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의 혹독한 겨우살이
입춘에 대설주의보라니. 올봄은 시작부터 어쩐지 요란하다. 양평에서 느닷없는 전원생활 시작한 지 반년. 올 겨울 마지막 눈(이겠지 설마)을 치우고 있자니 극기 훈련을 방불케 했던 우리의 첫 겨우살이가 드디어 끝나는구나 싶어 눈물이 다 난다.
전원생활 이전의 삶을 '전생'이라 한다면, 전생의 나는 '대설주의보'라든가 '한파경보'같은 단어들을 유심히 본 적이 없다. 날씨를 전하는 기상캐스터들의 음성은 늘 일관성 있게 밝았으므로 위급함을 느끼지 못했고, 집에서는 설정해 놓은 온도대로 생활하다 보니 추위가 미치는 영향력 자체가 미미했달까. 기껏해야 '아, 출근하기 빡세겠네' 라고 불평하거나 '내일은 무조건 롱 패딩!'정도가 다였다. 그러니까 스팸처럼 여기던 '재난문자'가 정말 문자 그대로 '재난' 상황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된 건 양평에 오고 난 뒤부터다.
추위를 체감하기 시작한 건 11월부터였다. 우리가 세 살고 있는 집은 지은 지 20년도 더 된 2층짜리 목조주택이다. 그래도 관리가 잘 된 편이었고, 무엇보다 나무가 풍기는 낭만 덕에 처음에는 유럽 빈티지 하우스 같다며 호들갑을 떨었었다. 아파트 살 때는 낮은 천장 때문에 머리 위에 다른 사람을 얹고 사는 기분이었는데 층고가 높으니 얼마나 속이 후련하던지... 그런데 역시나 추위 앞에선 장사 없고 낭만은 무용했다.
혹한기 훈련 1라운드, 실내 체감온도 비상비상
전원생활 초짜로서 느낀 첫 번 째 당혹스러움은 실내 체감온도였다. 층고가 높다 보니 바닥이 아무리 뜨거워도 훈훈한 느낌이 없었다. 특히 아침마다 거실로 나오는 게 고역이었다. 아파트였다면 현관문을 열고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공동현관문을 열때서야 비로소 느꼈을 추위를, 우리는 매일 아침 방문을 열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온 식구가 돌아가면서 아프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두 돌 쟁이 딸내미는 콧물을 시작으로 두 달을 병원에 다녔고, 건장한 남동생은 정말 오랜만에 감기약을 병원에서 지어다 먹었다. 그렇게 저마다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나서야 우리는 경량 패딩을 거의 문신 수준으로 몸에 새기고, 집에서도 양말을 벗지 않았다. 그리고 라디오 광고로만 듣던 ‘따수미 난방 텐트’와 헉소리 나게 비싼 다이슨 온풍기를 구매했다. 아마 돌아올 봄과 이어질 여름, 가을이 없었다면 나는 다시 아파트로 돌아갔을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어린 딸에게 괜한 고생을 시키는 것 같아 미안했고, 아픈 엄마가 병원에 계신 게 너무나도 다행스러웠다.
혹한기 훈련 2라운드, 폭설과 고립
양평으로 이사한 첫날 짜장면이라도 시켜먹을까 싶어 배달앱을 켰다가 ‘텅’이란 글자를 한참 들여다봤던 기억이 난다. 그간 자랑스러운 VIP회원으로서 절반 이상의 끼니를 배달로 때우던 우리는 ‘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렇다. 이곳은 배달음식의 은혜가 비껴간 동네였다. 그래도 차로 10분이면 포장할 수 있는 맛집들이 많았기에 불편함을 모르고 지냈더랬다. 첫눈이 오기 전까지는....
올 겨울 첫 대설주의보가 있던 날 나는 생전 처음으로 고립을 경험했다. 양평도 큰 도로는 제설작업이 비교적 잘 되는 편이지만 마을 안까지 차량이 들어 올리는 만무 했다. 결국 눈을 치우는 일은 고스란히 우리 몫인데, 치우는 거야 대강한다고 해도 단지 꼭대기인 우리 집까지 차가 올라오는 것이 불가능했다.(왜 하필 또 후륜구동 차를 사서는) 차 없이 갈 수 있는 편의시설은 도보 40분 내에 아무 데도 없으므로 우린 아주 자연스럽게 고립되었다. 그 후 출근하는 남편은 혹시 돌아오지 못할 사태를 대비해 짐을 싸서 다녔고, 나는 심혈을 기울여 냉장고를 채우기 시작했다. 우유와 달걀, 고기 한두 팩 정도는 절대 떨어지지 않도록.
전원생활 혹한기 훈련이 남긴 첫 번째 교훈은 ‘살아봐야 안다’는 것이다. 가끔은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안다. 생각보다 시골의 겨울은 길고 꽤나 외롭다. 봄, 여름, 가을의 낭만만 믿고 왔다가는 줄행랑 놓기 딱이다. 어린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더더욱! 그런 의미에서 결혼하고부터 줄곧 꿈꾸었던 전원살이를 이렇게나 일찍, 게다가 월세로 시작한 것은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관리비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 전원생활은 누가 대신해주는 게 없다. 문 앞에 내다 놓으면 재활용품을 수거해주는 차량도 없고, 눈을 대신 쓸어주는 분도, 온수나 전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연락할 관리사무소도 없다. 그리고 이렇게 제 손으로 모든 걸 처리하면서도 한 겨울에는 아파트 관리비보다 더 비싼 난방비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다.
그럼 이제 한 겨울 전원살이의 무자비함을 경험해봤으니 쉽게 단념할 작정이냐고? 그건 아니다. 물론 언제 또 맘이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늘까지는 ‘NO'다. 불편한 만큼 풍요로워지는 것들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추위 앞에서는 무용하지만 분명 존재하는 낭만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는 그 낭만에 대해서도 천천히 이야기해보고 싶다.
비정규 가족 탄생 D+201일. 오늘도 우리 가족은 모두 안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