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 1년, 파블로프가 되다
여름이 되니 주말 손님이 많아졌다.(이렇게 말하니 어쩐지 자영업자 된 기분) 나와 남편 모두 관계 지향적인 사람들은 아니어서, 결혼 후 집들이 외에는 따로 손님을 초대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애를 낳고, 양평으로 내려온 뒤부터 슬금슬금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들이다가, 이제는 누군가를 맞이하는 게 퍽 자연스러워졌다. 애가 생기고 조금 유연해진 건지, 환경이 주는 힘인 건지, 아니면 여유가 없었을 뿐 원래 이런 사람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나도 남편도 손님맞이에 예전보다는 확실히 덜 안절부절 해 한다.
지난 주말에도 쌍둥이를 키우는 친구네가 놀러 와 분주했다. 우리끼리는 귀찮아서 프라이팬에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도, 전원 살이 퍼포먼스를 위해 바비큐 장비를 꺼냈다. 거기에 여름 맞이로 야심 차게 준비한 인덱스 풀까지 설치하고 났더니 구색이 딱 맞는 게 어찌나 뿌듯하던지. 막상 아이들 시중드느라 친구와는 몇 마디 나누지 못했지만, 그게 지금 우리들의 일상이었으므로 그 시간에 함께 서있는 것만으로 좋았다.
한차례 수영을 마치고 친구 손에 장갑과 양푼을 들려서 집 옆 (코딱지만 한) 텃밭으로 보냈을 때였다. 상추 몇 장이랑 오이 두 개를 늠름하게 들고 오던 친구가 뭐에 물린 것 같다며 갑자기 다리를 벅벅 긁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모기와 날개 달린 개미들에게 몇 차례 공격을 당하고 볼맨 소리를 하는 그녀에게 나는 무심하게 말했다.
"야, 여기 살면 어쩔 수 없어~ 다음부터는 긴바지를 입고 오도록 해"
생각해보니 집 안에서 놀 때도 친구네 딸내미들은 "이모 여기 개미 있어요!!!" "이 벌레 뭐예요??"라며 벌레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반가움과 환희를 드러내는데, 세 살 배기 내 딸은 시큰둥했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개미를 사랑한다. 길 위에서 쭈그려 앉은 아이들을 본다면 그 아이들이 유심히 보고 있는 것은 개미일 확률이 제일 높다. 그런 개미를 집에서 처음 본 날, 분명 내 딸도 기쁨을 주체 못 하고 소리를 질렀었는데...... 전원생활 1년 만에 시들해진 표정이 내 표정과 묘하게 겹치면서 웃음이 났다.
전원생활에서 벌레는 상수로 존재한다. 아파트 살 때는 가끔 옷 틈에 좀벌레나 여름철 초파리 떼 정도 본 게 다였다면, 지금은 돈벌레, 노래기, 권연벌레, 집거미, 각종 개미들과 드문드문 나타나는 지네까지 버라이어티 하다.
나는 날개 달린 개미가 있다는 것도, 이들이 5-6월 즈음 혼인 비행을 하며 공중에서 교미를 한다는 것도 여태 몰랐었다. 엊그제 창문 틈에 개미들이 떨어져 있길래 뭔가 했는데, 공주 개미를 여왕개미로 만들고 본인의 생은 마감한 수개미였던 것이다.
지네가 야행성이고 쌍으로 돌아다니기 때문에 한 마리를 잡았다고 안심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오밤중에 난방 텐트 위로 툭 떨어진 지네를 발견하고는 경악했던 그날 밤 검색해 얻은 정보였다. 지은 지 20년도 더 된 목조주택에 살다보니 본의 아니게 점점 파블로프가 되어가고 있다.
시끌벅적한 주말이 지나갔다. 마당에 오래 나가 있었더니 나도 뭐에 물린 모양인지 팔뚝이 조금 간지러웠다. 모기인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오늘 아침까지도 붓기가 가시지 않아 결국 피부과에 다녀왔다. 의사는 이 정도로 부은 것을 보면 곤충애 물렸을 확률이 높고, 바이러스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뿐이니 약만 잘 챙겨 먹으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는 뭐에 물린 느낌도 전혀 없었는데 이상하다는 내 볼맨 소리에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뭐... 여기 살면 다 그렇잖아요~(본인 팔을 보여주시며) 저도 병원에만 있는데 어디서 이런 걸 물려오는지 모르겠어요."
처음 보는 의사 선생님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빵 터졌다. 아, 그랬지. 여기 살면 다~ 그런 일들이 몇 가지 있는 법이지. 양평 살면 다~그래요 여러분. 그래도 너무 겁먹지 마세요. 세상에는 좋은 해충약과 유익한 민간요법들이 많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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