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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다 Jun 05. 2021

상추 이야기가 쓰고 싶어서

자라는 것들과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것들


"우리 텃밭 하자."


올 겨울 한기가 가시자마자 남편에게 집 옆 텃밭을 같이 가꿔보지 않겠냐고 프러포즈했다. 작년까지 주인집 내외분이 관리하셨던 곳인데, 고구마 수확을 끝으로 비어있었다. 이때까지 나는 초등학교 방학숙제로 콩나물을 키워본 것 말고는 무언갈 길러본 역사가 없었으므로, 일단 누구라도 끌어들여야 했다. 결과는? 대실패!


눈치 빠른 그는 이 결정이 추후 노동력 분배의 문제를 부를 것이며 곧 비극적 결말을 맺을 거란 이유로 내 제안을 거절했다.(역시 내 남편 똑똑). 그 후 몇 차례 더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우여곡절 끝에 최종 텃밭 메이트는 친정 식구들이 되었다.

밭고랑에 비닐을 덮고 있는 텃밭 메이트. 남동생과 친정아빠, 그리고 27개월 딸

땅 상태는 손볼 곳 없이 좋았다. 거름을 한차례 주고 4월 초쯤 시장에서 모종을 사다가 만만한 것들부터 심기 시작했다. 쌈채소 형제, 가지, 오이, 토마토, 감자, 고구마, 참외 정도? 그중 첫 수확은 상추였다.


생각해보니 37년 인생 중 내손으로 따 본 거라곤, 돈 내고 입장한 제주 농장의 감귤뿐이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네이버에 상추 따는 법을 검색한 뒤 '최대한 줄기에 가깝게 똑 끊지 말고 돌려서' 조심스럽게 땄다. 그리고 그날 저녁은 당연히 삼겹살이었다. 그때까지 내 머릿속 상추의 역할은 고기 먹을 때 곁들임 정도였으니까.


고기 먹을 때만 상추를 싸 먹어서는 소비량이 수확량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걸 깨닫는 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상추는 무섭게 자랐다. 마트에서 늘 손바닥 만한 상추만 봐서 몰랐는데, 상추가 배추만 해지는 데는 고작 며칠이면 충분했다. 그때부터였다. 눈물겨운 상추와의 전쟁이 시작된 건.


우선 상추와 쑥갓을 고기랑만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했다. 캔참치에도 싸 먹고 된장국에도 넣어 먹고 나중에는 그냥 염소처럼 손에 들고 뜯어먹었다. 이마저도 역부족이란 걸 깨달은 뒤로는 나눌 사람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사실 30대 여성들은 친구들과 맛있는 걸 사 먹으러 다니지, 직접 먹을 것을 나누진 않는다. 하지만 이대로 귀한 상추를 버리는 죄업을 지을 순 없었으므로, 서울로 친구 집들이를 가던 날 상추를 대량 나누기로 결심했다. 받는 이의 편의를 최대한 고려해 깨끗이 씻은 상추를 키친타월을 깐 지퍼백에 한 끼 분량으로 담았다.


토요일 올림픽대로는 역시나 차로 꽉 막혔고, 나는 조수석에 가지런히 놓인 다섯 개의 상추 봉지를 보면서 어이없게 웃다가 불현듯 엄마 생각이 났다.

고운 감자꽃과 쑥갓 꽃. 텃밭을 가꾸지 않았다면 모르고 살았을 아름다움이다.

암 진단을 받기 2년 전쯤 엄마가 밭농사를 시작했었다. 팔 수도 없고 놀릴 수도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한 일이었다. 돌이 많은 흙이라 컨디션도 좋지 않고 무식하게 크기만 해서, 엄마가 매일 밭에 나가도 티가 안 났다. 나중에 엄마가 우스갯소리로 그때 밭일로 스트레스받아서 암 걸린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였으니까... 그날도 전화로 주말에는 느이 아빠가 좀 일찍 나와서 밭일이나 도와주면 좋겠는데 맘에 안 든다는 엄마의 푸념을 듣고 있었다.


그러다 저녁으로 라면을 끓인다는 엄마가 요즘엔 라면에상추 넣어 먹는다고 웃으며 얘기하는데 갑자기 화가 울컥 치밀었다.

 

"아니, 그걸 거기 왜 넣어 먹어~"


"그럼 어째. 냉장고에 한 움큼 남았는데 이 아까운 걸 버릴 수도 없고..."


"그냥 버려. 못 먹음 어쩔 수 없는 거지. 아무도 엄마더러 밭 돌보라고 하는 사람 없는데, 왜 몸 상해가면서까지 하는 거야? 엄마가 시작해 놓고서는 같이 안 해준다고 서운해하는 거 좀 이상하지 않아?"


꽉 막힌 올림픽대로에서 그날 엄마와의 통화를 되짚다가 눈물이 왈칵 났다. 아마 엄마는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것 같다. 게으름 떠는 법 없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걸 다 보았는데, 모른 척할 수는 없었던 거다. 더는 자라지 않는 자식들과 더는 달라질 게 없는 일상에서, 유일하게 자라나는 것들을 돌보는 일이 엄마에게는 귀했던 거다. 쑥쑥 자라나는 것들을 이제 더는 자라지 않는 자식들과 나누고 싶었던 그 마음을 나는 왜 몰라봤을까....


느닷없는 전원생활 1년. 힘든 건 남동생과 아빠를 시키고 기분만 내는 텃밭 농사를 짓고 있다. 그럼에도 텃밭은 나를 나누게 하고, 귀하게 여기게 하고, 쑥갓 꽃과 감자꽃이 예쁜 걸 알게 하고, 엄마 생각을 하게 한다. 내일은 나도 엄마처럼 라면에 상추를 넣어 먹어 볼까나. 엄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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