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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비꽃 Apr 21. 2022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요.

나를 채워주었던 그녀에게



하늘이 어둑하다.

24개월 아이와 온종일 씨름을 하고, 이내 어둑해진 하늘빛이 집안까지 깔리면 놀아 달라고 보채는 아이 앞에서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다. 그 마음이 쉬이 가시지 않는 어느 날이었다.

메시지 창을 열었다 닫기를 두어 번. ‘에라이’ 하고 메시지를 보낸다.


“○○씨 뭐해요?”

“카톡♪”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메시지 음이 울린다.

“오늘 저녁 같이 먹을래요? 닭갈비 해줄게요!”

그녀는 대답은 않고 나를 집에 초대한다. 어슴푸레 땅거미가 지는 시간, 내 문자의 내용이 아닌 내 마음을 읽어주던 사람.


아래로 아래로 향하던 기분이 수제비처럼 동동 떠오른다. 신이 나서 아이 옷을 입히고 부랴부랴 집을 나선다. 말발굽으로 미리 열어 놓은 문. 여름용, 겨울용 크록스와, 크고 작은 운동화들로 꽉 찬 현관. 내 신발과 아이 신발을 벗어 현관문 가까이에 비집어 놓이고 있을 때쯤.

“왔어요~?”

우리를 반기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부엌에서 분주하고, 그녀의 아들은 거실에서 놀기 바쁘다. 식탁 위에는 채 풀지 못한 반찬가게 비닐봉지가 놓여있고, 그녀의 손은 도마 위에서 또각또각 연주를 하며 경쾌하게 움직인다.

“닭갈비 사 왔어요. 양배추랑 고구마랑 더 넣으려고~ 거기 앉아있어요~.”

그녀는 그런 사람이다. 요리는 못하지만 자꾸 저녁 초대를 하는 사람. 집을 깔끔하게 정돈하진 못해도, 내 마음은 가볍게 정돈해 주는 사람.  




그녀는 내 남편 대학 동기의 아내이다. 그녀는 임신을 하고 우리 아파트 바로 옆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녀의 아기가 100일이 되었을 때, 처음 그녀의 집에 방문했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사는데, 좀 챙겨야 하지 않겠냐는 남편의 성화를 이기지 못했다. 아이는 공룡 무늬 바운서에 앉아 있었다. 그날 나는 공갈 젖꼭지를 빨며 상석을 차지하고 있는 아이만 어색하게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3개월 뒤 나의 아이가 태어났다. 세 식구가 된 두 가족은 그 후 남편들의 주도로 서로의 집을 오가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몇 번, 두 가족은 자연스럽게 종종 밤에 모여 술을 마셨다.



명절이 지나면 으레 그녀에게서 연락이 온다. 친정에서 음식을 너무 많이 싸주셨다며, 자기네 집에서 저녁을 먹자고 한다. 우리 집에도 명절 음식이 냉장고에 가득 있는데도 나는 쪼르르 그녀의 집으로 간다. 갈비며, 전이며, 나물이며 남김없이 꺼내어 자신의 엄마가 차려주었던 상을 그대로 내게 차려준다. 집에 돌아갈 때면, 엄마가 나눠먹으라고 더 챙겨주셨다며 야채며 과일이며 계란을 내게 안긴다. 주면서도 더 줄게 없나 돌아보는 사람.

내가 가끔 우리 시가에서 주신 고들빼기나 장아찌를 나눠주면 자기네 시가에서는 일절 반찬을 주시지 않는다며 부러움과 고마움을 가득 담은 표정을 짓는다.

주는 사람을 더 고맙게 만드는 사람.



아이와 그녀의 집에 놀러 갔을 때였다. 그녀는 책장 옆에서 커다란 상자를 꺼내왔다. 주방놀이였다. 동생이 선물로 줬다며, 아이들 놀라고 꺼내 주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사부작사부작 밥을 차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만들어준 정체 모를 밥을 몇 끼나 먹었을까, 그녀는 아이들이 놀고 난 자리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챙겨 나에게 준다.

“원이 집에 갔을 때 보니까 주방놀이에 프라이팬이 없던데, 우리 두 개라 하나씩 나눴어요. 그리고 국자랑 뒤집개도 두 개여서 하나씩 챙겼고.”

그녀는 내 마음을 꽉 채워 집으로 보낸다. 하나하나 사이좋게. 남김 없는 진심으로.  



그런 그녀가 떠났다. 지구 반대편으로.

델타 변이 확산으로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공포가 다시 거세지던 작년 7월이었다.


결혼하고 줄곧 이민 갈 거라던 그녀의 남편의 아메리칸드림은 술 모임의 단골 안줏거리였다. 결혼할 때까지 언급도 없던 이민이 웬 말이냐며 자신은 못 간다고, 이건 사기결혼이라던 그녀였다. 그녀의 남편은 그 어렵다던 영주권을 기어이 받아냈다. 그리고 잡 인터뷰까지 다 마치고 미국에서 살 집을 알아보던 즈음,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쳤다. 국내에서는 마스크 대란으로 공적 마스크 5부제가 시작됐다. 언론에서는 코로나19가 전 대륙으로 확산되면서 팬더믹 단계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쏟아졌다. 그의 취업은 어그러졌다. 그러나 그는 비자 문제로 무조건 미국으로 들어가야 했고, 마스크를 바리바리 챙겨 홀로 미국으로 떠났다. 그가 취업에 성공했고, 그녀도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아이의 8월 입학을 위해 그녀도 그렇게 미국으로 떠났다.


그녀는 남편과 결혼해 자리 잡은 수원에서 내가 처음으로 알게 된 사람이었다. 나와 같은 해에 결혼을 하고, 같은 해에 아기를 낳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한 동네에서 육아를 함께 시작해준 고마운 나의 친구. 항상 먼저 그녀 자신을 숨김없이 보여주어 나를 무장해제시킨 사람. 내 배를 채워주고, 내 마음까지 채워주었던 사람. 그녀 앞에 서면 한없이 솔직해지고 싶어 진다.   


언젠가 그녀와 수다 꽃을 피우던 날, 내가 말했다.  ○○씨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남편이랑 결혼하길 참 잘한 거 같다고.


보고 싶은 진.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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