 같은 일상의 발화처럼 익숙하거나, 적어도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와 같은 시어의 표현처럼 이질적이지 않은 중간 지점 어딘가에 있었다는 의미다.


이런 과정을 거쳐 주머니 속에 있는 물고기의 숫자와 다양성이 증가하게 되면 '너는 어떻게 (남과 다른) 그런 생각(글)을 할 수 있는 거야?'라는 질문이 종종 찾아오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요약하자면 '나는 어렸을 적부터 여자한테 인기가 없었기 때문에 심심할 때면 내 주머니 속에 여러 가지 물고기들을 넣고 키워왔거든'이 된다.


+

사실 위와 같은 글을 쓰게 된 계기도 오늘 출근길에 단어 굴리기를 하다 촉발됐다.


여의도역 4번 출구에서 회사 입구로 가는 약 200~300m 거리를 걷는 중이었다. 여름 매미 소리가 시끄러웠다. 어떤 매미는 중간에 쉬지 않고 ‘찌르르르르르르~’하고 울었고 어떤 매미는 ‘맴 맴 맴 맴~’하고 국어책에 나온 데로 울고 있었다. 하지만 잠깐 생각해보니 매미가 실제로 ‘맴 맴 맴 맴’하고 울었을 리는 없다. 단지 내 귀에 그렇게 들릴 뿐인 것이다. 교과서의 의성어가 맞다면 실제로 우리나라 고양이는 ‘야옹’하고 울지만 미국 고양이는 ‘미뉴’하고 울 것이다. 우리나라 닭들은 ‘꼬끼오’하고 울지만 미국 닭들은 ‘카쿠두루두’하고 울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고양이든 미국 고양이든 우는 소리는 비슷하다. 단지 그걸 적는 단어가 다를 뿐이다.


결국 그러다 ‘한 나라의 문화, 혹은 언어가 그 인간의 사고의 틀을 규정한다’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고, 그러다가 문득 며칠 전 한국은행에 다니는 형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쨌거나 ‘+’는 내 주머니 속에서 일어나는 단어 굴리기의 한 예시와 과정이다.


++

정말 우연히도 이 글을 브런치로 옮기기 직전 봤던 소설에 ‘죽음이라는 것을 가설로 놓고 머릿속에서 굴려볼뿐입니다’라는 문장이 나왔다. 단어를 굴린다는 표현은 내 오리지널인 줄 알았는데 책 속에 있다니. 참고로 해당 문장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 1권 450페이지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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