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toZ

스위치

by 거짓말의 거짓말

일상적으로 바보 같은 일을 하고, 때로는 꼭 해야 되는 일을 하지 않는 바보 같은 짓(전자보다 후자가 많은 것도 같다)도 자주 저지르기 때문에 웬만한 바보 같은 일에는 '흐음, 어쩔 수 없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편이다. 하지만 오늘은 정말이지 스스로가 생각해도 용서하지 못할 만큼 바보 같은 일을 했다. 스스로의 한심함에 화가 치밀어 올라서 30분 정도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서 그 멍청함이 초래한 불쾌하고 더러운 기분에서 내 의식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벌을 줬다. 바닥까지 기분이 내려가자 최근 약 세 달 동안 꺼져있던 스위치가 불현듯 다시 켜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말로 다행이다'하고 안심했다.


'스위치가 꺼졌다'는 말은 하나의 비유로서가 아니라 나 개인으로서는 달리 대체할만한 말이 없을 만큼 가장 사실에 가까운 표현이다. 지난 4월의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내 안에 사람을 움직이는 어떤 동력을 관장하는 스위치가 내려갔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단지 4월 어느 날부터인가 내 뇌(이성) 혹은 가슴(감정), 어쩌면 둘 모두에 있는 어떤 기능에 장애가 생긴 것 같았다.


컴퓨터의 대기 모드, 혹은 일종의 좀비와 같은 상태로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될 대로 돼라'라는 식의 자포자기와, 마치 영원히 죽지 않을 사람처럼 '그러거나 말거나'와 같은 무관심의 경계 어딘가에서 세상 어떤 것에도 흥미가 생기지 않는 상태가 지속됐다. 사고와 기억, 판단을 담당하는 의식 활동이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외부세계 자극에 반응하는 대부분 촉수(감각기관)가 사정 직후의 그것처럼 어떤 의욕도 없이 축 쳐져 버렸다. 그리고 그 상태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야 하는 얘기지만 스위치가 내려간 지난 3개월 간 가장 무서웠던 것은 읽고, 쓰는 것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 본 일종의 '텍스트 포비아(문자 공포증)' 상태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일상어를 넘어서는 어떤 글을 읽어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신문과 소설을 상대로 독해 능력을 시험해봤지만 어떤 것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의 스크린과 소설책의 페이지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이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두려움에 떨었다.


읽을 수 없으니 쓸 수도 없었다. 하루하루 일상적으로 무언가를 써내야 하는 의무가 주어져 있었지만 전처럼 내 생각을 단어와 문장으로 조립할 수 없었다. 하루하루 긴장감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주어진 단어(보도자료)의 순서를 바꾸는 작업을 반복하며 버텼다. 스위치가 내려가자 생명유지 외에 불필요한 생각하는 능력도 일종의 반수면 상태에 들어갔다. 이런 말을 하면 우습게 들린다는 것은 알지만 정말로 '생각'을 할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됐다. 사람은 자신이 쓸 수 있는 것만큼만 생각할 수 있다는 명제의 대우처럼 생각하지 않으니 어떤 것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그 기간 동안 나는 생각의 재료가 되는 '단어' 자체를 잃어버렸다. 오늘 스위치가 켜졌다는 감각을 느끼고 나서 집에 오는 길에야 다시 깨달은 사실이지만 평상시의 나는 길을 걸으면서 대체로 머리 속에서 이런저런 단어들을 굴리며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것은 꼭 어떤 생각을 해야지 하는 의식적인 작용이 아니라 자연스런 현상이다. 하지만 지난 3개월 간 그 자연스런 현상은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종종 지금처럼 그 자연스런 현상의 결과물로 생성된 배설물의 일부를 온라인에 투척한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어떤 악취 덩어리도 던지지 않았던 것은 인터넷 공해에 시달리고 있는 다른 사람을 배려한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나는 문자 그대로 어떤 단어도 소화하고 배설할 수 없는 상태였다.


무서웠다. 단어를 잃어버린다는 감각은. 심지어 최근 1년 새 잦은 음주로 필름이 끊기는 일이 자주 발생했고, 그로 인해 뇌 기능 자체에 어떤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멍청한 생각도 하게 됐다. (앞서 생각을 잃어버렸다는 말에 모순되는 말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처럼 느꼈다').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평소에는 하지 않던 일도 했다. 몇몇 지인에게 연락해서 만날 약속을 잡았다. 기본적으로 내 자신의 문제나 고민을 타인에게 상담하는 일은 없었지만 누군가를 만나서 대화를 하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읽고 쓸 수 없으니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대화를 해도 내 자신의 스위치가 내려간 상태라서 자신의 상황에 대해 잘 설명할 수도, 상대의 얘기를 제대로 들을 수도 없었다. 어쩌면 그중에 누군가는 지금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어 봤을지도 모르고, 그러면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은 위로를 받을 수도 있겠다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자신감과 자존감은커녕 자의식 자체가 흐려진 상태였기 때문에 (믿기지 않지만)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의지도 완전히 사라졌다. 다만 지난 몇 년 전부터 경사가 완만한 미끄럼틀을 타고 하강하기 시작한 성욕의 찌꺼기만큼은 내 의식과는 상관없이 반사(半死) 상태의 내 몸에 미약한 신호를 보냈다.


8월 초에 여름휴가를 내고, 야심 차게 방콕행 비행기 표를 예약한 것도 어쩌면 휴식에 대한 기대가 내 꺼진 스위치를 켜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전혀 도움이 안 됐다. 오히려 그런 노력에도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사실에 더 체념할 뿐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오늘의 멍청한 실수를 계기로 내려갔던 스위치가 다시 올라간 느낌이 든다. 집에 오는 지하철에서 최근 세 달 동안 아무리 노력해도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던 소설의 페이지를 읽어낼 수 있었다.


이제 누군가를 불러내서 그들의 어려움을 보고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하는' 따위의 자위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자신감과 자존감이야 애초에 없었으니까 한동안 잃어버렸던 자의식 정도만 재정비를 하면 될 것 같다.

그리고 한 번 미끄럼틀을 타기 시작한 녀석(성욕)에 관해서라면, 어차피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미끄럼틀을 역행하는 것이 불가능한 바에야 시원하게 내려가도록 내버려둬야지... 하고 포기하는 것은 남자답지 못한 것 같으니까 양발을 쭉 벌려서라도 더 이상 내려가지 못하도록 지탱해야겠다.


다가오는 여름휴가도 즐겁게 보내야지.


(2014. 07)


+

사실 스위치는 위 글을 쓰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꺼졌고 일 년 이상 그 상태가 지속됐다. 이 글은 결국 스위치가 다시 켜지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자기 암시였는데 효과는 없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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