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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다 Sep 28. 2020

공동육아, 장밋빛 환상에 대한 고찰

우리 사이의 열다섯 계단

우리 집 실질적인 컨트롤타워는 인생 20개월 차인 내 딸이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 직접 물어보진 못했지만, 아마 스스로도 본인을 양평 살이 최대 수혜자라 여길 것 같다. '엄마를 위한 공동간병'이라는 사명으로 뭉친 것과 별개로, 성인 다섯 명의 단체생활이란 어떻게든 개인 희생을 요구하는 일이다. 그에 비해 내 딸이 겪는 불편함은?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사실 합가 전 내심 기대가 있었다. 비록 엄마는 암환자이고, 남동생은 직업인이지만 어찌 되었건 집에서 일을 하니 애 봐줄 사람이 셋이 되었다는 게 내 계산이었다. 물론 이 계산은 틀렸다. 그렇다면 내 수고가 1/3로 줄어야 마땅한데, 오히려 셋 모두가 난처해졌으니.


합가 후 첫 한주는 모두 행복했다. 남편은 출퇴근 시간이 2배로 늘었고, 나는 맥주 한 캔을 사려면 차로 10분을 나가야 했지만 새로운 환경에 들떠서 힘든 줄 몰랐다. 긴 투병으로 만사 무기력했던 엄마도 새벽 6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칼같이 2층 계단을 내려왔다. "넌 들어가서 더 자."라고 말하는 엄마의 결연한 얼굴에서 어찌나 빛이 나던지.  남동생은 또 어땠나. 내가 화장실 간 사이 아이가 울려고 시동만 걸어도 뛰어내려 와 조카 앞에서 이상한 춤을 췄다. '그렇지, 바로 이거지! 내가 계산한 대로 잘 돌아가고 있어!'

문제의 그 계단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우리 집 컨트롤 타워

슬슬 욕심이 났다. 나는 강의로 근근이 돈을 버는 프리랜서 강사다. 사실 출산 후로는 반백수에 가까웠는데, 이제 뭔가 제대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강의가 활발해진 것도 내겐 기회였다. 그래서 들어오는 강의들은 감사한 마음으로 넙죽 받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따지고 보면 엄연히 직업이 있는 남동생과,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닌 엄마를 나와 똑같은 값으로 분모에 넣은 것부터가 잘못이다. 내 아이를 잠깐 봐주는 시간만큼 동생은 일할 시간이 줄어드는 셈이고, 엄마는 1시간을 봐주고 나면 그 뒤로 3시간을 꼬박 누워있어야 했으니까. 나 또한 두 사람 덕에 얻은 귀한 짬을 일하는데 써버리니 피곤함이 줄어들 턱이 없었다. 게다가 아이는 우리 바람대로 한 번에 한 사람과 노는데 만족하지 않았다. 분명 2층에 할미와 삼촌이 있는 걸 아는데, 왜 자기와 놀아주지 않는지 아이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거다. 결과적으로 나는 매일 2층으로 올라가려는 아이를 끌어내리는데 또 상당한 에너지를 써야 했다.


거듭되는 무리한 일상에 이층 사람들이 일층으로 내려오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처음에는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합가 할 때 이 정도 불편함도 각오 안 했나 싶고, 난 그저 사회인으로 복귀하고 싶었을 뿐인데 모두를 성가시게 만든 것 같아 서운했다. 그렇게 서로 드러내고 말은 못 했지만, 일층과 이층 사이의 열다섯 계단이 만리장성처럼 느껴졌다. 결국 언제나처럼 문제를 밥상 위로 올린 것은 나였고, 그날 저녁 긴 가족회의 끝에 나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다. 비정규 가족의 행복한 존속과 사회인으로서 내 자리를 되찾기 위하여!

나의 든든한 육아 메이트 엄마와 동생. 어른들의 수고로움을 먹고 아이는 무럭무럭 자란다.

생각해보면 나는 가족들과도 저울질을 했던 것 같다. '내가 식구들을 위해 이만큼이나 희생하는데, 이 정도는 보상받아야 하는 거 아냐?' 하는 오만한 마음이었다. 어떤 것도 당연한 건 없는데, 가족들에게는 왜 자꾸 함부로 기대하는 건지... 양평 살이의 목표는 엄마의 치병을 필두로 한 가족의 안녕뿐이라 해놓고는, 속으로 손해만 따지고 있던 나를 깊이 반성합니다.

 

역시 양평 살이 최대 수혜자는 20개월 차 내 딸임이 분명하다. 이 짧은 일기 한편을 끄적거리는 동안에도 유감과 후회, 결심 따위가 나뒹구는데, 아이는 이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우니까! 이층 사람들과 내가 마음의 거리를 좁히지 못할 때도 아랑곳하지 않고 쉼 없이 열다섯 계단을 오르던 건 딸밖에 없었다. 엄마가 준 과자를 한 통 다 털어 넣고도 할미한테 가서 "까"를 외치면 또 과자가 생긴다는 걸 아는 똑똑한 내 딸내미. 우리의 공동육아는 비록 어른들의 수고로움을 1/3로 덜어 주진 못했지만, 아이에게 세배의 과자를 주는 데는 성공한 셈이다. 그래, 딸아. 너는 사랑도 과자도 세배로 먹고 무럭무럭 자라렴.


비정규 가족 탄생 D+71일. 오늘도 우리 가족은 모두 안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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